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라는 책이 번역/출간 되었나봅니다.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기사에서(또 한국어판 책 제목을 정했을 누군가가)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책을 소개하고 있는 한 기사에 의하면: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외르크 치틀라우는 이처럼 개체 간의 경쟁 끝에 자연의 힘으로 선택 받는다는 다윈의 이론에 반기를 든다.

"진화의 법칙은 권력욕과 폭력을 강자의 권리로 포장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어차피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패배자들의 이별가쯤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방편으로 되풀이해 인간사회에 적용된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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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은 참새만 하고 꼬리는 15cm 정도인 새 '꼬리치레'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뽑을 때 가장 목소리 크고 힘세고 용감하고 짝짓기 욕구가 왕성한 구성원이 아니라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동료를 우두머리로 추대한다.

이스라엘의 자하비 부부 과학자는 사해 연안에서 다리를 다친 늙은 새가 무리를 이끄는 사례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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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는 진화가 무자비한 생존 투쟁의 장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고 합니다.

"과학" 팔아서 돈 좀 벌어보려는, 그저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TV 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런 책이 나올 때 마다 "얼씨구나 역시 진화론은 틀렸어"하고 달려드는 창조론자(주로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네요.

저자는 진화론에 반기를 드는데, 그 이유는:
"진화의 법칙은 권력욕과 폭력을 강자의 권리로 포장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어차피 곧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패배자들의 이별가쯤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방편으로 되풀이해 인간사회에 적용된다"는 생각에서다.

라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주장은 사실의 문제와 가치의 문제를 혼동하는 대표적인 사례죠.

과학 이론은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없고" 행여 말할 수 있다고 가정해봤자, 우리의 가치판단에 의해 과학 이론이 설명하고자 하는 자연 현상이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중력의 법칙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 실리콘 원자 최외각에 전자가 네 개인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 하는 질문들은 다 의미가 없습니다. 진화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여 이런 질문들이 의미가 있다고 치고, 그 답이 "그르다"라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해당 이론이 설명하고 있는 자연 현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중력의 법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선언해봐야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선언해봐야,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저자가 진화론에 반기를 드는 이유 자체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뿐더러, 그 이유가 타당하다고 쳐봤자 그렇다고 해서 진화가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어서, 저자가 진화론과 맞지 않는 사례라며 제시하는 것들 몇 가지가 기사에 소개되어 있는데요:
몸집은 참새만 하고 꼬리는 15cm 정도인 새 '꼬리치레'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뽑을 때 가장 목소리 크고 힘세고 용감하고 짝짓기 욕구가 왕성한 구성원이 아니라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동료를 우두머리로 추대한다.

이스라엘의 자하비 부부 과학자는 사해 연안에서 다리를 다친 늙은 새가 무리를 이끄는 사례도 발견했다.

라고 합니다만, 다윈은 최적자생존을 이야기했지 최강자생존을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최적자라는 것은 환경(혹은 맥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 무조건 강하다고 적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친절하고 자기희생적인 행위"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틀은 이미 4~50년 전에 수립되었습니다. (생물학적 이타주의 참고)

또, 아모츠 자하비로 말할 것 같으면 진화론의 반례를 찾아낸 사람이 아니라, (핸디캡 이론을 통해) 진화론에서 말하는 진화의 동력 중 하나인 성선택(sexual selection) 이론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 이론을 발표한 75년에는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무시당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30년 전 얘기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를 통해 "우리는 진화가 무자비한 생존 투쟁의 장이라는 생각부터 먼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하는데, 뭐 좋게 봐주면 꼭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만 아무도 똥을 된장이라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나서서 "똥은 된장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내용의 책을 펴내면 좀 웃기다는거죠.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더욱 안습인 것은 이 책을 사보며 "역시 똥은 된장이 아니었군. 똥이 된장이라고 한 진화론은 틀렸고,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론이 맞아"라고 생각하게 될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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