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직 설익은 Captology

앞서 간단히 소개한 바와 같이 Captology란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을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Captology를 소개하고 있는 Persuative Technology라는 책을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아직 너무 성글다" 였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책에서는 컴퓨터를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 - 이를테면 미투데이의 미친척, 마이스페이스의 Tom,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재롱이 같은 것)로 활용하여 이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피스의 재롱이. 그다지 성공적인 시도는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행위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원칙 중 하나로 "유사성의 원칙"이 있습니다:
People are more readily persuaded by computing technology products that are similar to themselves in some way.  (사람들은 컴퓨터 제품과 자신 사이에 닮은 점이 있을 경우에 더 잘 설득된다)

또다른 원칙인 "칭찬의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By offering praise, via words, images, symbols, or sounds, computing technology can lead users to be more open to persuasion. (단어나 이미지나 기호나 소리 등을 통해 사용자를 칭찬해주면 사람들은 더 잘 설득된다)

그런데... 제시되는 원칙들이 뭐랄까, 좀 뻔한 소리들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설명은 "왜"와 "어떻게" 입니다. 유사성의 원칙에 대해서는 "왜 자신과 닮은 social actor에게 더 잘 설득되는지", "some way"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즉 어떤 부분이 닮는 것이 특히 중요한지 같은 설명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의 원칙"도 마찬가지로 어떤 칭찬이 잘 먹히는지, 왜 잘 먹히는지, 특정 상황별로 적절한 칭찬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설명이 없다면 최소한 설명을 이끌어낼 틀이라도 제공되면 좋겠습니다.

성공한 사례 몇 가지로부터 성급하게 일반화한 소위 "원칙"들은 제가 보기에 가짜입니다. 언어학자 Noam Chomsky는 최소주의 언어이론(the minimalist program)을 통해 "문제를 다른 말로 재선언하는 것(restatement of a problem in other terms)"을 넘어서서 "진정한 설명(genuine explanation)"을 탐구하고자 하는데, 이와 유사한 맥락입니다. 저는 Captology에 진화심리학이 진정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 참고로 Chomsky는 진화심리학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적 접근이 자신의 이론에 꼭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의 언어학이 BIolinguistics로 불리는 이유죠. 이 얘기는 나중에.)

( 음...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들려주면 세상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어쩌면 제가 지금 그런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ㅎㅎ 하지만, 나름대로 다양하게 공부를 하면서 제 머리속 도구상자에 다양한 도구를 넣어보려고 시도를 해왔습니다만 진화론(theory of evolution)과 계산주의(computationalism)만큼 유용하고 보편적인 도구는 흔치 않았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화심리학이 Captology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습니다. )


2. Captology에 진화심리학 적용하기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합쳐진 결과물입니다. 인지심리학의 모듈론(modularity)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다양한 영역 특수적 모듈(domain specific modules)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진화심리학은 이 논의를 발전시켜서, 각 모듈은 과거의 특정한 진화적 환경(EEA - 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에 대한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adaptation)이라고 설명하고, 게다가 그 모듈의 갯수가 엄청나게 많다고 주장합니다(massive modularity).

진화심리학은 어떠한 모듈들이 진화되었는지(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s), 각 모듈들이 어떠한 적응 문제를 담당하는지, 어떤 입력을 통해 활성화되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여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를 탐구합니다(진화심리학이라는 틀이 제공하는 정상과학의 퍼즐 조각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집대성하여 심리학 분야에서의 "Gray's Anatomy" 같은 위대한 책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화심리학과 Captology가 만날 수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의 틀 안에서 찾아낸 각 모듈들은 바로 Captology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떠한 심리적 모듈을 자극해야 사용자로부터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자극하면 더 효과적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죠.

일례로, 직전 글에서 소개한 논문을 살펴보겠습니다(괜히 쓴게 아니라는 ㅎㅎ). 이 논문에서는 상황의 미묘한 변화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특정한 소비 행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주 단순한 절차(예쁜 여성의 이미지, 약간의 상상)만으로 남성이 로멘틱한 상황을 상기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과시적 소비 행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또, 단순한 상황에서는 선행(기부 등)에 별 신경을 쓰지 않던 남성들에게 특정한 자극(영웅심 부여 등)을 가하자 이들의 선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대충 실험 설계 해서 때려맞춘 것이라기 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An evolutionary perspective generally holds that mental mechanisms should be highly sensitive to ecological cues indicating particular adaptive problems or opportunities, such as mating opportunities (Bugental, 2000; Kenrick, Li, & Butner, 2003; Schaller, Park, & Mueller, 2003).

Much research has also shown that various cues can activate specific goal states that can influence behavior (e.g., Chartrand & Bargh, 2002; Schaller, 2003).

In line with this work, cues related to mating can activate a mating goal and its associated affective responses (Fisher, 2002; Plutchik, 1980), which in turn promote a cascade of functional perceptions, cognitions, and behaviors associated with mating success (Griskevicius, Goldstein, Mortensen, Cialdini, et al., 2006; Maner et al., 2005; Roney, 2003; Wilson & Daly, 2004).

요약: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마음의 기제는 특정 적응 문제나 기회(이를테면 짝짓기 기회)에 대한 환경적 단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단서들을 찾아냈다. 짝짓기와 관련된 단서는 짝짓기를 성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인식/인지/행동을 활성화시킨다.

이상입니다. (졸려서 여기까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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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ting Mind의 저자인 Geoffrey Miller와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 Science and Practice)의 저자인 Robert Cialdini 등이 작년에 발표한 재미난 진화심리학 논문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메이팅 마인드와 설득의 심리학. 두 권 다 강추)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Blatant Benevolence and Conspicuous Consumption: When Romantic Motives Elicit Strategic Costly Signals (요란한 선행과 과시적 소비: 로맨틱한 동기는 어떠한 경우에 값비싼 신호를 유도하는가)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조금 하고자 합니다.


1. 요란한 선행과 생물학적 이타주의

"요란한 선행"이란 남들에게 떠들석하게 알리면서 기부를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행동들을 말합니다. "과시적 소비"란 실생활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비싼 상품(다이아몬드, SUV 등)을 구매하여 과시하고 다니는 행위를 말합니다.

