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는 새로운 종교 의식이 극도로 빠르게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화물 숭배 의식(Cargo Cult)"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멜라네시아와 뉴기니의 '화물 숭배 의식'은 가장 유명한 실제 사례다. 이 숭배 의식들 중 몇 가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 역사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omitted...)

섬 주민들은 경이로운 물건들을 쓰는 백인들이 결코 그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수리가 필요하면 백인들은 물건을 멀리 보냈고, 배나 나중에는 비행기의 '화물'로 새 물건들이 계속 도착했다. 백인들은 물건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고, 유용성이 있어 보이는 행동도 전혀 하지 않았다(책상 뒤에 앉아서 서류를 만지작 거리는 행위는 일종의 종교 의식처럼 보인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화물은 초자연적인 기원을 지닌 것이 분명했다. 그 점을 확인해주려는 듯, 백인들은 종교 의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특정한 행동들을 했다:

그들은 높다란 기둥을 세우고 전선을 매달았다. 그들은 불빛을 반짝이며 신기한 잡음과 억눌린 목소리를 흘려보내는 작은 상자들 앞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위 아래로 행진하라고 시켰다. 그보다 더 쓸모없는 짓은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원주민들은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백인들이 신에게 화물을 보내달라고 올리는 의식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주민도 화물을 원한다면,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

--p30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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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비행기, 가짜 탑, 가짜 활주로)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종류의 의식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문화적 교류 없이) 수십차례 발생했다는 것이며, 그 의식들 사이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류학자들은 뉴칼레도니아에서 두 번, 솔로몬 제도에서 네 번, 피지에서 네 번, 뉴헤브리디스에서 일곱 번, 뉴기니에서 50번 이상 독자적으로 그런 의식이 출현했으며, 대부분은 아무 연관도 없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종교들은 대부분 메시아가 묵시록의 날에 화물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p310

도킨스는 또한 화물 숭배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현지(탄나 섬)를 방문한 아텐버로라는 사람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1950년대에 젊은 아텐버로는 사진사 제프리 멀리건과 함께 존 프럼 숭배 의식을 조사하기 위해 탄나 섬으로 갔다. 그들은 그 종교의 증거들을 많이 찾아냈고, 수소문 끝에 고위 사제인 남바스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남바스는 자신의 구세주를 존이라고 친숙하게 불렀고, '라디오'를 통해 정기적으로 그와 대화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존의 것인 라디오)은 허리에 전선을 감은 '노파'인데, 그녀가 무아지경에 빠져서 중얼거리면 자신이 존 프럼의 말을 해석한다는 것이었다. 남바스는 아텐버로가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존 프럼이 라디오로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아텐버로는 라디오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이해할 수 있다). 그는 화제를 바꾸어서 존 프럼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남바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보았지."

"어떻게 생겼나요?"

남바스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당신처럼 생겼어. 얼굴이 하얗고, 키가 컸지.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오래 살았대."

이 세부 묘사는 존 프럼의 키가 작다는 전설과 모순된다. 그것이 바로 전설이 진화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존 프럼이 돌아오는 날을 2월 15일이라고 믿었지만, 연도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추종자들은 해마다2월 15일에 모여서 그를 맞이하는 종교 의식을 올린다. 아직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낙심하지 않는다. 아텐버로는 샘이라는 숭배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샘. 존이 화물이 올 거라고 말한 지 19년이나 지났잖아요. 그는 약속하고 또 약속했지만 화물은 아직 안 오고 있어요. 19년이면 좀 오래 기다린 거 아닌가요?"

샘은 땅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오기를 2000년 동안 기다릴 수 있었다면, 나도 존을 19년 이상 기다릴 수 있지요."

--p31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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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일환으로 미군을 흉내내고 있는 원주민들)

도킨스가 그의 책에서 화물 숭배를 다루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태평양 남부의 화물 숭배 의식을 너무 많이 다루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교가 거의 무에서 출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롭고 현대적인 모형이다. 특히 그것들은 종교의 기원 전반에 관해 네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 하나의숭배 의식이 놀라운 속도로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출현 과정이 그 궤적을 감춘다는 것이다. 존 프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실존 인물로서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실존 인물이었다면 아주 최근 사람일텐데, 그가 정말로 살아 있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셋째, 비슷한 숭배 의식들이 다양한 섬에서 독자적으로 출현한다는 점이다. 이 유사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인간의 심리와 그것의 종교 수용성에 관해 무언가 알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화물 숭배 의식은 서로 비슷할 뿐 아니라 더 오래된 종교들과도 비슷하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를 비롯한 고대 종교들은 존 프럼에 대한 숭배처럼 지역 숭배 의식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유대학 교수인 게자 베르메스 같은 사람들은 예수가 당시 비슷한 전설들이 무성했던 팔레스타인에서 출현한 여러 인물들 중 하나였다고 주장해왔다. 그 숭배 의식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p314~315

신고
제4장.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Why There Almost Certainly is No God)

4장에서는 3장에서 비판하지 않고 넘어간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5번 "설계 논증"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대안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인본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설계 논증의 한 형태인 "보잉 747 논증"을 변형하여 "궁극적 보잉 747 논증"을 만들어내는데, 이 논증은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를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보잉 747과 고물 야적장

이 장은 현대의 가장 대중적인 설계 논증으로, 많은 유신론자들 사이에서 "완벽한고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비치는 비개연성(improbability) 논증을 소개하면서 시작합니다:
호일(프레드 호일)은 생명이 지구에 출현할 확률이 고물 야적장을 휩쓰는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낼 확률과 별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비유를 복잡한 생명체의 진화를 언급할 때 활용해왔으며, 그런 언급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아주 간결하게 줄인 이것이 바로 창조론자가 선호하는 논증이다. --p174~175

