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미친소 수입하는것보다 더 걱정되는 게 저런 미쳐버린 문화가 수입되는 거다. 촛불시위하는 인간들은 이런 게 진짜 시위할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자. (...omitted...) 1958년 볼로냐에서 유대인 부모와 함께 살던 여섯 살짜리 에드가르도 모르타라가 종교 재판소의 명령을 받은 교황청 경찰에 의해 합법적으로 강탈당했다. 모르타라는 흐느끼는 어머니와 망연자실한 아버지에게서 강제로 격리되어 로마의 교리문답생(유대인과 이슬람교도 중 개종한 사람들이 들어가는)이 되었고, 그 뒤로 로마가톨릭교도로 성장했다. 그의 부모는 사제들의 엄중한 감시하에 잠깐 면회하는 것 외에는 자식을 만날 수가 없었다.
(...omitted...)
모르타라의 일화는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결코 특이한 것이 아니었으며, 사제들이 유괴를 한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그 아이들은 모두 이전에 몰래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대개 가톨릭교도인 보모가 세례를 했고, 나중에 종교 재판소가 그 말을 듣고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아무리 비공식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해도 일단 세례를 받으면 그 아이는 기독교인이 되고 그 사실을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이 로마가톨릭 신앙의 핵심 부분이었다. '기독교도인 아이'가 유대인 부모 밑에서 자란다는 것은 그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고, 그들은 전 세계의 분노에 맞서서 이 기이하고 잔인한 태도를 충실히 고수했다.
(...omitted...)
전체 가족에게 그렇게도 중요한 의식치고는 놀랍게도 가톨릭교회는 누구라도 아무에게나 세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지금도 그렇다). 반드시 사제가 세례를 할 필요도 없다. 아이나 부모나 다른 누군가가 세례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서명할 필요도 없다. 공식 참관인도 필요없다. 오로지 물, 몇 마디의 말, 무력한 아기, 미신과 교리문답에 세뇌된 보모만 있으면 된다. 사실 이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항목만 있으면 된다. 아기는 너무 어려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를 테니, 보모가 세례를 했다고 말하면 누가 알겠는가?
--p474~476
이 책에서 나는 일부러 십자군 전쟁, 신대륙 정복자들, 스페인 이단 심판 같은 끔찍한 사례들은 상세히 다루지 않았다. 잔혹하고 사악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종파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종교 재판소와 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종교적인 정신과 종교적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악덕들에 관해 특히 많은 것을 상징한다.
첫째는 물을 뿌리고 짧은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아이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종교적인 정신의 놀라운 사고방식이다. 부모의 동의보다, 아이 자신의 동의보다, 아이의 행복과 심리적 안녕보다, 상식과 감정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보다 그것이 우선한다고 보는 사고방식 말이다.
(...omitted...)
둘째는 사제, 추기경, 교황이 가여운 모르타라에게 자신들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다른 면에서는 분별력이 있지만, 그들은 그를 부모로부터 떼어내 기독교도로 키우는 것이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그들은 보호의 의무를 느꼈다!
(...omited...)
셋째는 종교인들이 증거도 없이 자신들이 태어날 때 지닌 신앙이 참된 신앙이며 다른 모든 신앙은 정도를 벗어났거나 전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는 뻔뻔함이다. (...omitted...) 모르타라 가족이 사제들의 간청을 받아들여서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고 동의만 했다면 아이를 즉시 돌려받을 수 있었다는 말을 이 자리에서 해두자. 아이는 물과 의미 없는 말 몇 마디 때문에 강탈당했다. 종교에 세뇌되어 그렇게 얼빠진 생각을 하는 정신은, 같은 일을 한 차례 더 하면 상황이 원상 복구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은 그 부모의 거부를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본다. 또 일부는 원칙을 고수한 덕분에 그들이 모든 종교를 통틀어 길이 남을, 기나긴 순교자 목록에 오를 것이라고 본다. (...omitted...) 그들은 세례를 받는 동안 몰래 "아니야"라고 속삭이거나 손가락으로 가위표를 그릴 수는 없었을까? 아니,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온건한) 종교 속에서 자랐기에 그 우스꽝스러운 행위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나로서는 어린 모르타라가 불쌍할 뿐이다.