과시적 소비라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요란한 선행은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기에 조금 난감한 행동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낸 로봇인 우리 인간들이 행하는 이타적 행위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뭔가 설명이 필요한 특별한 현상들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유전자 선택론 및 적응주의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보통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의 이타행위(kin-directed altruism 혹은 kin selection), 비영합게임(non-zero sum game) 상황 하에서의 협력행위(reciprocal altruism)라는 두 가지 범주의 생물학적 이타주의(biological altruism)로 인간의 이타적 행동들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다시는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적선을 하거나, 각종 자선단체에 큰 돈을 기부하는 행위 등은 생물학적 이타주의라는 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이타주의에다가 진화적 시간 지연 효과(evolutionary time lags)이나 적응 비용 문제(cost of adaptation) 등을 덧붙여봐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 혹은 값비싼 신호 이론 (costly signal theory)

적선이나 기부와 같이 생물학적 이타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타행위를 설명하는 틀로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신호의 비용이 신호의 진실성을 보장한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자신이 금전적으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점을 여성에게 설득하기 위해 모종의 신호를 보내고자 하는 상황에서

"나 관대해 (신호 비용 거의 0)"

라고 백날 떠드는 것 보다

"나 어디어디 재단에 얼마 기부했어 (신호 비용은 기부금에 비례)"

와 같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먹힌다는 뜻입니다.

적선이나 기부, 특히 "요란한 선행"은 자신의 부와 지위, 관대함 같은 특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신호라고 보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설명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100년 전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Thorstein Veblen이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개념입니다.

진화심리학(당시엔 진화생물학) 분야에는 이스라엘 생물학자인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에 의해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됩니다.

동물들은 성적인 장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적응도를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신호들을 진화시켰는데(fitness indicator), 이러한 신호가 그 진실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적응도가 높은 개체만이 발현시킬 수 있는, 적응도 낮은 개체들은 따라하기 힘든 특성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condition dependence of fitness indicator). 대표적인 예가 공작새의 꼬리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초기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일례로,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I do not believe this theory, although I am not quite so confident in my scepticism as I was when I first heard it. I pointed out then that the logical conclusion to it should be the evolution of males with only one leg and only one eye. Zahavi, who comes from Israel, instantly retorted: 'Some of our best generals have only one eye!'

처음 들었을 때 만큼 확신에 차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이론을 믿지 않는다. 내가 이 이론의 논리적 결과에 따르자면 수컷은 다리와 눈을 하나만 갖도록 진화될 것이라고 지적하자, 이스라엘 출신인 자하비는 즉각적으로 응수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군 중엔 실제로 눈이 하나 뿐인 사람도 있다오!"

음. 자하비 지못미.

하지만 자하비의 이론은 얼마 후 널리 인정되었고, 도킨스 역시 마음을 바꿔 이 이론을 수용했습니다. 최근에 나온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If I were ever to rewrite the book, as a late convert to the Zahavi/Grafen 'handicap principle' (see pages 309-313) I should also give some space to Amotz Zahavi's idea that altruistic donation might be a 'Potlatch' style of dominance signal: see how superior to you I am, I can afford to make a donation to you!

(번역 생략. 책을 다시 쓴다면 자바히의 이론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추가하겠다는 말입니다.)

좀 길어졌네요. 하여간, 진화심리학자들은 값비싼 신호 이론 덕분에 "과시적 소비" 뿐 아니라 "요란한 선행" 이라는 이타적 행위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무엇을 위한 신호인가? 구애를 위한 신호!

여기까지는 배경 설명이었습니다. 다시 논문 얘기로 돌아가서...

이 논문은 과시적 소비와 요란한 선행이 일종의 값 비싼 신호(costly signal)이긴 한데, 과연 무엇을 위한 신호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역시나 세상만사를 짝짓기로 설명하고자 하는 Jeoffrey Miller 답게, 이러한 행동이 "짝(mate)에게 보내는 구애 신호"로써 진화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쓰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조금 바로 잡자면, "구애 신호의 역할 한다"가 아니라 "구애 신호의 역할 한다" 입니다.

만약 이러한 행위들이 구애 신호로 진화된 것이라면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틀 안에서 몇 가지 특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위 행위들에는 남녀간 성차가 존재할 것입니다. 둘째, 적절한 성적 자극 - 이를테면 로맨틱한 상황 - 이 제시되면 위 행위들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네 가지 재미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실험 1.  구애 신호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실험군에 로멘틱한 상황을 제시하자 (로멘틱한 상황을 제시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남성 집단에서는 과시적 소비 행위가 더 증가하였고 여성 집단에서는 요란한 선행이 증가하였습니다.

실험 2. 구애 신호가 정말 맞다면 로멘틱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과시적인 소비만 증가하고 과시적이지 않은 소비는 증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선행의 경우, 로맨틱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남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선행은 증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 과시적 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해 나머지 소비를 감소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 남자들이란.

실험 3. 위 두 실험에서 로멘틱한 상황이 주어져도 남성들의 선행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행이 만약 영웅적 행동과 관련이 있다면 남성들도 선행을 증가시킬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바람끼 많은 남성(unrestricted men)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했습니다. 한편, 과시적 소비가 자신의 금전적 관대함과 관련된 경우 여성들도 과시적 소비의 증가를 보였습니다.

실험 4. 위와 비슷하게, 선행이 만약 사회적 지위나 명예와 관련 있을 경우에도 남성들의 선행이 증가될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일치했으며, 이번에도 역시 바람끼 많은 남성(unrestricted men)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에.. 이 쯤에서 잊지 말고 나와줘야 하는 문구가 있는데, 논문의 저자들도 역시 잊지 않고 적어놨더군요: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current framework does not imply that conspicuous consumption and blatant benevolence are sexually motivated at a conscious level.

그러니깐, 이 실험들은 의식적인 성적 동기와는 관련 없어요~ 이런 얘기. 성적 동기(sexual motivation)와 성적 기능(sexual function)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면 프로이트 심리학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죠.

에 또, 저자들이 깜빡 잊고 빼먹은 것 같은 중요한 문구도 있습니다 ㅎㅎ:
유전자와 진화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얘기도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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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마전에 Read & Lead 블로그를 통해서(강추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 과시적 소비는 한물 가고 보이지 않는 표식(invisible badge)이 대세"라는 마케팅 분야의 글을 하나 읽었는데요, 좀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Today's consumer is supposed to be a little more sophisticated than that. So it's puzzling how many marketers still talk about how a certain beer or sneaker or handbag functions as a so-called 'badge.' Even hybrid cars are said to be eco-status markers that show 'conspicuous concern' about the environment. More scholarly observers call this 'signaling.' But in the end it's all repackaged Veblen: The idea is that we buy stuff mostly to impress other people.

Perhaps this was true in the past. But the time has come to retire the conspicuous consumption idea. Observers of consumer culture (marketers, to name an example) need to understand that as a concept, it's inadequate. The rest of us (consumers, that is) need to understand that even if we wanted it to work, it just doesn’t anymore.