한편, 지적 설계론(ID - Intelligent Design) 또한 "싸구려 턱시도를 차려입은 창조론"일 뿐이며, 설계 논증의 변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론자가 남용하는 비개연성 논증은 늘 똑같은 형식을 취하며, 그것은 창조론자가 정략적으로 지적 설계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위장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차이가 없다. --p175

설계론자(혹은 창조론자)들의 비개연성 논증이 공격하는 지점은 크게 네 곳입니다.
  1. 물리법칙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우주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을터인데, 어떻게 물리법칙들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가?
  2.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지금과 조금 달랐거나, 지구의 자전궤도가 조금만 더 타원이었거나, 목성이라는 거대한 중력 방어막이 없었다면 지구에는 생명이 살 수 없었을터인데, 어떻게 지구가 딱 이와 같은 환경을 갖추게 되었을까?
  3. 원시 지구에서 어떻게 생명이 우연히 탄생할 확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어떻게 지구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4. 원시 생명체가 어떻게 지금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유기체로 변할 수 있었는가?
설계논증에 의하면 위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초월적 설계자에 즉, 신에 의해서"가 됩니다.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설계논증을 거부하고 1,2,3번에 대해서는 "인본 원리"로, 4번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본원리

인본원리는 직관적이고 단순합니다. "어떻게 지구는 딱 생명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이루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고, 각각 다양한 환경을 이루고 있는데 그중 극히 일부가 생명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하나에서 살고 있는 생물인 우리 인간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주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생성해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우주에서 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본 가설은 통계적 성격을 띄는데, 우주라는 시공간은 과학자들의 손을 들어줍니다. 예를 들어 아주 보수적으로 추정을 하더라도 "우주에 있는 쓸 만한 행성의 수는 1000만조 개(p215)"에 이른다고 합니다. 생명의 기원 즉, DNA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자발적으로 출현할 확률이 행성 10억 개 중 하나에서나 일어날 수 있을 만큼 희박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생명이 출현할 행성은 10억 개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빅뱅 이후 150억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생명의 자발적 탄생은 필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어떻게 해서든 일단 최초의 생명(자기복제가)이 단 한 번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그 이후는 더 이상 확률 계산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각 개체는 자신과 닮은(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자손을 낳고, 각각 조금씩 다른 자손들(변이)이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며(경쟁), 주어진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잘 적응하는 자손이 더 높은 확률로 생존 및 번식하게 되며(선택), 이 개체의 자손들은 이 개체와 닮았을 것이므로 더 높은 생존가를 갖고, ... 과 같이 변이와 경쟁 그리고 선택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다윈 진화론의 골자입니다.

위 방식에 의하면 설계자 없이도 우연적 변이와 자연선택의 반복을 통해 점점 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은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이 설계 논증의 핵심을 파괴하는 강력한 의식-각성제(Consciousness Raiser)라고 말합니다:
철학자 Daniel Dennett은 진화가 우리가 지닌 가장 오래된 개념 중 하나를 반박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크고 엄청나고 명석한 것이 그보다 못한 것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나는 그것을 적하(trickle-down) 창조론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창이 창 제작자를 만드는 광경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편자가 대장장이를 만드는 광경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도기가 도기공을 만드는 광경도 결코 못 볼 것이다." Charles Darwin은 지극히 반직관적인 일을 하는 작동 가능한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인류 사상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을 뿐 아니라, 의식을 일깨우는 힘도 제공했다.

--p182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

설계 논증의 단짝 중 하나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C - Irreducible Complexity) 개념입니다. IC란:
눈이나 날개 같은 극도로 복잡한 기관은 완벽한 형태가 갖춰지기 전에는 개체에게 아무런 이점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특성 상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다.

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즉, 눈은 "보든지 못 보든지 둘 중 하나이며, 날개도 날든지 못 날든지 둘 중 하나라는" 주장입니다.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반쪽짜리 눈 혹은 반쪽짜리 날개는 개체에게 아무런 이득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눈 혹은 완전한 날개로 진화될 수 없다는 것이죠.

도킨스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개념이 가지는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비개연성 논증을 전개하고자 하는 창조론자들은 언제나 생물학적 적응이 대박 아니면 깡통의 문제라고 가정한다. '대박 아니면 깡통' 오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 수술로 수정체를 제거한 백내장 환자는 안경이 없으면 선명한 상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무에 부딪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은 볼 수 있다. 반쪽짜리 날개가 온전한 날개보다 못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날개가 아예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더 낫다. 반쪽(50퍼센트)짜리 날개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속도를 늦춤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51퍼센트짜리 날개는 그보다 약간 더 높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 당신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다.

(...omitted...)

마찬가지로, 50퍼센트짜리 눈이 49퍼센트짜리 눈으로는 구하지 못할 목숨을 구해줄 상황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 편형동물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반쪽짜리 눈보다도 못한 눈을 갖고 있다. 앵무조개(고생대와 중생대에 우글거렸던, 멸종한 암모나이트의 사촌)는 질적인 측면에서 편형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해당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빛과 그늘을 감지하지만 상을 볼 수 없는 편형동물의 눈과는 달리, 앵무조개의 눈에는 상이 맺힌다. 하지만 그 상은 우리 눈에 맺히는 상과는 달리 뿌옇고 흐릿하다. 그 차이를 정확히 숫자로 표시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정신이라면 이 무척추동물들의 눈과 다른 많은 동물들의 눈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며, 그 눈들으 모두 앞서 언급한 완만한 산비탈에 죽 놓여 있다는 사실을(점진적이라는 뜻)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p190~191

도킨스가 생각하기에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개념의 가장 큰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 발견된다면 Charles Darwin의 이론은 무너지겠지만, 마찬가지로 그것이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것은 이미 지적 설계론을 붕괴시켰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말해왔고 앞으로도 말하겠지만, 우리가 신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신이 환원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리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p194

여담: The Mating Mind의 저자인 Geoffrey Miller는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 진화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형질(그는 이것을 "혁신의 문지방"이라고 부릅니다)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성선택(Sexual Selection)에 기반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The Mating Mind p250~270).

