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are more readily persuaded by computing technology products that are similar to themselves in some way. (사람들은 컴퓨터 제품과 자신 사이에 닮은 점이 있을 경우에 더 잘 설득된다)
By offering praise, via words, images, symbols, or sounds, computing technology can lead users to be more open to persuasion. (단어나 이미지나 기호나 소리 등을 통해 사용자를 칭찬해주면 사람들은 더 잘 설득된다)
An evolutionary perspective generally holds that mental mechanisms should be highly sensitive to ecological cues indicating particular adaptive problems or opportunities, such as mating opportunities (Bugental, 2000; Kenrick, Li, & Butner, 2003; Schaller, Park, & Mueller, 2003).
Much research has also shown that various cues can activate specific goal states that can influence behavior (e.g., Chartrand & Bargh, 2002; Schaller, 2003).
In line with this work, cues related to mating can activate a mating goal and its associated affective responses (Fisher, 2002; Plutchik, 1980), which in turn promote a cascade of functional perceptions, cognitions, and behaviors associated with mating success (Griskevicius, Goldstein, Mortensen, Cialdini, et al., 2006; Maner et al., 2005; Roney, 2003; Wilson & Daly, 2004).
요약: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마음의 기제는 특정 적응 문제나 기회(이를테면 짝짓기 기회)에 대한 환경적 단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단서들을 찾아냈다. 짝짓기와 관련된 단서는 짝짓기를 성공시키기 위한 다양한 인식/인지/행동을 활성화시킨다.
I do not believe this theory, although I am not quite so confident in my scepticism as I was when I first heard it. I pointed out then that the logical conclusion to it should be the evolution of males with only one leg and only one eye. Zahavi, who comes from Israel, instantly retorted: 'Some of our best generals have only one eye!'
처음 들었을 때 만큼 확신에 차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이론을 믿지 않는다. 내가 이 이론의 논리적 결과에 따르자면 수컷은 다리와 눈을 하나만 갖도록 진화될 것이라고 지적하자, 이스라엘 출신인 자하비는 즉각적으로 응수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군 중엔 실제로 눈이 하나 뿐인 사람도 있다오!"
If I were ever to rewrite the book, as a late convert to the Zahavi/Grafen 'handicap principle' (see pages 309-313) I should also give some space to Amotz Zahavi's idea that altruistic donation might be a 'Potlatch' style of dominance signal: see how superior to you I am, I can afford to make a donation to you!
(번역 생략. 책을 다시 쓴다면 자바히의 이론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추가하겠다는 말입니다.)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current framework does not imply that conspicuous consumption and blatant benevolence are sexually motivated at a conscious level.
유전자와 진화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얘기도 아니예요~
Today's consumer is supposed to be a little more sophisticated than that. So it's puzzling how many marketers still talk about how a certain beer or sneaker or handbag functions as a so-called 'badge.' Even hybrid cars are said to be eco-status markers that show 'conspicuous concern' about the environment. More scholarly observers call this 'signaling.' But in the end it's all repackaged Veblen: The idea is that we buy stuff mostly to impress other people.
Perhaps this was true in the past. But the time has come to retire the conspicuous consumption idea. Observers of consumer culture (marketers, to name an example) need to understand that as a concept, it's inadequate. The rest of us (consumers, that is) need to understand that even if we wanted it to work, it just doesn’t anymore.
