"다윈의 동화"라는 책이 나왔길래 읽어봤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대략... "다윈의 진화론은 동화와 같이 허무맹랑한 내용이다"라는 것이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에게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 다윈의 진화론
  • 신다윈주의 종합설
  • 진화심리학
등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상당히 어설픈데요, 인용을 초큼 해보면 이런 식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가 죽기 직전 많은 재산이 있었고, 그래서 재능이 뛰어난 젊은 작곡가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제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가정해보자. (...omitted...) 오늘날 신다윈주의 생물학자들은 분명 이런 행동들도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기복제적인' 경향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즉 바흐와 뉴턴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그것이 그들 입장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숫자를 증가시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233~234

자기복제자(유전자) 입장에서야 자신을 담고 있는 운반자(바흐)를 닮은 운반자(바흐를 닮은 다른 사람)의 숫자를 증가시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유전자 선택론을 완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 개념에 대해서는 뭐라 했냐하면:
포괄적응도 이론이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부모의 유전자 절반을 자식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식만이 아니다. 모든 여성은 수정을 하던 하지 않던 자신이 생산해내는 난자와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남성은 자신이 생산해내는 정자와 유전자 절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포괄적응도 이론은 모든 여성이 자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난자를 사랑해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모든 남성은 자신의 정자를 사랑한다고 단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p284

헌신적인 사랑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유전자를 퍼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자식에 대한 투자(Parental Investment)는 자식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고 따라서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번식은 결국 유전자를 퍼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투자는 (유전자 입장에서)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난자나 정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유전자가 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웃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이 또한 심각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음. 저는 책 살 때 돈을 안 아끼는 편인데, 가끔은 아까울 때가 있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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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글을 쓰다가 진화심리학을 언급할 일이 있으면 링크를 걸기 위해 진화심리학에 대해 짧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진화심리학 = 진화생물학 +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의 이론들을 심리학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체의 다양한 기관이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된 적응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눈은 외부의 사물을 보기 위한 적응 기관이고,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한 적응 기관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인간의 마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심리적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모듈들은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되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한 모듈, 언어 습득을 위한 모듈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 모듈은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이라고 부릅니다.

진화의 세 가지 산물: 적응, 부산물, 노이즈

(꼭 진화심리학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과정은 "적응, 부산물, 노이즈"라는 세 가지 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 부분은 David Buss의 "The Evolutionary Psychology"를 요약/번역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 적응(Adaptation) - 특정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누적된 결과로 만들어진 유전성이 있고 발달 과정상 안정적인 형질. 예를 들면 탯줄은 태아가 산모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진화된 "적응"으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부산물(By-products) - 진화적 적응의 여파로 생겨난 목적 없는 형질. 예를 들면 배꼽. 배꼽 그 자체는 어떠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진화된 것이 아니라, 탯줄을 끊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흔적입니다. 부산물은 적응의 흔적이기 때문에 적응과 마찬가지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노이즈(Noise) - 돌연변이,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 발달 상의 어떠한 사건 등으로 인해 개체에 가해진 임의적인 산물. 예를 들면 배꼽의 모양. 노이즈는 적응이나 부산물과 달리 개체 사이에 일관성이 전혀 없습니다.
진화심리학(혹은 진화생물학)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산물은 적응과 부산물 입니다. 특히 무엇이 진화적 적응이고 무엇이 부산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를 들어 촘스키(Noam Chomsky)는 언어 기관(FLN)이 부산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핑커(Steven Pinker)는 이 입장에 강하게 반대합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는 부산물인가"와 같은 식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위에서 설명한 엄밀한 학술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며, "부산물"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용어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 고작 부산물 따위로 취급하다니"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많이 봤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진화심리학적 설명틀

진화심리학의 장점 중 하나는 "진화생물학"이라는 견고한 학문으로부터 훌륭한 이론틀이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다양한 가설들은 다음과 같은 분석틀에 의해 제약되고 검증받을 수 있습니다:
  • 일반 이론 - 최상단에는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 놓여 있습니다. 포괄적응도란 어떤 개체의 행동이 자기 자신의 적응도(Fitness)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혈연관계에 있는)의 적응도에도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여 계산된 적응도를 말합니다. 개체는 포괄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최상단에 놓인 일반 이론입니다.
  • 중간 수준의 이론 - 일반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즉, 일반 이론의 틀 안에서) 부양 투자(Parental Investment)나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과 같은 몇 가지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양 투자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암컷이 수컷에 비해 더 짝짓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고,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개체들 사이에서 이타성이 발현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 구체적 가설과 예측 - 일반 이론과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공하는 틀로부터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empirically testable) 다양한 구체적 가설과 예측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틀이 점점 강력해지고 퍼즐 조각들이 모일수록 진화심리학은 "그냥 그런 소설일 뿐(just so stories, evolutionary storytelling)"이라는 일부 비판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됩니다.

진화적 적응 환경, 적응의 시간 지연

진화적 적응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진화적 적응에는 그에 따른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이 존재합니다. 허파가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가/장소와 심각이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기/장소가 다르므로, 허파의 EEA와 심장의 EEA는 서로 다릅니다. 심리 모듈의 적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EEA들을 갖겠죠. 인간 고유의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낸 적응 환경을 대체로 10만 년 전(홍적세) 아프리카로 보고 있습니다.

적응의 또 다른 특성에는 시간 지연(Evolutionary Time Lags)이 있는데, 진화적 적응이라는 것은 몇몇 특수한 상황(무기경쟁, 특정한 성선택 매커니즘 등과 같이 일종의 feedback loop가 만들어지는 경우)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수십~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지질학적 스케일의 사건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곧바로 해당 환경에 대한 적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십만 년 동안(특히 최근 만년 이내에) 인간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해왔고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상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단 것(초콜렛 등)에 강력하게 끌리는 본능은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는 뱀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배우지만 총기나 전기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학습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

이 부분은 사견입니다.

(짧은 이 글에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저는 진화심리학이 설명가능성, 설명의 경제성, 내적 일관성, 예측가능성, 반증가능성, 퍼즐풀이의 틀 제공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발달/정서/학습/아동/신경/교육/공학/언어/이상 심리 등 어떠한 심리학 분야가 되었건 진화심리학적 설명틀을 밑바탕에 깔고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굉장이 많은 표현이라 약간 부연을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과학적"이라는 말은 "완성된"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과학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완성되고 변치 않는 이론은 보통 과학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둘째, "진화심리학이 매우 훌륭하다"라는 주장은 "진화심리학만으로 인간의 모든 심리/행동을 설명해야 한다/설명할 수 있다"는 (크게 잘못된) 주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학자들마다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의 범위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진화심리학은 "시대와 문화권에 상관 없이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리/행동 상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진화심리학의 설명틀은 굉장이 성글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온갖 사이비잡탕 이론이 난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심리학들 - 특히 프로이트 등 - 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탄탄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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