궁극적 보잉 747 (Ultimate Boeing 747 Gambit)

다음은 보잉 747 논증을 변형한 "궁극적 보잉 747 논증"의 요약입니다. 도킨스는 이 논증을 통해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장은 내 책의 핵심 논증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한 말을 또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것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1. 여러 세기 동안 인간의 지성에 도전한 가장 큰 과제들 중 하나는 우주의 복잡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설계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설명하는 것이었다.
  2.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실제 설계로 보고 싶다는 유혹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시계 같은 인공물의 경우, 지적인 공학자가 설계자였다. 같은 논리를 눈이나 날개나 거미나 사람에게 적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3. 그 유혹은 잘못된 것이다. 설계자 가설은 즉시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통계적 비개연성을 설명하라는 문제였다. 우리는 스카이훅이 아니라 기중기가 필요하다. 기중기만이 단순한 것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복잡한 것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4.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기중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다. 다윈과 그의 후계자들은 경이로운 통계적 비개연성과, 설계된 듯한 모습을 한 생물들이 어떻게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점진적으로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현재 우리는 생물에게서 나타나는 설계라는 환각이 그저 환각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우리는 아직 물리학에서는 상응하는 기중기를 찾지 못했다. 어떤 유형의 다중우주 이론이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다윈주의에 비해 덜 만족스럽다. 행운을 더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본 원리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직관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행운을 가정할 수 있게 해준다.
  6. 우리는 생물학 분야의 다윈주의만큼이나 강력한 기중기가 물리학에서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설령 다윈주의와 맞먹는 아주 흡족한 기중기가 물리학 분야에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비교적 약한 기중기들도 인본 원리의 부추김을 받으면 지적 설계자라는 자멸하는 스카이훅 가설보다 더 낫다.

이 장의 논증이 받아들여진다면, 종교의 실질적인 전제(신 가설 - God Hypothesis)는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p244~246
"확실하다"가 아니라 "거의 확실하다"인 이유는 2장에서 말한대로, 신 존재에 대한 확실한 부정(확률 스팩트럼의 7번)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번역본 표지 뒷면에는 "신이 없음을 입증했다"는 식으로 나와있는데, 과장입니다. 신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신론자들이 우쭐할 필요는 전혀 없는데, 신의 없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해서 신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신 뿐만 아니라, 도깨비, 귀신,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는 것은 "지적으로 충실한 무신론자"가 되는 것 보다 조금 더 힘든데, 왜냐하면 무신론자는 "신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만 하면 되지만 유신론자는 "신이 있음"과 더불어 그 신이 자신이 믿는 바로 그 신이라는 점 까지도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한편, 불가지론자는? 아주 쉽죠. :-)

대부분의 유신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 고민을 안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그들은 "지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고 싶다기 보다 "영적으로 충실한 유신론자"가 되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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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들 중 하나로 "진화적 부산물" 가설이 있습니다. 이 글은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설명하고 있는 진화적 부산물 가설을 요약/발췌한 것입니다.

참고로,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적 부산물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신 분은 "초간단 진화심리학 소개"를 먼저 참고해주세요.

종교를 진화적 부산물로 본다면 "무엇에 대한 부산물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고, 이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부산물 가설은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도킨스는 여러 가지 부산물 가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중 세 가지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가설들은 서로 대립되는 가설이 아니라 양립 가능합니다.

1. 어른들이 엄숙하게 하는 말을 비판없이 수용하기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휴리스틱:
내 특정한 가설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보다도 더, 앞선 세대들의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생존하며, 그 경험을 아이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대물림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 아이들은, 절벽 끝으로 가서는 안된다, 먹어본 적이 없는 붉은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물에서 헤엄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소평가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경험 법칙(the rule of thumb을 번역한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상관 없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휴리스틱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을 지닌 아이의 뇌는 선택적 이점이 있을 것이다.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부모의 말에 따르라. 부족 원로들의 말을 따르라. 특히 그들이 엄숙하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할 때는 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의심하지 말고 따르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매우 유익한 규칙이다. 그러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잘못될 수 있다.

(...omitted...)

아이는 "악어가 우글거리는 림폼포에서 헤엄을 치지 말라"는 좋은 조언이지만, "보름달이 뜰 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는 기껏해야 시간과 염소를 낭비시키는 조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좋은 훈계든 나쁜 훈계든, 똑같이 믿을 만한 것처럼 들린다. 둘 다 높이 평가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훈계로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세계, 우주, 도덕, 인간 본성에 관한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똑같이 엄숙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들을 (의미 있는 것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까지) 통째로 전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p266~270

위 가설은 실제 세계의 종교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지역별로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임의의 신앙이 대물림될 것이고, 그 신앙은 비료가 작물에 좋다는 등의 유용한 지혜와 동등한 자격으로 믿어질 것이다. 또 미신을 비롯한 비사실적인 신앙들이 무작위적 표류(Genetic Drift)나 다윈의 선택(Natural Selection)과 유사한것을 통해 국지적으로 진화하여 결국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상당히 분화한 패턴을 드러낼 것이다. --p270

특히, 많은 종교들이 모태 신앙, 유아 세례 같은 것을 강조하는 이유를 어쩌면 이 가설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종교 지도자들은 아이의 뇌가 취약하므로 일찌감치 교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회는 호언장담한다. "내게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려오면, 사람을 만들어주겠다." 그것은 진부하지만 정확한 (혹은 사악한) 말이다. 더 최근으로 내려오면, '가족에 초점을(Focus on the Family)' 운동을 창시한 James Dobson도 그 원리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그들이 듣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p270~271