There is a better idea--the invisible badge.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소비자는 좀 더 현명해서 과시적 소비 개념은 더이상 적절치 않다.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는 the invisible badge가 대세다. 뭐 이런 얘기)

Rob Walker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위 주장은 "틀렸습니다".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추측"할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과시적 소비라는 것은 오늘날의 소비자가 똑똑해졌기 때문에 없어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경제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과시적 소비는 (조류와 포유류의 공통 조상까지는 고사하고) 그 역사를 영장류 까지로만 치더라도 최소한 수백만년간 이어진 본성이고, 하루아침에 바뀔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소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인간이 유성생식을 하는 한, 과시적 소비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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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경제연구원(Progressive Institute of Economics)" 블로그에서 "자연주의, 기능주의 오류(自)"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중 기능주의 오류를 설명하는 부분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같습니다. 기능주의 오류 자체에 대한 반론은 아니고, 예시가 부적절한 것 같아서 첨언을 합니다.
기능주의의 오류란 어떤 현상의 기능을 원인으로 혼동하는데서 비롯되는 오류를 일컫습니다. 이 오류는 'A의 원인은 B를 하기 위함이다'라는 진술로 흔히 나타납니다. 가령 '새에게 깃털이 있는 것은 새가 날기 위해서이다'라 는 진술에서 깃털의 존재원인을 새가 날도록 하는 기능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현상의 원인과 기능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새가 날도록 하는 기능 때문에 새에게 깃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에게 깃털이 있기 때문에 새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능은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욕을 느끼는 것은 종족유지를 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진술 또한 기능을 원인으로 결론 짓는 기능주의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종족 유지의 목적 때문에 성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욕을 느끼기에 교미를 하고 종족을 유지하는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위 두 가지 예시에 나온 "잘못된 진술"들은 흔히 진화생물학자(혹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자주 씁니다. 위 설명에 의하면 진화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의 주장 상당수가 기능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깃털이 존재한다"라는 부분은 개별적인 "새 개체"에 대한 진술인 반면, "새가 날기 위해서"라는 부분은 개체의 욕구가 아닌 진화적 욕구(혹은 선택압)에 대한 진술이기 때문입니다. 즉,

(a) 새에게 깃털이 있는 것은
(b) 새가 날기 위해서이다

라는 표현에서 생략된 부분들을 합쳐서 풀어쓰면 아래와 같습니다:

(a) 대다수의 새 개체들은 깃털을 갖는데
(b) 그 이유는 날아다니는 능력을 진화시키는 방향의 선택압이 높았기 때문이다"

성욕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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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기독교 창조론, 그 중에서도 창조과학회(ICR 이건 KCR KACR이건)에서 주장하는 창조론(젊은 지구론이건 날-세대 이론이건, 지적설계론이건, 평평한 지구론이건 간에)이라고 치고,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면 이렇습니다(유신론적 진화론은  일단 제외).

창조론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에서부터 시작해서,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있지 않겠으냐고 생각하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일단 그런 말을 꺼내면 저는 다음 넷 중 하나라고 믿어버립니다:
  1.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못했다.
  2.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3.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4. 심각하게 멍청한 사람이다.

창조론이 맞고 진화론을 틀렸을 가능성은 아주아주아주아주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약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5번을 추가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5. 내가 틀렸다. 창조론이 맞고 신(혹은 지적설계자)은 존재한다.

하지만 5번은 도로 빼도록 하겠습니다. 5번이 맞다고 하더라도 철학자 러셀의 말대로 저 또한 신에게 당당하게 변명할 수 있거든요:

  "신이시여, 여전히 증거가 부족합니다. 증거가."

5번에 대해서는 나중에 쓰도록 하고, 이 글에서는 1,2,3,4번 각 경우에 대해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어보려고 해요.

1. 이 문제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못했다.

상당수는 이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진화/창조 문제에 별 관심을 안 갖고 있었거나, 조금 흥미를 느끼는 정도였겠죠. 언젠가 어떤 일을 계기로 진지하게 조금 공부를 하게 된다면 창조론에 일말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별로 신경을 안씁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2.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1번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2번에 속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어머니, 주변의 친한 친구 일부, 존경하는 전/현 직장 선/후배/동료 중 일부가 2번 범주에 속합니다. 전 될 수 있으면 이 분들과의 논쟁을 피합니다. 이미 믿음이 있고 그 믿음으로 인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사람한테 굳이 "당신 믿음은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은 깡패같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종교적 믿음이 바뀌는 사건은 평생 딱 두 번 밖에 못들어 봤습니다. 그나마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분들을 불쌍히 여긴다거나 뭐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죠. 하지만 합리적 사고와 자기 믿음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종종 합니다. 그렇지만 신에 대한 믿음 덕분에 저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간혹 2번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인류의 지성을 모욕하는 발언을 할 때가 있는데, 참 난감하죠. 살짝 토론을 할 때도 있고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꾹 참을 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3.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거나 하는 등의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아주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마음 놓고 놀려먹을 수 있는 대상입니다. :-)

일부 신자들과 상당수의 목사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3번에 속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가곤 합니다만 심증일 뿐이라서 정말 3번에 속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궁금합니다. 항상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죠.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다고 해서 3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4. 심각하게 멍청한 사람이다.

가능성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4번에 속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어쨌건 가능성이 있으니 적어만 놨습니다.

....

다양한 종교적 믿음 중에서도 창조론을 특별히 싫어하는 까닭은, 창조론이 특히나 체계적으로 반지성적이고 부도덕한 믿음일 뿐 아니라, 실제로 인류의 지성에 커다란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 생각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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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도덕의 뿌리: 우리는 왜 선한가? (The Roots of Morality: Why Are We Good?)

6장과 7장은 도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6장에서는 우리가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종교" 혹은 "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우리는 신이나 종교 없이도 선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6장에서 우리가 신이나 종교 없이도 선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면, 7장에서는 오히려 신이나 종교가 없어야 우리가 더 선하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도덕적 시대적신은 변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혹은 매우 더디게 수용하는) 종교적 교리와 경전은 이 시대의 도덕관념으로 보았을 때 더이상 선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6,7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신이 없어도 착하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6장), 오히려 신이 없는 것이 더 좋다(7장)"

이하는 6장에서 재미있었던 부분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윈주의와 도덕의 기원 (Does Our Moral Sense have a Darwinian Origin?)

우리가 왜 어떠한 것을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고 또 어떠한 것은 "부도덕"이라고 말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도덕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수준에서의 설명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번째는 조금 더 생물학적인 수준에서 "이기적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타주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고, 두번째는 조금 더 높은 수준에서 인간의 도덕 감정이라는 것에 대한 부분입니다.

