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본원인분석
근본원인을 분석(root-cause analysis)하는 유명한 방법 하나는 Five whys(드러난 문제에 대해 "왜"를 반복적으로 물어서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방법) 입니다. 다음은 "Designing Interfaces"라는 책에 언급된 예시입니다:
Why does a mid-level manager use an email client? Yes, of course"to read email." Why does she read and send email in the first place? To converse with other people. Of course, other means might achieve the same ends: the phone, a hallway conversation, a formal document. But apparently email fills some needs that the other methods don't. What are they, and why are they important to her?
중간관리자는 왜 이메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할까? 당연히 메일을 읽기 위해서다. 근데 대체 메일은 왜 읽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물론 메일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대화는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전화, a hallway conversation(이게 뭥미? 문맥상 중요하지 않으므로 패스 ㅋ), 정형적인 문서 등. 이메일만이 채워줄 수 있는 어떤 니즈가 있어보인다. 그게 뭘까, 그게 왜 그 중간관리자에게 필요했던걸까?
애초에 제기된 문제가 "이메일 클라이언트가 쓰기 불편해요"이고 위 분석을 계속하여 얻어낸 매니저의 근본적 니즈가 "사적인 대화의 수단"었다고 칩시다.
이 상황에서 표면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메일 클라이언트를 쉽고 편하게 만들 것인가?"
가 되지만, 근본원인분석을 한 뒤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적인 대화를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을까?"
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전자에 비해 후자가 더 다양한 해결 방법을 제공할 수 있고, 비슷한 종류의 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해줄 가능성도 높습니다.
2. "Five whys"의 단점"Five whys"의 단점 하나는 근본원인분석을 수행하는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양에 따라 그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혹 소크라테스를 진심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있어서 "모든 지식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라고 철떡같이 믿는다면 Five whys 혹은 Infinite whys가 궁극의 문제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왜?"를 물었을 때 적절한 답을 하려면 해당 도메인에 대한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한편, 여기에서 도메인이라고 하는 것은 why를 한 번 물을 때마다 바뀌곤 합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why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도메인이었다가, 두 번째 why에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라는 도메인이 됩니다. why가 서너번 반복되면 대부분 사회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학문적 도메인으로 바뀌게 됩니다. (why를 한없이 계속하면 대부분 우주적이거나 철학적인 심오한 질문이 됩니다. 어린 아이들이 천진한 얼굴로 계속 "왜? 왜?" 이러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ㅎㅎ)
재미있는 점은(혹은 다행스러운 점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소프트웨어 프로세스,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근본원인분석을 하다보면 도메인이 종종 "인간의 심리"로 수렴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관련된 시스템이라면 결국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3. 진화생물학의 Two whys, 동물행동학의 Four whys심리학에 대한 얘길 하기 전에 잠깐 방향을 틀어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고전적인 과학철학서입니다. 하지만 주로 물리학사만을 다룬다는 이유로 물리학의 철학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죠(
과학철학비판,
과학혁명의구조 비판 참고). 그런 견지에서, Ernst Mayr의 "이것이 생물학이다(This is Biology)"는 생물철학서라고 불립니다. 이 책에서 Ernst Mayer는 모든 생물학적인 질문(why)에는 두 차원의 답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근접 원인(Proximate Caus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궁극 원인(Ultimate Causation)입니다. 어떤 동물이 특정한 상황에서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과, 그러한 왜 행동 특성이 진화되었는가를 모두 답해야 온건한 답이라는 것이죠.
한편, 동물학동학의 창시자 중 한명인 Nico Tinbergen(Richard Dawkins의 스승입니다. 나머지 한
명의 창시자로 불리는 사람은 Konrad Lorenz - 조류의 각인 연구로 유명하죠)은 Ernst Mayer의 논의를 확장하여 소위 "동물행동학의 네 가지 Whys"를 만들어냅니다:
1. 그 행동을 일으킨 매커니즘은 무엇인가?
2. 그 매커니즘이 어떻게 발달(development)하였나?
3. 그 매커니즘은 어떻게 진화되었나?
4. 그 행동의 생존가치 혹은 기능은 무엇인가?
굳이 대응을 시키자면 위 질문 중 1,2번은 근접 원인, 3,4번은 궁극 원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갑자기 인간의 심리에 대한 얘기에서 갑자기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얘기로 점프한 이유는? --;
첫째, 왜 인간이 아니라 동물인가? 윤리가 어쩌고 도덕이 어쩌고 사회와 문화가 어쩌고 하는 식의 떡칠을 아무리 하더라도 인간은 결국 동물의 일종입니다. 인간이 동물 중에서도 특히나 특별하다는 말이 하고 싶다면,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동물이 뭐가 있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타적 유전자, 본성과 양육 등의 저자인 Matt Ridley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독특하다. 그러나 독특하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독특한 것이 아니다. 모든 종은 그 나름의 독특한 길을 가지고 있다. --p221, 이타적 유전자.
어쩌면 인간에 대한 가장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체계적 학문의 하나는 바로 생물학입니다. 특히 범문화권에 걸친 인간의 공통적 행동을 알고자 한다면 생물학이 특히 강력한 프레임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둘째, 왜 심리가 아니고 행동인가? 동물의 거의 모든 행동은(무릎 반사 등은 제외해야겠죠) 심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50년대 인지혁명 이후 행동주의심리학이 사그라들었다는 점을 들어 행동에 대한 모든 연구들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적절치 못합니다. 행동주의는 한 시기를 풍미했던 이론이고 여전히 배울점이 많습니다. 아마도 어느 정도의 진실 - 행동은 심리를 들여다보는 상당히 투명한 거울이라는 점 - 이 담겨있었기 때문이겠죠. 행동주의 심리학의 문제는 행동을 연구했다는 점 그 자체가 아니라, "행동 만을" 연구했다는 점 즉, 블랙박스 안쪽을 무시했다는 점에 있습니다(당시로써는 어느정도 이해할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4. 근본원인분석에 적합한 심리학적 틀다시 처음 주제인 근본원인분석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인간이 관련된 시스템에 대한 근본원인분석을 하다보면 심리학이라는 도메인으로 수렴되는데, 이 도메인에서 제기되는 "왜?"에 제대로 대답을 하려면 심리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효과적인 질문(적절한 "왜?"를 묻기)을 하려고 하더라도 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에서 묻는 질문들(Four whys, Two whys)은 일견 근본원인분석의 도구인 Five whys와 유사해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심리에 이를 바로 적용하기에는 약간의 갭이 있어보입니다.
저는 이 갭(환원론적 사다리의 빈 칸)을 채워줄 적절한 심리학적 틀, 즉 근본원인분석에 필요한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적절한 대답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심리학적 틀로 진화심리학을 꼽고 싶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위에서 설명한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의 전통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인지혁명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좋은 이론이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특성들 - 예측 가능성, 교차 검증, 단순성, 내적/외적 일관성, 퍼즐풀이를 위한 틀 제공 등 - 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 글을 참고해주세요.
점심시간 끝나가기 때문에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