지속적인 세뇌를 당하면 "아주 기이한 주장들"을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참으로 취약한 것 같아요: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우리에게 좀 기이해 보이는 것은 그저 그것들이 친숙하지 않아서다. 모든 종교 신앙들은 그 안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보이어는 카메룬의 팡족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다고 한다:

마녀에게는 밤에 날아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집착하는 동물과 흡사한 장기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또 마녀들이 가끔 모여서 대규모 연회를 벌이는데, 그곳에서 희생자를 잡아 먹고 다음에 또 다른 희생자를 공격할 계획을 짠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마녀가 마을 위를 날아다니거나 바나나 잎사귀 위에 앉거나 사람들에게 마법의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친구의 친구가 진짜로 보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보이어는 이어서 개인적 일화를 언급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어느 저녁 만찬에서 이런저런 별난 습속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명한 신학자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인류학이 대단히 흥미롭고도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주전자와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 신학자가 주류 기독교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었을 것이다:
  •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즉시 부활했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이기도 하다)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채 '승천했다'.
  • 빵과 포도주는 사제(고환을 지녀야 한다)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p271~273

2. 선천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

두 번째는 종교가 본능적 이원론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종교는 부산물이다"라는 견해의 옹호자인 심리학자 PaulBloom은 아이들이 본래 이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종교는 그런 본능적인 이원론의 부산물이다. 그는 우리 인간, 특히 아이들이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주장한다. --p274~275

천선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의 결합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블룸은 아이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원론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실험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이원론적인 성향이 뇌에 새겨져 있음을 시사하며, 블룸에 따르면 그것이 종교 개념을 포용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블룸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창조론자의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심리학자 Deborah Keleman이 "아인들은 직관적인 유신론자인가"라는 논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은 모든 것에 목적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룸은 '비를 내리기 위한' 것이다. 뾰족한 바위는 '동물들이 가려울 때 대고 긁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론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타고난 목적론자이며, 자른 후에도 결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천성적 이원론과 천성적 목적론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로 향하게끔 우리에게 성향을 부여한다. (...omitted...) 이원론은 영혼을 몸의 통합된 일부가 아니라 몸에 깃든 별개의 것으로 믿게 한다(Steven Pinker는 빈서판이라는 저서에서 이를 Ghost in the Machine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분리된 영혼이 몸이 죽은 뒤 다른 어딘가로 옮겨진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순수한 영혼이라고 즉, 복잡한 물질의 창발적 특성이 아니라 물질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이의 목적론은 더욱 확연히 종교를 받아들이게끔 우리를 설정해놓는다. 모든 것이 목적은 지닌다면, 그것은 누구의 목적인가? 물론 신의 목적이다.

--p276~277

3. 자기기만의 진화

이 가설은 Robert Trivers와 Loinel Tiger(이름이 재미있군요)가 제시한 것입니다.
Robert Trivers는 "사회적 진화"에서 1976년에 제시했던 자기기만의 진화론을 더 확장했다: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에게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이고자 할 때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힐끔거리는 눈, 땀이 밴 손바닥, 갈라진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무의식적으로 사기를 치게 되면, 사기꾼은 관찰자에게 이런 신호들을 숨길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사기를 칠 때 수반되는 초조함을 느끼지 못한 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류학자 Lionel Tiger도 "낙천주의: 희망의 생물학"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런 형태의 건설적인 비합리성은 Robert Trivers의 지각 방어(Perceptual Defense)를 다룬 대목에도 언급된다:

인 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들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것들은 잘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역사 때문이든 실험상의 조작 때문이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야만 지각한다.

이것이 종교의 갈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p286~287

도킨스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Edward Wilson(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통섭 - Consilience - 의 저자)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당과 사제의 자기 기만은 자신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만을 강화시킨다. --p244,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여담: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현재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강북에 있는 S모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었는데 80년대에 번역/인쇄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표지 안쪽에 "금서"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예전에 찍었던 것 같아요. ㄷㄷㄷ 사회생물학은 한 때 많은 오해를 받았던(사실은 지금도 받고 있는) 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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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Arguments for God's existence)

이 장의 주제는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중 유명한 것들을 나열하고 이를 하나씩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음 소제목들이 각각의 논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3.1.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Thomas Aquinas' 'Proofs')
  • 3.2. 존재론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들
          (The Ontological Argument and Other A Priori Arguments)
  • 3.3. 아름다움 논증 (Arguments from Beauty)
  • 3.4. 개인적 경험 논증 (The Argument from Personal 'Experience')
  • 3.5. 성서 논증 (The Argument from Scripture)
  • 3.6. 독실한 과학자 논증 (The Argument from Admired Religious Scientists)
  • 3.7. 파스칼의 내기 (Pascal's Wager)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몇 가지만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3.1.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입니다. 그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은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Quinquae viae 참고)
  1. 부동의 원동자. 그 어느 것도 선행 원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 무언가가 최초의 움직임을 일으켜야 하며, 우리는 그 무언가를 신이라 부른다.
  2. 원인 없는 원인. ... 모든 결과에는 그보다 앞선 원인이 있으며, ... 최초의 원인을 ... 신이라고 부른다.
  3. 우주론적 논증. ... 그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물체들을 출현시킨 비물리적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4. 정도 논증. 우리는 사물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선이나 완벽성 같은 것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값과 비교해야만 그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으므로, 최대 선은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 우리는 그 최대값을 신이라고 한다.
  5. 목적론적 논증 또는 설계 논증. 세계의 사물들, 특히 살아 있는 것들은 마치 설계된 듯이 보인다. ... 따라서 설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
다음은 처음 세 개의 논증에 대한 비판입니다(덤으로, 전지와 전능이 양립불가능함을 간단히 덧붙이고 있습니다):
처음 세 개의 증명은 같은 것을 그저 달리 말한 것으로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omitted...) 회귀 개념에 의존하는 이 세 가지 논증은 신을 불러내 회귀를 종식시킨다. 그것들은 신 자신이 회귀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전적으로 부당한 가정을 한다. 비록 우리가 무한 회귀의 종식자를 독단적으로 생각해낸 뒤, 단순히 이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수상쩍은 사치를 부린다고 하더라도, 그 종식자에게 일반적인 신의 속성들을 부여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전능, 전지, 덕, 창조적인 설계도 그렇고, 기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용서하고 가장 내밀한 생각을 읽는 등의 인간적인 속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논리학자들은 전능과 전지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p122~123
즉,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신"이라고 인정해봤자 그 "신"이 기독교 등의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이라는 것까지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다음은 정도 논증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실 정도 논증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어설픕니다. 도킨스도 짧게 언급하기만 합니다:
이것이 논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냄새가 다르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최대 냄새를 참조해야만 서로의 냄새를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비할 수 없을 만큼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비교할 특성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로 아둔한 결론이 도출된다. --p125
마지막으로, 목적론적 논증 또는 설계 논증에 대해서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도킨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이미 20여년 전에 설계 논증의 반박을 주제로 책을 한 권 냈었는데 바로 "눈 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입니다.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지, 설계 논증에 대해서는 다음 장(제4장)을 통으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장에서는 일단 패스.