첫번째 수준의 논의는 보통 생물학적 이타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6장 도입부에서 도킨스가 간단히 언급하고 있는 메커니즘들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 혈연적 이타주의
  • 호혜성 이타주의
  • 평판
  • 과시

혈연적 이타주의는 이기적 유전자 이론(혹은 포괄적응도 이론)에 의해 개체 간 유전적 근친도에 따라 이타적 행위가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혜성 이타주의는 유전적 근친도가 아니라 게임 이론(Game Theory)에 기반하여 이기적 개체들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 하기 위해 협력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설명합니다. 도킨스는 "The Origins of Virtue"라는 책을 추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이타적 유전자"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재미있어요)

네번째 메커니즘인 "과시"를 도킨스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주 재미있는 일입니다. 과시 이론(핸디캡 원리)는 이스라엘의 과학자인 아모츠 자하비의 이론인데, 초기에 도킨스는 이 이론을 "조롱"했었습니다(이기적 유전자 등에서). 그런데 이후에 입장이 바뀐 것이죠. 최근 저서 중 하나인 악마의 사도(A Devils Chaplain)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별 인기를 끌지 못했고 심할 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Amotz Zahabi의 이론은 최근에 앨런 그래펀의 힘을 빌려 완벽하게 소생했고, 지금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진지하게 고찰하는 이론이 되어 있다. --p262

신진 진화심리학자 중 한명인 제프리 밀러는 메이팅 마인드(The Mating Mind)에서 자하비의 초기 이론이 인정받지 못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처음에 반발을 산 것은 생물학자들이 신호 비용에 대한 경제학계의 연구를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제학계의 게임이론가들은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한 상황에서 신호에 신뢰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들은 신호전달이론을 개발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신호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한 종류의 신호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신호를 만든 자의 진심을 나타내는 믿을 수 있는 지표다. 다른 하나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신호로서, 경제학자들은 빈말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빈말은 믿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빈말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며,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용이 수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p194~195

두번째 수준 - 인간의 도덕 판단 - 의 논의는 다음 절에서 별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례 연구로 살펴본 도덕의 뿌리 (A Case Study in the Roots of Morality)

이 부분은 마크 하우저의 "도덕적 마음"을 요약한 내용인데, 다양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더 도덕적이라고 느끼는지에 대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도덕 판단의 기저에 "보편 도덕 문법" 같은 것이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말하는 보편 도덕 문법이란 촘스키의 "(언어학적) 보편 문법"에서 따온 개념입니다. 사실 "문법"이라는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많은데, 문법 보다는 규칙이라고 하면 조금 더 나을 것 같아요. (여전히 오해의 소지는 있습니다만)

신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선하려 애쓰겠는가? (If There is no God, Why be Good?)

이 절의 제목에 대해서는 다음 인용구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에게 잘 보이려고 선하게 사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생각이라는 주장입니다:
질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 아주 야비해 보인다. 종교인이 내게 그런 식으로 물을 때(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은 유혹을 순간적으로 느끼곤 한다. "당신이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마이클 셔머는 "선과 악의 과학"에서 그것을 "논쟁 중단 장치"라고 불렀다. 신이 없을 때 자신이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부도덕한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신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는 충고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신의 감시를 받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선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선하려면 신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치명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p344~345

이 절에서 두번째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핑커가 "빈 서판"에 썼던 몬트리올 파업 사태를 인용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경찰이 파업하자 지옥이 되어버린 도시"를 읽어주세요.

마지막으로, 가치 판단의 문제와 사실의 문제를 구분해야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과 가치를 혼동하는 문제는 신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 매우 흔하게 범하는 오류 중 하나입니다:
설령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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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종교의 뿌리(The Roots of Religions)

5장에서는 종교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들을 제시하고, 최근에 새로운 종교가 생겨난 사례(화물 숭배)를 살펴봅니다.

종교라고 하는 인류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현상을 왜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신다면 다음 책들 중 한 권을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 진화심리학(The Evolutionary Psychology) by David Buss
  •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by Richard Dawkins
  •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s of Virtue) by Matt Ridley
  • 통섭(Consilience) by Edward Wilson

참고로, 5장의 목적은 "종교의 뿌리를 완벽하게 설명하는 이론"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봐라, 종교는 세상 어디에나 있잖아. 신이 있다는 증거야"라는 식의 주장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도킨스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신이 그랬어"라는 것이 유일한 설명이 아니며, 그것보다 개연성이 높은 다른 대안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는 서론이 길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5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가설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집단 선택(Group Selection) 가설. 엄밀히는 집단 선택이 아니라 생태적 대체(ecological replacement).
  • 진화적 적응의 부산물(Evolutionary Byproducts) 가설
  • 밈 가설(Meme)

1. 집단 선택 가설

기독교가 일종의 집단 선택을 통해 살아남았다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고학자인 Colin Renfrew는 기독교가 일종의 집단 선택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내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형제애를 고취시키고, 덜 종교적인 집단들의 희생하에 종교적인 집단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집단 선택론 옹호자인 D.S.윌슨은 "다윈의 대성당"에서 독자적으로 비슷한 주장을 전개했다. --p259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도킨스는 집단 선택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킨스의 가장 대표적인 저서인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전체 스토리는 집단 선택론을 비판하고 유전자 선택론(Gene Selection)을 제안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죠:
집단 선택을 경시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집단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문제는 그것이 진화에 의미 있는 힘을 발휘하는가의 여부다. 그것이 더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과 맞붙었을 때,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가상의 부족을 예를 들어, 부족을 위해 죽고 거룩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순교자들이 주류인 군대에 이기적인 전사가 한 명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투에서 몸을 사렸기에 승자가 될 가능성은 약간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순교한 동료들보다는 평균적으로 더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순교자들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보다 번식할 가능성이 더 높고, 순교를 거부한 그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순교하는 경향은 세대가 지날수록 약해질 것이다(즉,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인류 부족 간 경쟁의 경우 집단 선택과 유사한(엄밀히 말하면 "생태적 대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델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고 말하고 있군요:
집단 선택이 진화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한 상황을 기반으로 한 수학 모형을 구축할 수 있다. 그 특수한 조건들은 대개 자연 상태에서는 비현실적이지만, 인간의 집단들 사이에서는 종교가 바로 그런 비현실적인 특수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omitted...) 다윈이 개체 수준의 선택(Individual Selection)을 옹호하면서도 인류 부족을 논의할 때는 집단 선택론에 가까이 다가가곤 했다는 점만 언급하기로 하자:

두 원시 부족이 같은 고장에 살면서 경쟁을 한다고 하자. (다른 조건들은 동등할 때) 한 부족이, 서로 돕고 지켜주는 용감하고 협력적이고 신실한 구성원들의 수가 더 많다면 그 부족이 번성하여 다른 부족을 정복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뭉치지 않을 것이고, 뭉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위의 자질들을 갖춘 부족은 널리 퍼져나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전체를 보건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족도 다른 우수한 자질을 지닌 부족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p261~262

2. 진화적 적응의 부산물 가설

종교 자체가 어떠한 적응 문제(Adaptive Problem)를 해소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닌 다른 진화적 적응의 부산물이라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은 "무엇에 대한 부산물인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뉘는데 내용이 좀 길어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종교는 진화적 부산물인가"라는 글을 참고해주세요.