There is a better idea--the invisible badge.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소비자는 좀 더 현명해서 과시적 소비 개념은 더이상 적절치 않다.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는 the invisible badge가 대세다. 뭐 이런 얘기)
기능주의의 오류란 어떤 현상의 기능을 원인으로 혼동하는데서 비롯되는 오류를 일컫습니다. 이 오류는 'A의 원인은 B를 하기 위함이다'라는 진술로 흔히 나타납니다. 가령 '새에게 깃털이 있는 것은 새가 날기 위해서이다'라 는 진술에서 깃털의 존재원인을 새가 날도록 하는 기능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현상의 원인과 기능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새가 날도록 하는 기능 때문에 새에게 깃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에게 깃털이 있기 때문에 새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능은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욕을 느끼는 것은 종족유지를 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진술 또한 기능을 원인으로 결론 짓는 기능주의의 오류에 해당합니다. 종족 유지의 목적 때문에 성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욕을 느끼기에 교미를 하고 종족을 유지하는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오랫동안 별 인기를 끌지 못했고 심할 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Amotz Zahabi의 이론은 최근에 앨런 그래펀의 힘을 빌려 완벽하게 소생했고, 지금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진지하게 고찰하는 이론이 되어 있다. --p262
Handicap Principle이 처음에 반발을 산 것은 생물학자들이 신호 비용에 대한 경제학계의 연구를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제학계의 게임이론가들은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한 상황에서 신호에 신뢰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들은 신호전달이론을 개발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신호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한 종류의 신호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신호를 만든 자의 진심을 나타내는 믿을 수 있는 지표다. 다른 하나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신호로서, 경제학자들은 빈말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빈말은 믿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빈말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며,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용이 수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p194~195
질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 아주 야비해 보인다. 종교인이 내게 그런 식으로 물을 때(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은 유혹을 순간적으로 느끼곤 한다. "당신이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마이클 셔머는 "선과 악의 과학"에서 그것을 "논쟁 중단 장치"라고 불렀다. 신이 없을 때 자신이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부도덕한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신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는 충고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신의 감시를 받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선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선하려면 신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치명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p344~345
설령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p350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고고학자인 Colin Renfrew는 기독교가 일종의 집단 선택을 통해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내 집단에 대한 충성심과 형제애를 고취시키고, 덜 종교적인 집단들의 희생하에 종교적인 집단들이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집단 선택론 옹호자인 D.S.윌슨은 "다윈의 대성당"에서 독자적으로 비슷한 주장을 전개했다. --p259
집단 선택을 경시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원칙적으로 집단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문제는 그것이 진화에 의미 있는 힘을 발휘하는가의 여부다. 그것이 더 낮은 수준에서 일어나는 선택과 맞붙었을 때, 낮은 수준에서의 선택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가상의 부족을 예를 들어, 부족을 위해 죽고 거룩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순교자들이 주류인 군대에 이기적인 전사가 한 명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투에서 몸을 사렸기에 승자가 될 가능성은 약간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순교한 동료들보다는 평균적으로 더 큰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순교자들은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보다 번식할 가능성이 더 높고, 순교를 거부한 그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순교하는 경향은 세대가 지날수록 약해질 것이다(즉,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집단 선택이 진화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한 상황을 기반으로 한 수학 모형을 구축할 수 있다. 그 특수한 조건들은 대개 자연 상태에서는 비현실적이지만, 인간의 집단들 사이에서는 종교가 바로 그런 비현실적인 특수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omitted...) 다윈이 개체 수준의 선택(Individual Selection)을 옹호하면서도 인류 부족을 논의할 때는 집단 선택론에 가까이 다가가곤 했다는 점만 언급하기로 하자:
두 원시 부족이 같은 고장에 살면서 경쟁을 한다고 하자. (다른 조건들은 동등할 때) 한 부족이, 서로 돕고 지켜주는 용감하고 협력적이고 신실한 구성원들의 수가 더 많다면 그 부족이 번성하여 다른 부족을 정복하게 되리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서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은 뭉치지 않을 것이고, 뭉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위의 자질들을 갖춘 부족은 널리 퍼져나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전체를 보건대 시간이 흐르면서 그 부족도 다른 우수한 자질을 지닌 부족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p261~262
필자는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최근에 바로 이 지구 위에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omitted...) 그것은 여전히 어린 상태로 있어서 진화의 토대가 될 원시 수프(primeval soup)를 찾아 허둥지둥 떠돌아다니지만, 헐떡이며 따라오는 구시대의 유전자를 저 뒤에 남겨 놓을 만큼의 진화의 속도를 벌써 획득하고 있다. (...omitted...) 그 새로운 수프는 문화의 수프이다. 그 새로운 복제자에 대한 어떤 이름이 필요한데, 문화의 전달 단위나 모방 단위라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명사이어야 할 것이다.
모 방에 알맞은 그리스어의 어근은 'mimeme'라는 것인데 내가 바라는 것은 'gene'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그리스어의 어근을 'Meme'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에 대해 고전학자들의 관용을 바라는 바이다. 만약 이것이 허락된다면 Meme이라는 단어는 기억(memory) 또는 이것에 상당하는 프랑스어(meme) 단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Meme 의 예에는 곡조나 사상, 표어, 의복의 양식, 단지 만드는 법, 또는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번식하는 데 정자나 난자를 우난체로 하여 몸에서 몸으로 뛰어넘는 것과 같이 Meme이 Meme 풀 내에서 번식할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을 매개로 하여 뇌에서 뇌로 건너다니는 것이다. 만약 과학자가 좋은 생각을 듣거나 또는 읽거나 하면 그는 동료나 학생에게 그것을 전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처럼 그 생각을 잘 이해하면 뇌에서 뇌로 퍼져 자기 복제한다고 말할 수 있다.