3.5. 성서 논증.

성서 논증은 한 마디로 성경을 근거로 한 논증들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잖아"라는 형태인거죠. 성서에 대한 도킨스의 견해는 간단합니다:
Dan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기독교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인들은 영화 상영에 반대하고 상영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그 작품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다. 즉 창작된 소설이다. 그 점에서 그것은 복음서들과 똑같다. 다빈치 코드와 복음서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복음서들이 오래된 소설인 반면, 다빈치 코드는 현대 소설이라는 것뿐이다. --p154
그는 성서 논증을 비판하기 위해 성서의 다양한 오류들을 제시합니다. 그는 또 Bart Erhman의 책 "Misquoting Jesus"를 추천하고 있는데, 이 책은 국내에서 "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습니다. 성서 논증에 대한 비판은 도킨스를 인용하는 것 보다는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요약하면서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Bart Erhman에 대해서는 예전에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라는 글에서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3.6. 독실한 과학자 논증.

독실한 과학자 논증은 소위 이런 것이죠:
뉴튼은 종교인이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신이 뉴턴, 갈릴레오, 케플러 등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신하는가? 그런 위인들이 신을 선호한다면, 당신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p155
이런 종류의 논증(사실 의미있는 논증이 아닙니다만)을 펼치는 사람들은 종종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다윈이 죽기 직전에 신앙 고백을 했다거나 하는 종류의 소설이 유명합니다. 도킨스는 이런 소설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임종 때 녹음기를 준비해두어야겠다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

이 섹션의 주된 내용은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며, 뛰어난 과학자들은 특히 그러한 경향이 높더라는 것입니다:
1996년 나는 Human Genome Project의 창시자이자 내 친구인 James Watson과 예전에 그가 체류했던 케이브리지 대학교 클레어 대학의 교정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omitted...) 나는 왓슷에게 현재 종교인 과학자를 많이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거의 없어요.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약간 당혹스럽습니다(웃음). 알다시피 나는 계시를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믿을수가 없거든요."

왓슨과 함께 유전학 혁명을 일으킨 Francis Crick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처칠 대학이 성당을 짓겠다고 하자 그 대학의 평의원직을 사임했다.

(...omitted...)

1998 년 E.J. Larson과 L. Witham이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실은 글에는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에 상응하는)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될 정도로 저명한 미국 과학자들 중에 인격신을 믿는 사람이 약 7%에 불과하다고 나와 있다. 무신론자의 이 압도적인 우위는 90% 이상이 일종의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다는 미국 대중의 전반적인 입장과는 거의 상반된 것이다.

(...omitted...)

이 책이 인쇄될 무렵, 내 동료인 Elisabeth Cornwell과 Michael Stirrat은 왕립학회 회원들(FRS)의 종교적 견해를 조사한, 비슷하지만 더 철저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omitted...) 미국 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그러하듯이, FRS에서도 무신론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회원들 중 겨우 3.3% 만이 인격신이 존재한다는 지문에 강력하게 동의한 반면, 78.8% 는 강하게 부인했다.

--p158~162

3.7. 파스칼의 내기

파스칼의 내기란 이런 것입니다: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 Blaise Pascal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p164

이것도 상당히 우스운 주장 중 하나입니다. 여러가지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다음 한 단락이면 충분합니다:
당신이 죽어서 대면한 신이 바알이라고 가정하고, 바알이 옛 경쟁자인 야훼처럼 다른 신을 믿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파스칼은 엉뚱한 신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신이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걸지 않았을까? 사실 내기를 걸 만한 신과 여신의 가능한 수는 파스칼의 논리 전체를 무위로 만들지 않을까?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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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옮겨왔습니다)

저는 불가지론자 입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에서 자신은 불가지론자가 아니라 무신론자임을 밝히면서,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자로 개종시키기 위해 한 장(chapter)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불가지론자로 남아 있는데 그 이유를 간략히 적어보았습니다.