3. 밈 가설

밈이란 리처드 도킨스가 고안한 말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의 뒷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필자는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최근에 바로 이 지구 위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omitted...) 그것은 여전히 어린 상태로 있어서 진화의 토대가 될 원시 수프(primeval soup)를 찾아 허둥지둥 떠돌아다니지만, 헐떡이며 따라오는 구시대의 유전자를 저 뒤에 남겨 놓을 만큼의 진화의 속도를 벌써 획득하고 있다. (...omitted...) 그 새로운 수프는 문화의 수프이다. 그 새로운 복제자에 대한 어떤 이름이 필요한데, 문화의 전달 단위나 모방 단위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명사이어야 할 것이다.

모 방에 알맞은 그리스어의 어근은 'mimeme'라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것은 'gene'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그리스어의 어근을 'Meme'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에 대해 고전학자들의 관용을 바라는 바이다. 만약 이것이 허락된다면 Meme이라는 단어는 기억(memory) 또는 이것에 상당하는 프랑스어(meme) 단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Meme 의 예에는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의 양식, 단지 만드는 법, 또는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하는 데 정자나 난자를 우난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Meme이 Meme 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는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처럼 그 생각을 잘 이해하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p308~309

종교의 뿌리에 대한 밈 가설이란 유전자 부동(Genetic Drift)와 유사한 방식으로 종교에 대한 밈들이 임의적으로 진화해왔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생존가 높은 밈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절대적인 '정점'을 지니거나 기존 밈복합체와 화합함으로써 밈풀에서 생존가를 지닐 법한 종교적 밈들의 목록을 몇 가지 나열해보자:

  • 당신은 죽어도 살 것이다.
  • 당신이 순교한다면 72명의 처녀와 즐길 수 있는, 천국 중의 천국으로 갈 것이다(그 불운한 처녀들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
  • 이교도, 신성 모독자, 배교자는 죽여야 한다(혹은 가문에서 추방하는 등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
  • 신을 믿는 것은 가장 큰 미덕이다.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라.
  • 신앙(증거 없는 믿음)은 미덕이다. 당신의 믿음이 증거와 어긋날수록, 당신은 더 고결해진다. 증거와 이성에 맞서, 진정으로 기이하고, 지지를 못 받고, 지탱될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믿는 믿음의 대가는 특히 커다란 보상을 받는다.
  • 모든 사람들, 종교 신앙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존경을 자동적으로 표해야 한다.
  •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기이한 것들(삼위일체, 성체화, 성육화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 그 시도가 그것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라.
  • 아름다운 음악, 미술, 조각은 자기 증식하는 종교 개념의 발현물들이다.

아마 위의 목록 중 일부는 절대적인 생존가를 지니고 있어서 어느 밈복합체에서도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일부 밈들은 딱 맞는 배경을 이루는 다른 밈들하에서만 생존하면서 개체가능한 밈복합체를 구성한다. 서로 다른 두 종교는 두 개의 대체될 수 있는 밈복합체로 볼 수도 있다. 아마 이슬람교는 육식동물 유전자 복합체에 상응하고, 불교는 초식동물 유전자 복합체에 상응할 듯 하다. 한 종교의 개념들은 그 어떤 절대적인 의미에서도 다른 종교의 개념들보다 '더 낫지' 않다. 육식동물 유전자들이 초식동물 유전자들보다 '더 낫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의 종교적 밈들이 반드시 살아남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자기 종교의 다른 밈들이 있을 때 번성한다는 의미에서 우수하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밈들이 있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이 모형에 따르면 이를테면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교는 반드시 개인들이 설계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같은 밈복합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있을 때 번성하는 대체 가능한 밈들의 집합으로서 따로 진화한 것들이다.

--p303~307

여기까지가 종교의 뿌리를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들입니다. 이 중 하나만 옳고 나머지는 틀렸다거나, 이 이외의 가능성은 없다거나, 이 가설들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고, 위 가설 중 일부가 종교 현상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5장의 마지막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급속도로 만들어진 최근 사례인 "화물 숭배 의식"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화물 숭배 의식"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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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

4장에서는 3장에서 비판하지 않고 넘어간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5번 "설계 논증"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대안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인본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설계 논증의 한 형태인 "보잉 747 논증"을 변형하여 "궁극적 보잉 747 논증"을 만들어내는데, 이 논증은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를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보잉 747과 고물 야적장

이 장은 현대의 가장 대중적인 설계 논증으로, 많은 유신론자들 사이에서 "완벽한고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비치는 비개연성(improbability) 논증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호일(프레드 호일)은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이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낼 확률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유를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를 언급할 때 활용해왔으며, 그런 언급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아주 간결하게 줄인 이것이 바로 창조론자가 선호하는 논증이다. --p174~175

한편, 지적 설계론(ID - Intelligent Design) 또한 "싸구려 턱시도를 차려입은 창조론"일 뿐이며, 설계 논증의 변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자가 남용하는 비개연성 논증은 늘 똑같은 형식을 취하며, 그것은 창조론자가 정략적으로 지적 설계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위장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p175

설계론자(혹은 창조론자)들의 비개연성 논증이 공격하는 지점은 크게 네 곳입니다.
  1. 물리법칙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터인데, 어떻게 물리법칙들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2.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금과 조금 달랐거나, 지구의 자전궤도가 조금만 더 타원이었거나, 목성이라는 거대한 중력 방어막이 없었다면 지구에는 생명이 살 수 없었을터인데, 어떻게 지구가 딱 이와 같은 환경을 갖추게 되었을까?
  3. 원시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이 우연히 탄생할 확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어떻게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4. 원시 생명체가 어떻게 지금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유기체로 변할 수 있었는가?
설계논증에 의하면 위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초월적 설계자에 즉, 신에 의해서"가 됩니다.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설계논증을 거부하고 1,2,3번에 대해서는 "인본 원리"로, 4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본원리

인본원리는 직관적이고 단순합니다. "어떻게 지구는 딱 생명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이루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고, 각각 다양한 환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중 극히 일부가 생명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하나에서 살고 있는 생물인 우리 인간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생성해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우주에서 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본 가설은 통계적 성격을 띄는데, 우주라는 시공간은 과학자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아주 보수적으로 추정을 하더라도 "우주에 있는 쓸 만한 행성의 수는 1000만조 개(p215)"에 이른다고 합니다. 생명의 기원 즉, DNA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자발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행성 10억 개 중 하나에서나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희박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생명이 출현할 행성은 10억 개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빅뱅 이후 150억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생명의 자발적 탄생은 필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어떻게 해서든 일단 최초의 생명(자기복제가)이 단 한 번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그 이후는 더 이상 확률 계산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각 개체는 자신과 닮은(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자손을 낳고, 각각 조금씩 다른 자손들(변이)이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경쟁), 주어진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잘 적응하는 자손이 더 높은 확률로 생존 및 번식하게 되며(선택), 이 개체의 자손들은 이 개체와 닮았을 것이므로 더 높은 생존가를 갖고, ... 과 같이 변이와 경쟁 그리고 선택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다윈 진화론의 골자입니다.