--p308~309
절대적인 '정점'을 지니거나 기존 밈복합체와 화합함으로써 밈풀에서 생존가를 지닐 법한 종교적 밈들의 목록을 몇 가지 나열해보자:
- 당신은 죽어도 살 것이다.
- 당신이 순교한다면 72명의 처녀와 즐길 수 있는, 천국 중의 천국으로 갈 것이다(그 불운한 처녀들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
- 이교도, 신성 모독자, 배교자는 죽여야 한다(혹은 가문에서 추방하는 등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
- 신을 믿는 것은 가장 큰 미덕이다.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라.
- 신앙(증거 없는 믿음)은 미덕이다. 당신의 믿음이 증거와 어긋날수록, 당신은 더 고결해진다. 증거와 이성에 맞서, 진정으로 기이하고, 지지를 못 받고, 지탱될 수도 없는 것을 어떻게든 믿는 믿음의 대가는 특히 커다란 보상을 받는다.
- 모든 사람들, 종교 신앙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존경을 자동적으로 표해야 한다.
-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기이한 것들(삼위일체, 성체화, 성육화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라. 그 시도가 그것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라.
- 아름다운 음악, 미술, 조각은 자기 증식하는 종교 개념의 발현물들이다.
아마 위의 목록 중 일부는 절대적인 생존가를 지니고 있어서 어느 밈복합체에서도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일부 밈들은 딱 맞는 배경을 이루는 다른 밈들하에서만 생존하면서 개체가능한 밈복합체를 구성한다. 서로 다른 두 종교는 두 개의 대체될 수 있는 밈복합체로 볼 수도 있다. 아마 이슬람교는 육식동물 유전자 복합체에 상응하고, 불교는 초식동물 유전자 복합체에 상응할 듯 하다. 한 종교의 개념들은 그 어떤 절대적인 의미에서도 다른 종교의 개념들보다 '더 낫지' 않다. 육식동물 유전자들이 초식동물 유전자들보다 '더 낫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유형의 종교적 밈들이 반드시 살아남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자기 종교의 다른 밈들이 있을 때 번성한다는 의미에서 우수하다. 그러나 다른 종교의 밈들이 있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 이 모형에 따르면 이를테면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교는 반드시 개인들이 설계했다고는 볼 수 없으며, 같은 밈복합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있을 때 번성하는 대체 가능한 밈들의 집합으로서 따로 진화한 것들이다.
--p303~307
호일(프레드 호일)은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이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낼 확률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유를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를 언급할 때 활용해왔으며, 그런 언급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아주 간결하게 줄인 이것이 바로 창조론자가 선호하는 논증이다. --p174~175
창조론자가 남용하는 비개연성 논증은 늘 똑같은 형식을 취하며, 그것은 창조론자가 정략적으로 지적 설계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위장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p175
철학자 Daniel Dennett은 진화가 우리가 지닌 가장 오래된 개념 중 하나를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크고 엄청나고 명석한 것이 그보다 못한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나는 그것을 적하(trickle-down) 창조론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창이 창 제작자를 만드는 광경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편자가 대장장이를 만드는 광경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기가 도기공을 만드는 광경도 결코 못 볼 것이다." Charles Darwin은 지극히 반직관적인 일을 하는 작동 가능한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사상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의식을 일깨우는 힘도 제공했다.
--p182
눈이나 날개 같은 극도로 복잡한 기관은 완벽한 형태가 갖춰지기 전에는 개체에게 아무런 이점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특성 상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다.
비개연성 논증을 전개하고자 하는 창조론자들은 언제나 생물학적 적응이 대박 아니면 깡통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대박 아니면 깡통' 오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수술로 수정체를 제거한 백내장 환자는 안경이 없으면 선명한 상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무에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볼 수 있다. 반쪽짜리 날개가 온전한 날개보다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날개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낫다. 반쪽(50퍼센트)짜리 날개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속도를 늦춤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51퍼센트짜리 날개는 그보다 약간 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당신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다.
(...omitted...)