도킨스는 불가지론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먼저 불가지론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TAP 즉, 실질상의 일시적 불가지론(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 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명확한 답이 실제로 있지만 아직 거기에 도달할 증거가 부족할 때(또는 그 증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증거를 살펴볼 시간이 없을 때) 취하는, 합리적인 중도적 입장이다. TAP는 페름기 절멸을 대하는 합당한 입장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것을 알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중도 입장도 있다. 나는 그것을 PAP(Permanent Agnosticism in Principle: 원리상의 영구적 불가지론)라고 부르고자 한다. (...omitted...) PAP 형태의 불가지론은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모은다 해도 증거라는 개념 자체를 적용할 수 없기에 답을 결코 얻을 수 없는 질문들에 알맞다. 그런 질문은 증거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다른 평면 혹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당신과 내가 바라보는 빨강이 똑같은 빨강인가?" (Qualia, The Problem of Other Minds 등 참고) 라는 질문 같은 철학적 재담이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p78~79

저는 불가지론자이자 주관적 관념론자(subjective idealist)이기도 한데,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도킨스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주어지면 이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사실 과학적 근거라는 것은 감각을 통해 인식된 주관적 관념일 뿐이고 그가 "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다고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주관적 관념론자가 볼 때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s)이란 "진실 혹은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그저 "내적 일관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관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이렇게 수집된 관념의 체계(과학적 지식의 총체)는 (수학 만큼이나) 객관적 세상에 대한 대응물이 전혀 아닙니다. 따라서 과학이란 수학에 비해 내적 일관성이 크게 떨어지는 엉성한 관념 덩어리일 뿐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부연하겠습니다. 내적 일관성을 기준으로 종교,과학,수학을 선분 위에 늘어 놓는다면 종교과 수학이 양 끝을 차지하고 과학은 수학 아주 가까이에 붙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은 종교(혹은 각종 포스트모던 찌끄러기 등)에 비해 한없이 일관성이 높은 관념 체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 주관적 관념론자이고,
  • 따라서 과학이건 종교이건 그 무엇이건간에 우리가 진실로 "알 수 있는 것"이란 없다고 믿으며,
  • 따라서 신 존재 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하여 불가지론자이며(강한 불가지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비해 과학이 한없이 유용한 관념 체계라고(내적 일관성의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

문제는 주관적 관념론이 논리적으로(혹은 철학적으로) 아무리 타당하다고 해도 실상활에서는 도무지 써먹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It(solipsism) may be the most logical view to hold but it makes communication of ideas difficult. --Alan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주관적 관념론(혹은 유아론 -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문맥상 통하므로)을 실천하면서 살자면 마냥 아무 일도 안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굶어 죽어야 하겠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즉, 실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프라임론(응?)이 주관적 관념론 보다는 훨씬 유용합니다.

이를 다시 신 문제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저는 비록 불가지론자이지만 무신론자 행세를 할 것이며, 과학적 방법론을 종교처럼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러셀도 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군요:
I never know whether I should say "Agnostic" or whether I should say "Atheist". It is a very difficult question and I daresay that some of you have been troubled by it. As a philosopher, if I were speaking to a purely philosophic audience I should say that I ought to describe myself as an Agnostic, because I do not think that there is a conclusive argument by which one prove that there is not a God.

On the other hand, if I am to convey the right impression to the ordinary man in the street I think I ought to say that I am an Atheist, because when I say that I cannot prove that there is not a God, I ought to add equally that I cannot prove that there are not the Homeric gods.

--Am I An Atheist Or An Agno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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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실험들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제2장 신 가설 (The God Hypothesis) 중에서 인용합니다.

첫 번째는 Francis Galton의 연구입니다.

Galton은 머리 모양을 보면 지능이나 성격 등을 알 수 있다는 이론인 골상학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아래 인용에도 나와 있지만 종의 기원을 쓴 Charles Darwin의 사촌이기도 하죠:
Charles Darwin의 사촌인 Francis Galton은 기도가 효험이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일요일마다 영국 전역의 교회에 모인 군중들 전부가 왕실의 건강을 비는 공개 기도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왕실 가족은 가까운 사람들의 기도만 받는 나머지 사람들보다 건강해야 하지 않을까? 골턴은 조사를 했고, 통계학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쩌면 그는 조롱하고 싶어서 그 연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도를 하면 식물이 더 빨리 자라는지 알아보겠다고 땅에 무작위로 식물들을 심어놓고 기도를 했을 때처럼 말이다(식물은 더 빨리 자라지 않았다).

--p99~100

두 번째는 물리학자 러셀 스태너드의 연구입니다. 연구를 후원한 템플턴 재단은 성공한 주식투자자 존 템플턴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 계열의 단체입니다:
더 최근에는 물리학자 러셀 스태너드가 템플턴 재단의 후원으로 환자들을 위한 기도가 회복을 돕는다는 주장을 실험으로 입증하려 했다(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스태너드는 영국의 저명한 종교인 과학자 3인 중 한 명이다).

그런 실험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을 써야 하며, 이 기준은 엄격히 지켜졌다. 환자들은 실험 집단(기도를 받는 쪽)이나 대조 집단(기도를 안 받는 쪽)으로 무작위로 분류되었다. 환자들도, 의사들도, 돌보는 사람들도, 실험 주관자들도 어느 환자가 기도를 받는지, 어느 환자가 대조 집단에 속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실험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기도할 대상자의 이름을 알아야 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들에게 오직 성의 첫 글자와 첫 번째 이름만 알려주었다. 그 정도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신이 충분히 알아들을 터였다.

사실 그런 실험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것이었고 당연히 그 계획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코미디언 Bob Newhart가 그 이야기를 소재로 촌극을 꾸몄다는 말은 없지만, 나는 그가 뭐라고 말할지 훤히 알 수 있다.

''주님, 뭐라고 하셨지요? 제가 대조 집단에 속해 있으니 치료를 할 수 없으시다고요? ... 이런 알겠어요. 제 이모님의 기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거군요. 하지만 주님, 옆방에 누운 에번스 씨는 말입니다... 뭐라고요? ... 에번스 씨는 하루에 1000명의 기도를 받았다고요? 하지만 주님, 에번스 씨를 아는 사람이 1000명이 될 리가 없는데... 아하, 그들은 그를 그냥 존 E.라고 불렀다고요. 하지만 주님, 존 엘스워시일 수도 있잖아요? ...아, 알겠어요. 전능한 힘으로 존 E.가 누군지 아셨다고요. 하지만 주님 ...''