위 방식에 의하면 설계자 없이도 우연적 변이와 자연선택의 반복을 통해 점점 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이 설계 논증의 핵심을 파괴하는 강력한 의식-각성제(Consciousness Raiser)라고 말합니다:
철학자 Daniel Dennett은 진화가 우리가 지닌 가장 오래된 개념 중 하나를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크고 엄청나고 명석한 것이 그보다 못한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나는 그것을 적하(trickle-down) 창조론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창이 창 제작자를 만드는 광경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편자가 대장장이를 만드는 광경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기가 도기공을 만드는 광경도 결코 못 볼 것이다." Charles Darwin은 지극히 반직관적인 일을 하는 작동 가능한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사상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의식을 일깨우는 힘도 제공했다.

--p182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설계 논증의 단짝 중 하나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C - Irreducible Complexity) 개념입니다. IC란:
눈이나 날개 같은 극도로 복잡한 기관은 완벽한 형태가 갖춰지기 전에는 개체에게 아무런 이점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특성 상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다.

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즉, 눈은 "보든지 못 보든지 둘 중 하나이며, 날개도 날든지 못 날든지 둘 중 하나라는" 주장입니다.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반쪽짜리 눈 혹은 반쪽짜리 날개는 개체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눈 혹은 완전한 날개로 진화될 수 없다는 것이죠.

도킨스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개념이 가지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비개연성 논증을 전개하고자 하는 창조론자들은 언제나 생물학적 적응이 대박 아니면 깡통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대박 아니면 깡통' 오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수술로 수정체를 제거한 백내장 환자는 안경이 없으면 선명한 상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무에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볼 수 있다. 반쪽짜리 날개가 온전한 날개보다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날개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낫다. 반쪽(50퍼센트)짜리 날개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속도를 늦춤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51퍼센트짜리 날개는 그보다 약간 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당신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다.

(...omitted...)

마찬가지로, 50퍼센트짜리 눈이 49퍼센트짜리 눈으로는 구하지 못할 목숨을 구해줄 상황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편형동물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반쪽짜리 눈보다도 못한 눈을 갖고 있다. 앵무조개(고생대와 중생대에 우글거렸던, 멸종한 암모나이트의 사촌)는 질적인 측면에서 편형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빛과 그늘을 감지하지만 상을 볼 수 없는 편형동물의 눈과는 달리, 앵무조개의 눈에는 상이 맺힌다. 하지만 그 상은 우리 눈에 맺히는 상과는 달리 뿌옇고 흐릿하다. 그 차이를 정확히 숫자로 표시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정신이라면 이 무척추동물들의 눈과 다른 많은 동물들의 눈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그 눈들으 모두 앞서 언급한 완만한 산비탈에 죽 놓여 있다는 사실을(점진적이라는 뜻)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p190~191

도킨스가 생각하기에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개념의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발견된다면 Charles Darwin의 이론은 무너지겠지만, 마찬가지로 그것이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것은 이미 지적 설계론을 붕괴시켰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고 앞으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신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신이 환원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리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p194

여담: The Mating Mind의 저자인 Geoffrey Miller는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형질(그는 이것을 "혁신의 문지방"이라고 부릅니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성선택(Sexual Selection)에 기반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The Mating Mind p250~270).

궁극적 보잉 747 (Ultimate Boeing 747 Gambit)

다음은 보잉 747 논증을 변형한 "궁극적 보잉 747 논증"의 요약입니다. 도킨스는 이 논증을 통해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장은 내 책의 핵심 논증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한 말을 또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것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1. 여러 세기 동안 인간의 지성에 도전한 가장 큰 과제들 중 하나는 우주의 복잡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설계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2.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실제 설계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시계 같은 인공물의 경우, 지적인 공학자가 설계자였다. 같은 논리를 눈이나 날개나 거미나 사람에게 적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3. 그 유혹은 잘못된 것이다. 설계자 가설은 즉시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통계적 비개연성을 설명하라는 문제였다. 우리는 스카이훅이 아니라 기중기가 필요하다. 기중기만이 단순한 것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기중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다. 다윈과 그의 후계자들은 경이로운 통계적 비개연성과, 설계된 듯한 모습을 한 생물들이 어떻게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는 생물에게서 나타나는 설계라는 환각이 그저 환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우리는 아직 물리학에서는 상응하는 기중기를 찾지 못했다. 어떤 유형의 다중우주 이론이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다윈주의에 비해 덜 만족스럽다. 행운을 더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본 원리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직관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운을 가정할 수 있게 해준다.
  6. 우리는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만큼이나 강력한 기중기가 물리학에서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설령 다윈주의와 맞먹는 아주 흡족한 기중기가 물리학 분야에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비교적 약한 기중기들도 인본 원리의 부추김을 받으면 지적 설계자라는 자멸하는 스카이훅 가설보다 더 낫다.

이 장의 논증이 받아들여진다면, 종교의 실질적인 전제(신 가설 - God Hypothesis)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p244~246
"확실하다"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다"인 이유는 2장에서 말한대로, 신 존재에 대한 확실한 부정(확률 스팩트럼의 7번)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번역본 표지 뒷면에는 "신이 없음을 입증했다"는 식으로 나와있는데, 과장입니다. 신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론자들이 우쭐할 필요는 전혀 없는데, 신의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데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신 뿐만 아니라, 도깨비, 귀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는 것은 "지적으로 충실한 무신론자"가 되는 것 보다 조금 더 힘든데, 왜냐하면 무신론자는 "신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만 하면 되지만 유신론자는 "신이 있음"과 더불어 그 신이 자신이 믿는 바로 그 신이라는 점 까지도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한편, 불가지론자는? 아주 쉽죠. :-)

대부분의 유신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 고민을 안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들은 "지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고 싶다기 보다 "영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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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들 중 하나로 "진화적 부산물" 가설이 있습니다. 이 글은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설명하고 있는 진화적 부산물 가설을 요약/발췌한 것입니다.

참고로,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적 부산물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신 분은 "초간단 진화심리학 소개"를 먼저 참고해주세요.

종교를 진화적 부산물로 본다면 "무엇에 대한 부산물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고, 이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부산물 가설은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도킨스는 여러 가지 부산물 가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중 세 가지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가설들은 서로 대립되는 가설이 아니라 양립 가능합니다.