마찬가지로, 50퍼센트짜리 눈이 49퍼센트짜리 눈으로는 구하지 못할 목숨을 구해줄 상황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편형동물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반쪽짜리 눈보다도 못한 눈을 갖고 있다. 앵무조개(고생대와 중생대에 우글거렸던, 멸종한 암모나이트의 사촌)는 질적인 측면에서 편형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빛과 그늘을 감지하지만 상을 볼 수 없는 편형동물의 눈과는 달리, 앵무조개의 눈에는 상이 맺힌다. 하지만 그 상은 우리 눈에 맺히는 상과는 달리 뿌옇고 흐릿하다. 그 차이를 정확히 숫자로 표시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정신이라면 이 무척추동물들의 눈과 다른 많은 동물들의 눈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그 눈들으 모두 앞서 언급한 완만한 산비탈에 죽 놓여 있다는 사실을(점진적이라는 뜻)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p190~191
진정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발견된다면 Charles Darwin의 이론은 무너지겠지만, 마찬가지로 그것이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것은 이미 지적 설계론을 붕괴시켰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고 앞으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신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신이 환원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리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p194
이 장은 내 책의 핵심 논증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한 말을 또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것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확실하다"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다"인 이유는 2장에서 말한대로, 신 존재에 대한 확실한 부정(확률 스팩트럼의 7번)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번역본 표지 뒷면에는 "신이 없음을 입증했다"는 식으로 나와있는데, 과장입니다. 신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 여러 세기 동안 인간의 지성에 도전한 가장 큰 과제들 중 하나는 우주의 복잡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설계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실제 설계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시계 같은 인공물의 경우, 지적인 공학자가 설계자였다. 같은 논리를 눈이나 날개나 거미나 사람에게 적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 그 유혹은 잘못된 것이다. 설계자 가설은 즉시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통계적 비개연성을 설명하라는 문제였다. 우리는 스카이훅이 아니라 기중기가 필요하다. 기중기만이 단순한 것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기중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다. 다윈과 그의 후계자들은 경이로운 통계적 비개연성과, 설계된 듯한 모습을 한 생물들이 어떻게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는 생물에게서 나타나는 설계라는 환각이 그저 환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우리는 아직 물리학에서는 상응하는 기중기를 찾지 못했다. 어떤 유형의 다중우주 이론이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다윈주의에 비해 덜 만족스럽다. 행운을 더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본 원리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직관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운을 가정할 수 있게 해준다.
- 우리는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만큼이나 강력한 기중기가 물리학에서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설령 다윈주의와 맞먹는 아주 흡족한 기중기가 물리학 분야에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비교적 약한 기중기들도 인본 원리의 부추김을 받으면 지적 설계자라는 자멸하는 스카이훅 가설보다 더 낫다.
이 장의 논증이 받아들여진다면, 종교의 실질적인 전제(신 가설 - God Hypothesis)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p244~246
내 특정한 가설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보다도 더, 앞선 세대들의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생존하며, 그 경험을 아이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대물림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 아이들은, 절벽 끝으로 가서는 안된다, 먹어본 적이 없는 붉은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물에서 헤엄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소평가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경험 법칙(the rule of thumb을 번역한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상관 없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휴리스틱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을 지닌 아이의 뇌는 선택적 이점이 있을 것이다.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부모의 말에 따르라. 부족 원로들의 말을 따르라. 특히 그들이 엄숙하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할 때는 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의심하지 말고 따르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매우 유익한 규칙이다. 그러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잘못될 수 있다.
(...omitted...)