연구진은 용감하게 모든 조롱을 무시한 채 보스턴 인근 심신 의학 연구소의 심장학자 허버트 벤슨의 지휘로 240만 달러의 템플턴 연구비를 쓰면서 연구를 진행했다.

(...omitted...)

2006년 4월 "미국 심장학회지"에발표된 연구 결과는 명쾌했다. 기도를 받은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환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이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자신이 기도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신이 제정신이 아닌 실험이 못마땅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일까? 자신이 기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안 환자들이 좀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험자들은 그것을 '성취 불안'이라고 표현했다.

--p100~102

다음은 연구가 계속 실패한 후 신학자들의 반응입니다:
... 다른 신학자들도 초자연적인 영향이란 과학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기도를 연구하는 것은 돈 낭비라고 주장하면서 NOMA를 근거로 한 회의주의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템플턴 재단이 그 연구를 지원할 때 이미 인식했듯이, 이른바 중보 기도의 힘은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과학의 영역 내에 있다. 이중맹검법이 가능했지 않은가. 그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과학적 연구가 종교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그것을 내던질 종교 변증론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p105

위에서 말하는 NOMA(겹치지 않는 교도권 - Nonoverlapping Magisterium)란 과학과 종교는 서로 겹치지 않는 고유한 영역을 갖기 때문에 과학으로 종교를 분석하거나 종교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고생물학자인 S.J.Gould가 고안한 말입니다.

하지만 강경한 무신론자인 도킨스는 굴드의 NOMA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죠.

여담입니다만, 각각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와 굴드는 (굴드가 죽을 때 까지) 진화론의 세부적인 주제(진화의 속도, 진화적 적응에 대한 이론, 진화론의 철학적 함의 등)들을 놓고 논쟁을 주고 받은 바 있는데, 종교에 대한 견해 또한 이런 식의 차이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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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는데, 재미 있었던 부분들을 조금씩 요약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1장 입니다.

제1장.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 (A deeply religious non-believer)

1.1. 믿음을 '믿다' (Deserved Respect)

번역판 소제목은 "믿음을 믿다"로 되어 있지만 원래는 "Deserved Respect(응당한 존중)" 입니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종교를 갖지 않고도 세상(우주, 생명 등)의 경이로움을 온건히(혹은 더 충만하게)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저도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울컥 한 느낌(눈물이 줄줄 흐르지는 않았습니다만 ㅎㅎ)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낀 경험이 있어서 깊은 공감이 갑니다:
원래 극소수의, 또는 하나의 형상에 몇 가지 능력과 함께 숨결이 불어넣어졌고, 그 뒤 이 행성이 정해진 중력 법칙에 따라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동안에 그토록 단순했던 것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무수한 형상들이 진화해왔고 지금도 그들은 진화하고 있다는 이런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담겨 있다.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또 도킨스는 아인슈타인이나 호킹과 같은 유명한 과학자들이 언급하는 "신(god)"이 결코 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창조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인 "대단히 종교적인 불신자"는 아인슈타인의 말에서 딴 것입니다:
나는 지극히 종교적인 불신자다. 이것은 다소 새로운 종류의 종교다.

나는 자연에 목적이나 목표 혹은 의인화라고 이해될 만한 것을 전혀 갖다 붙인 적이 없다. 우리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생각하는 인간이 겸손으로 채워야 하는 장엄한 구조다. 그것은 신비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진정으로 종교적인 감정이다.

인격신이라는 개념은 내게 아주 이질적이며 심지어 소박하게까지 보인다.

--p29

1.2. 종교가 모든 것을 이긴다 (Undeserved Respect)

이번에도 번역판 소제목이 조금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Deserved Respect(응당한 존중)'와 'Undeserved Respect(당찮은 존중)'가 운을 이루는데, 이런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그래도 전체적인 번역은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1장 앞 부분에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믿음, 즉 아인슈타인 식의 종교와 비슷한 종류들, 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 가치에 비해 당찮은 존중을 받고 있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초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창조주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당찮은 존중 혹은 과도한 존중의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는데, 몇 가지를 발췌해보겠습니다. 우선 양심적 병역 거부:
전시에 양심적병역거부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근거는 종교다. 당신이 전쟁의 해악을 상세히 연구하여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뛰어난 도덕 철학자라고 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병역을 면제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신의 부모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퀘이커교도라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당신이 퀘이커교의 이론을 모른다 해도 순풍에 돛단 듯이 병역을 면제받을 것이다. --p38

도킨스가 비판하는 것은 양심적병역거부 자체가 아니라, 양심적병역거부로 인정받는 절차에 있어서 종교가 지나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환각제 복용입니다:
2006년 2월 21일 미연방대법원은 뉴멕시코 주의 한 교파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준수해야 하는, 환각제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식물의 혜택을 입은 통일된 영혼(Centro Espirita Beneficiente Uniao do Vegetal)'이라는 종교 단체의 신자들은 디메틸트립타민(Dimethyltryptamine)이라는 불법 환각제가 함유된 호아스카(또는 아야후아스카) 차를 마셔야만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omitted...) 그들은 증거를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반면 대마초가 화학요법을 받는 암 환자들의 욕지기와 불안을 완화시킨다는 증거는 많지만 2005년 연방대법원은 의료용으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모두 연방법상 기소 대상이라고 판결했다(몇몇 주에서는 그런 특수 용도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것을 합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omitted...) 늘 그렇듯이 종교는 으뜸패다. 어느 미술 동호회가 인상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각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볍원에서 변론한다고 상상해보라. 한 교파가 똑같은 필요성을 주장하자 한 나라의 최고 법원이 그들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것이 종교가 부적으로서 지닌 힘이다.