1. 어른들이 엄숙하게 하는 말을 비판없이 수용하기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휴리스틱:
내 특정한 가설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보다도 더, 앞선 세대들의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생존하며, 그 경험을 아이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대물림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 아이들은, 절벽 끝으로 가서는 안된다, 먹어본 적이 없는 붉은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물에서 헤엄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소평가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경험 법칙(the rule of thumb을 번역한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상관 없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휴리스틱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을 지닌 아이의 뇌는 선택적 이점이 있을 것이다.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부모의 말에 따르라. 부족 원로들의 말을 따르라. 특히 그들이 엄숙하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할 때는 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의심하지 말고 따르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매우 유익한 규칙이다. 그러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잘못될 수 있다.

(...omitted...)

아이는 "악어가 우글거리는 림폼포에서 헤엄을 치지 말라"는 좋은 조언이지만, "보름달이 뜰 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는 기껏해야 시간과 염소를 낭비시키는 조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좋은 훈계든 나쁜 훈계든, 똑같이 믿을 만한 것처럼 들린다. 둘 다 높이 평가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훈계로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세계, 우주, 도덕, 인간 본성에 관한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똑같이 엄숙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들을 (의미 있는 것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까지) 통째로 전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p266~270

위 가설은 실제 세계의 종교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지역별로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임의의 신앙이 대물림될 것이고, 그 신앙은 비료가 작물에 좋다는 등의 유용한 지혜와 동등한 자격으로 믿어질 것이다. 또 미신을 비롯한 비사실적인 신앙들이 무작위적 표류(Genetic Drift)나 다윈의 선택(Natural Selection)과 유사한것을 통해 국지적으로 진화하여 결국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상당히 분화한 패턴을 드러낼 것이다. --p270

특히, 많은 종교들이 모태 신앙, 유아 세례 같은 것을 강조하는 이유를 어쩌면 이 가설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종교 지도자들은 아이의 뇌가 취약하므로 일찌감치 교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회는 호언장담한다. "내게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려오면, 사람을 만들어주겠다." 그것은 진부하지만 정확한 (혹은 사악한) 말이다. 더 최근으로 내려오면, '가족에 초점을(Focus on the Family)' 운동을 창시한 James Dobson도 그 원리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그들이 듣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p270~271

지속적인 세뇌를 당하면 "아주 기이한 주장들"을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참으로 취약한 것 같아요: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우리에게 좀 기이해 보이는 것은 그저 그것들이 친숙하지 않아서다. 모든 종교 신앙들은 그 안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보이어는 카메룬의 팡족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다고 한다:

마녀에게는 밤에 날아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집착하는 동물과 흡사한 장기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또 마녀들이 가끔 모여서 대규모 연회를 벌이는데, 그곳에서 희생자를 잡아 먹고 다음에 또 다른 희생자를 공격할 계획을 짠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마녀가 마을 위를 날아다니거나 바나나 잎사귀 위에 앉거나 사람들에게 마법의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친구의 친구가 진짜로 보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보이어는 이어서 개인적 일화를 언급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어느 저녁 만찬에서 이런저런 별난 습속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명한 신학자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인류학이 대단히 흥미롭고도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주전자와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 신학자가 주류 기독교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었을 것이다:
  •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즉시 부활했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이기도 하다)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채 '승천했다'.
  • 빵과 포도주는 사제(고환을 지녀야 한다)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p271~273

2. 선천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

두 번째는 종교가 본능적 이원론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종교는 부산물이다"라는 견해의 옹호자인 심리학자 PaulBloom은 아이들이 본래 이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종교는 그런 본능적인 이원론의 부산물이다. 그는 우리 인간, 특히 아이들이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주장한다. --p274~275

천선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의 결합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블룸은 아이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원론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실험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이원론적인 성향이 뇌에 새겨져 있음을 시사하며, 블룸에 따르면 그것이 종교 개념을 포용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블룸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창조론자의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심리학자 Deborah Keleman이 "아인들은 직관적인 유신론자인가"라는 논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은 모든 것에 목적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룸은 '비를 내리기 위한' 것이다. 뾰족한 바위는 '동물들이 가려울 때 대고 긁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론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타고난 목적론자이며, 자른 후에도 결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천성적 이원론과 천성적 목적론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로 향하게끔 우리에게 성향을 부여한다. (...omitted...) 이원론은 영혼을 몸의 통합된 일부가 아니라 몸에 깃든 별개의 것으로 믿게 한다(Steven Pinker는 빈서판이라는 저서에서 이를 Ghost in the Machine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분리된 영혼이 몸이 죽은 뒤 다른 어딘가로 옮겨진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순수한 영혼이라고 즉, 복잡한 물질의 창발적 특성이 아니라 물질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이의 목적론은 더욱 확연히 종교를 받아들이게끔 우리를 설정해놓는다. 모든 것이 목적은 지닌다면, 그것은 누구의 목적인가? 물론 신의 목적이다.

--p276~277

3. 자기기만의 진화

이 가설은 Robert Trivers와 Loinel Tiger(이름이 재미있군요)가 제시한 것입니다.
Robert Trivers는 "사회적 진화"에서 1976년에 제시했던 자기기만의 진화론을 더 확장했다: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에게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이고자 할 때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힐끔거리는 눈, 땀이 밴 손바닥, 갈라진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무의식적으로 사기를 치게 되면, 사기꾼은 관찰자에게 이런 신호들을 숨길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사기를 칠 때 수반되는 초조함을 느끼지 못한 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류학자 Lionel Tiger도 "낙천주의: 희망의 생물학"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런 형태의 건설적인 비합리성은 Robert Trivers의 지각 방어(Perceptual Defense)를 다룬 대목에도 언급된다:

인 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들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것들은 잘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역사 때문이든 실험상의 조작 때문이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야만 지각한다.

이것이 종교의 갈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p286~287

도킨스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Edward Wilson(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통섭 - Consilience - 의 저자)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당과 사제의 자기 기만은 자신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만을 강화시킨다. --p244,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여담: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현재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강북에 있는 S모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었는데 80년대에 번역/인쇄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표지 안쪽에 "금서"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예전에 찍었던 것 같아요. ㄷㄷㄷ 사회생물학은 한 때 많은 오해를 받았던(사실은 지금도 받고 있는) 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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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글을 쓰다가 진화심리학을 언급할 일이 있으면 링크를 걸기 위해 진화심리학에 대해 짧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진화심리학 = 진화생물학 +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의 이론들을 심리학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체의 다양한 기관이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된 적응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눈은 외부의 사물을 보기 위한 적응 기관이고,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한 적응 기관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인간의 마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심리적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모듈들은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되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한 모듈, 언어 습득을 위한 모듈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 모듈은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이라고 부릅니다.