아이는 "악어가 우글거리는 림폼포에서 헤엄을 치지 말라"는 좋은 조언이지만, "보름달이 뜰 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는 기껏해야 시간과 염소를 낭비시키는 조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좋은 훈계든 나쁜 훈계든, 똑같이 믿을 만한 것처럼 들린다. 둘 다 높이 평가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훈계로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세계, 우주, 도덕, 인간 본성에 관한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똑같이 엄숙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들을 (의미 있는 것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까지) 통째로 전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p266~270
이 모형에 따르면 지역별로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임의의 신앙이 대물림될 것이고, 그 신앙은 비료가 작물에 좋다는 등의 유용한 지혜와 동등한 자격으로 믿어질 것이다. 또 미신을 비롯한 비사실적인 신앙들이 무작위적 표류(Genetic Drift)나 다윈의 선택(Natural Selection)과 유사한것을 통해 국지적으로 진화하여 결국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상당히 분화한 패턴을 드러낼 것이다. --p270
종교 지도자들은 아이의 뇌가 취약하므로 일찌감치 교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회는 호언장담한다. "내게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려오면, 사람을 만들어주겠다." 그것은 진부하지만 정확한 (혹은 사악한) 말이다. 더 최근으로 내려오면, '가족에 초점을(Focus on the Family)' 운동을 창시한 James Dobson도 그 원리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그들이 듣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p270~271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우리에게 좀 기이해 보이는 것은 그저 그것들이 친숙하지 않아서다. 모든 종교 신앙들은 그 안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보이어는 카메룬의 팡족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다고 한다:
마녀에게는 밤에 날아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집착하는 동물과 흡사한 장기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또 마녀들이 가끔 모여서 대규모 연회를 벌이는데, 그곳에서 희생자를 잡아 먹고 다음에 또 다른 희생자를 공격할 계획을 짠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마녀가 마을 위를 날아다니거나 바나나 잎사귀 위에 앉거나 사람들에게 마법의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친구의 친구가 진짜로 보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보이어는 이어서 개인적 일화를 언급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어느 저녁 만찬에서 이런저런 별난 습속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명한 신학자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인류학이 대단히 흥미롭고도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주전자와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 신학자가 주류 기독교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었을 것이다:
-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즉시 부활했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이기도 하다)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채 '승천했다'.
- 빵과 포도주는 사제(고환을 지녀야 한다)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p271~273
"종교는 부산물이다"라는 견해의 옹호자인 심리학자 PaulBloom은 아이들이 본래 이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종교는 그런 본능적인 이원론의 부산물이다. 그는 우리 인간, 특히 아이들이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주장한다. --p274~275
블룸은 아이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원론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실험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이원론적인 성향이 뇌에 새겨져 있음을 시사하며, 블룸에 따르면 그것이 종교 개념을 포용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블룸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창조론자의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심리학자 Deborah Keleman이 "아인들은 직관적인 유신론자인가"라는 논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은 모든 것에 목적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룸은 '비를 내리기 위한' 것이다. 뾰족한 바위는 '동물들이 가려울 때 대고 긁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론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타고난 목적론자이며, 자른 후에도 결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천성적 이원론과 천성적 목적론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로 향하게끔 우리에게 성향을 부여한다. (...omitted...) 이원론은 영혼을 몸의 통합된 일부가 아니라 몸에 깃든 별개의 것으로 믿게 한다(Steven Pinker는 빈서판이라는 저서에서 이를 Ghost in the Machine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분리된 영혼이 몸이 죽은 뒤 다른 어딘가로 옮겨진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순수한 영혼이라고 즉, 복잡한 물질의 창발적 특성이 아니라 물질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이의 목적론은 더욱 확연히 종교를 받아들이게끔 우리를 설정해놓는다. 모든 것이 목적은 지닌다면, 그것은 누구의 목적인가? 물론 신의 목적이다.
--p276~277
Robert Trivers는 "사회적 진화"에서 1976년에 제시했던 자기기만의 진화론을 더 확장했다: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에게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이고자 할 때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힐끔거리는 눈, 땀이 밴 손바닥, 갈라진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무의식적으로 사기를 치게 되면, 사기꾼은 관찰자에게 이런 신호들을 숨길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사기를 칠 때 수반되는 초조함을 느끼지 못한 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류학자 Lionel Tiger도 "낙천주의: 희망의 생물학"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런 형태의 건설적인 비합리성은 Robert Trivers의 지각 방어(Perceptual Defense)를 다룬 대목에도 언급된다:
인 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들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것들은 잘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역사 때문이든 실험상의 조작 때문이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야만 지각한다.
이것이 종교의 갈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p286~287
무당과 사제의 자기 기만은 자신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만을 강화시킨다. --p244,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The religion of one age is the literary entertainment of the next). --랠프 월도 에머슨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p50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심 많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괴물 지배욕 변태(control freak),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 혐오, 동성애 증오, 인종주의, 유아살해, 대량학살, 자식살해,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악의적인(malevolent) 난폭자.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is arguably the most unpleasant character in all fiction: jealous and proud of it, a petty, unjust, unforgiving control freak, a vindictive bloodthirsty ethnic cleanser, a misogynistic, homophobic, racist, infanticidal, genocidal, filicidal, pestilential, megalomaniacal, sadomasochistic, capriciously malevolent bully.)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 --p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