--p38~39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이러한 관점 하에서 전개됩니다. 즉, 종교에 대해 보통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당찮은 존중"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보겠다는 얘기입니다.

2장 요약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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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간략하게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Is There Historical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Jesus)?"라는 주제의 토론에 대해 언급했었는데요, 어제 밤에 전문을 다 읽었습니다.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는 독실한 근본주의 신학자인 William Lane Craig와 처음에는 같은 근본주의자였지만 본문비평학에 오랜 동안 몸 담고 있다가 결국 불가지론자가 된 Bart D. Ehrman 사이의 공개 토론입니다.

사실 William Craig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Bart Ehrman은 "Misquoting Jesus (성경 왜곡의 역사)"의 저자로 유명한 권위자입니다:

Image:Misquoting Jesus.jpg


William Craig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 다음 네 가지 "사실"이 언급된다:

1.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은 뒤 땅에 묻혔다.
2. 얼마 후 예수의 빈 무덤이 발견되었다.
3. 예수가 죽은 뒤에 그를 보았다는 무리들이 있었다.
4. 당대에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해석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Bart Ehrman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은 신학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자료이지만 역사학적 자료로 쓰이기에는 가치가 떨어진다. 역사적으로 타당한 설명이란 자연주의적인(naturallism - super-natural의 반대 의미로서의 자연주의) 설명인데, "부활"이라는 사건은 "기적"이고, 기적이란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자연적인 설명이 가능한가"라는 물음과 같다.

즉, "기적 자체가 가능한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치고, 과연 그것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과학적/합리적/자연적으로 설명이 되는 현상은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기적인 것이죠.

사실 제 생각엔 여기까지가 토론에서 오간 내용의 전부이고, 여기에서 토론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격식을 갖추고, 온갖 논리와 자료,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해서 논쟁하고 있지만 요약해놓고 보면 동네 아이들 말 싸움이나 그 수준이 비슷합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종종 있었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성경 무오류설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W.C가 제시한 "사실"들에 대하여, B.E은 "그러한 사실들이 언급된 신약의 여러 복음서들에 다양한 오류, 의도적 변개 및 실수로 인한 변개 등이 있고, 각 복음서의 주장들이 서로 약간씩 다르다는 점" 등을 지적합니다.

그러자 W.C는 "조금 틀린 부분이 있다고 해서 모두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부차적인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요한 부분들은 모든 복음서에서 일관성 있게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모든 텍스트의 가치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더 오래된 믿을만한 텍스트를 우선적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을 언급했습니다.

B.E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W.C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날립니다:

"그렇다면, 성경 어딘가에 사소한 문제라도 있다는 것인가? 부차적인 문제라도 좋으니 정확히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W.C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 질문에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

Bart Ehrman이라는 사람에게 흥미가 생겨 뒷조사를 하다보니 이런 글까지 읽게 되었네요. 조만간 "성경 왜곡의 역사"에서 말하고 있는 성경의 문제들, 특히 신약의 문제들에 대해 요약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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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마약복용이라는 글에서 모기불님이 아래와 같이 쓰셨는데요:
인권이형에게 징역 2 년이 구형됐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된다면 양심적 마약복용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까놓고 말해서 인권이형이 마약류를 복용해서 넘을 강간하기를 했냐 강도짓을 했냐. 마약류를 복용한 다음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열창을 하고 대한민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반을 생산하기 밖에 더 했냐 말야.

"망상"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사실은 이미 인정받고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로 유명한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는 최근작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에서 종교가 누리는 여러가지 비정상적 특권들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그 유명한 양심적 병역거부입니다:
전시에 양심적병역거부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근거는 종교다. 당신이 전쟁의 해악을 상세히 연구하여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뛰어난 도덕 철학자라고 해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서 병역을 면제받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당신의 부모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퀘이커교도라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당신이 퀘이커교의 이론을 모른다 해도 순풍에 돛단 듯이 병역을 면제받을 것이다. --p38

두번째가 바로 환각제 사용인데, 이게 소위 "양심적 마약복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 전도 아니고 고작 1년 전입니다:
2006 년 2월 21일 미연방대법원은 뉴멕시코 주의 한 교파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준수해야 하는, 환각제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식물의 혜택을 입은 통일된 영혼(Centro Espirita Beneficiente Uniao do Vegetal)'이라는 종교 단체의 신자들은 디메틸트립타민(Dimethyltryptamine)이라는 불법 환각제가 함유된 호아스카(또는 아야후아스카) 차를 마셔야만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omitted...) 그들은 증거를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반면 대마초가 화학요법을 받는 암 환자들의 욕지기와 불안을 완화시킨다는 증거는 많지만 2005년 연방대법원은 의료용으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환자들은 모두 연방법상 기소 대상이라고 판결했다(몇몇 주에서는 그런 특수 용도로 대마초를 사용하는 것을 합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듯이 종교는 으뜸패다. 어느 미술 동호회가 인상주의나 초현실주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각제가 필요하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볍원에서 변론한다고 상상해보라. 한 교파가 똑같은 필요성을 주장하자 한 나라의 최고 법원이 그들의 주장을 지지했다. 그것이 종교가 부적으로서 지닌 힘이다.

--p38~39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미쿡의 판례인데 국내에서도 통하지 않을까요? "동/식물 및 각종 화합물의 혜택을 두루 입은 예술적 영혼" 같은 종교를 하나 만들어서 훌륭한 예술가들을 교인으로 받는 것죠. 물론 교주는 인권이형.

초호화 맴버로 구성된 복음 성가단과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갖는 경전 및 예배당. 아아... 훌륭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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