진화의 세 가지 산물: 적응, 부산물, 노이즈

(꼭 진화심리학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과정은 "적응, 부산물, 노이즈"라는 세 가지 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 부분은 David Buss의 "The Evolutionary Psychology"를 요약/번역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 적응(Adaptation) - 특정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누적된 결과로 만들어진 유전성이 있고 발달 과정상 안정적인 형질. 예를 들면 탯줄은 태아가 산모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진화된 "적응"으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부산물(By-products) - 진화적 적응의 여파로 생겨난 목적 없는 형질. 예를 들면 배꼽. 배꼽 그 자체는 어떠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진화된 것이 아니라, 탯줄을 끊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흔적입니다. 부산물은 적응의 흔적이기 때문에 적응과 마찬가지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노이즈(Noise) - 돌연변이,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 발달 상의 어떠한 사건 등으로 인해 개체에 가해진 임의적인 산물. 예를 들면 배꼽의 모양. 노이즈는 적응이나 부산물과 달리 개체 사이에 일관성이 전혀 없습니다.
진화심리학(혹은 진화생물학)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산물은 적응과 부산물 입니다. 특히 무엇이 진화적 적응이고 무엇이 부산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를 들어 촘스키(Noam Chomsky)는 언어 기관(FLN)이 부산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핑커(Steven Pinker)는 이 입장에 강하게 반대합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는 부산물인가"와 같은 식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위에서 설명한 엄밀한 학술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며, "부산물"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용어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 고작 부산물 따위로 취급하다니"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많이 봤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진화심리학적 설명틀

진화심리학의 장점 중 하나는 "진화생물학"이라는 견고한 학문으로부터 훌륭한 이론틀이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다양한 가설들은 다음과 같은 분석틀에 의해 제약되고 검증받을 수 있습니다:
  • 일반 이론 - 최상단에는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 놓여 있습니다. 포괄적응도란 어떤 개체의 행동이 자기 자신의 적응도(Fitness)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혈연관계에 있는)의 적응도에도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여 계산된 적응도를 말합니다. 개체는 포괄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최상단에 놓인 일반 이론입니다.
  • 중간 수준의 이론 - 일반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즉, 일반 이론의 틀 안에서) 부양 투자(Parental Investment)나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과 같은 몇 가지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양 투자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암컷이 수컷에 비해 더 짝짓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고,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개체들 사이에서 이타성이 발현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 구체적 가설과 예측 - 일반 이론과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공하는 틀로부터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empirically testable) 다양한 구체적 가설과 예측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틀이 점점 강력해지고 퍼즐 조각들이 모일수록 진화심리학은 "그냥 그런 소설일 뿐(just so stories, evolutionary storytelling)"이라는 일부 비판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됩니다.

진화적 적응 환경, 적응의 시간 지연

진화적 적응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진화적 적응에는 그에 따른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이 존재합니다. 허파가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가/장소와 심각이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기/장소가 다르므로, 허파의 EEA와 심장의 EEA는 서로 다릅니다. 심리 모듈의 적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EEA들을 갖겠죠. 인간 고유의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낸 적응 환경을 대체로 10만 년 전(홍적세) 아프리카로 보고 있습니다.

적응의 또 다른 특성에는 시간 지연(Evolutionary Time Lags)이 있는데, 진화적 적응이라는 것은 몇몇 특수한 상황(무기경쟁, 특정한 성선택 매커니즘 등과 같이 일종의 feedback loop가 만들어지는 경우)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수십~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지질학적 스케일의 사건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곧바로 해당 환경에 대한 적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십만 년 동안(특히 최근 만년 이내에) 인간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해왔고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상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단 것(초콜렛 등)에 강력하게 끌리는 본능은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는 뱀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배우지만 총기나 전기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학습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

이 부분은 사견입니다.

(짧은 이 글에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저는 진화심리학이 설명가능성, 설명의 경제성, 내적 일관성, 예측가능성, 반증가능성, 퍼즐풀이의 틀 제공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발달/정서/학습/아동/신경/교육/공학/언어/이상 심리 등 어떠한 심리학 분야가 되었건 진화심리학적 설명틀을 밑바탕에 깔고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굉장이 많은 표현이라 약간 부연을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과학적"이라는 말은 "완성된"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과학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완성되고 변치 않는 이론은 보통 과학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둘째, "진화심리학이 매우 훌륭하다"라는 주장은 "진화심리학만으로 인간의 모든 심리/행동을 설명해야 한다/설명할 수 있다"는 (크게 잘못된) 주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학자들마다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의 범위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진화심리학은 "시대와 문화권에 상관 없이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리/행동 상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진화심리학의 설명틀은 굉장이 성글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온갖 사이비잡탕 이론이 난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심리학들 - 특히 프로이트 등 - 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탄탄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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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신 가설(The God Hypothesis)

각 장이 시작하는 부분에 짧은 경구들이 들어 있는데, 2장의 경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The religion of one age is the literary entertainment of the next). --랠프 월도 에머슨

사실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 국가의 종교는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 신화를 문학으로 배울 뿐 문자 그대로 오류가 하나도 없는 역사책 혹은 과학책으로 배우지는 않습니다. 반면 축자영감설 혹은 무오설을 따르는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에게 성경은 역사책이고 과학책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내놓은 성경 개역개정판을 놓고서도,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또 설교를 하는 목사들은 "너무 자유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2장의 핵심 내용은 "신 가설"은 엄연한 과학적 가설이고, 확률론적 접근을 통해 "신 존재"의 개연성을 따져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신 가설"을 정의하고, 이 가설의 다양한 버전들(다신교, 일신교, 자연신교 등)을 살펴보고, 무신론도 아니고 유신론도 아닌 부류에 속하는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또 NOMA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 외계인과 신의 존재에 대한 추론 등을 이야기 합니다.

2.1. 신은 착각?

도킨스는 "신 가설(The God Hypothesis)"을 정의하기에 앞서 자신이 말하는 "신"의 의미를 명확히 한정짓고 있습니다. 그 전에 기독교의 신인 야훼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시작하는데 상당히 과격합니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p50

하지만 이 번역은 원문에 비해 약간 "덜 과격하게" 다듬어진 것으로,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심 많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괴물 지배욕 변태(control freak),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 혐오, 동성애 증오, 인종주의, 유아살해, 대량학살, 자식살해,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악의적인(malevolent) 난폭자.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is arguably the most unpleasant character in all fiction: jealous and proud of it, a petty, unjust, unforgiving control freak, a vindictive bloodthirsty ethnic cleanser, a misogynistic, homophobic, racist, infanticidal, genocidal, filicidal, pestilential, megalomaniacal, sadomasochistic, capriciously malevolent bully.)

야훼 험담을 늘어놓은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신이 "이런 쉬운 표적"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가 공격하고자 하는 신은 조금 더 넓은 개념입니다: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 --p51

이것이 도킨스가 생각하는 신 개념이고 야훼를 비롯하여 다양한 신이 이 범주에 포함되겠죠. 신 가설이란 "그러한 신 - 초자연적 인격신 - 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말합니다. 물론 도킨스가 신 가설을 정의하는 이유는 그 가설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설을 거부하고 다음의 대안적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