(...omitted...)
넷째는 같은 맥락인데 여섯 살짜리 아이가 유대교든 기독교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알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는 아이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그를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단번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불합리하다. (...omitted...) 너무 어려서 아직 생각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어떤 신앙의 소유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일종의 아동 학대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행위는 거의 의문시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p477~480
종교는 당신의 모든 일을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당신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열 가지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그 열 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하면, 그는 당신을 고문하고 고통을 주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목이 메도록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게 할 것이다 ... 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
근본주의자는 '신성한 책'에서 진리를 읽고 자신의 믿음을 뒤흔들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안다 (...omitted...) 대조적으로 과학자인 내가 믿는 것(예를 들면 진화)은 신성한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연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omitted...) 진화에 관한 책들은 신성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omitted...) 어느 과학책이 틀렸다면, 결국은 누군가가 실수를 발견할 것이고 그 뒤의 책들은 수정되어 나온다. 신성한 책은 그럴 일이 없다. --p427
철학자들, 특히 약간의 철학 교육을 받은 아마추어들과 더 나아가 '문화 상대주의'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지루하게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을지 모른다. 증거에 대한 과학자의 믿음 자체가 근본주의 신앙이라고 말이다. (...omitted...)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아마추어 철학이 어떠한 것이든, 자신의 삶에서 얻은 증거를 믿는다. 내가 살인죄로 기소되고 검사측이 범죄가 일어난 밤에 내가 시카고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냐고 엄중하게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애매한 답변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것은 당신이 말하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p427~428
과학자로서 나는 근본주의 종교에 적대적이다. 그것이 과학적 탐구심을 적극적으로 꺾으려 하기 떄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음을 바꾸지 말고,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과학을 전복시키고 지성을 부패시킨다(It subverts science and saps the intellect). --p430
그는 과학적 세계관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펼친 뒤 말 그대로 한 구절씩 오려가면서 독파했다.
"나는 성경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온전히 남아 있는 여백의 도움을 받아도 두 장씩 집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나는 진화와 성경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성경이 옳고 진화가 틀렸든지, 진화가 옳고 성경이 틀렸든지. ... 그날 밤 나는 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화를 포함한, 그것을 반박할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깊이 슬퍼하면서 나는 과학에 대한 내 모든 꿈과 희망을 불속으로 내던졌다"
나는 종교가 와이즈에게 한 짓 때문에 종교에 적대적이다.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지질학자가 그렇게 당했다면, 재능이 덜하고 대항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생각해보라.
--p431~433
구약성서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 중 하나는 불경죄에 가해지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불경죄에 가장 심한 형벌이 가해진다. 파키스탄 형법 295-C항은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형에 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1년 8월 18일 의사이자 강사인 요니스 사이크가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예언자 마호메트가 40세에 종교를 창시하기 전까지는 이슬람교도가 아니었다고 한 말이 화가 되었다. 학생들 중 11명이 그를 당국에 신고했다. 파키스탄에서 불경죄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개 기독교인들이다. 2000년 파이살라바드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오거스틴 아시크 '킹리' 마시가 그랬다. 기독교인이었던 마시는 연인과 혼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슬람교도였고 믿을 수 없게도 파키스탄(그리스 이슬람교) 법은 이슬람 여성이 비이슬람 남성과 혼인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자 했고, 결국 개종 동기가 의심스럽다면서 기소된 것이다. 내가 읽은 기사로 볼 때 그 자체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였는지, 아니면 그가 예언자의 도덕에 관해 어떤 말을 한 것이 빌미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편협한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법을 지닌 나라에서는 그것이 사형 선고를 받을 만한 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압둘 라만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가 누구를 죽였거나 누구를 다치게 했거나 무언가를 훔쳤거나 무언가를 훼손했던가? 아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자신의 마음을 바꾼 것뿐이다. 내면적으로, 사적으로 마음을 바꾸었을 뿐이다. (...omitted...) 라만은 결국 처형을 피했지만, 그것은 그가 정신이상이 있다고 변명하고 국제 사회의 강력한 압박이 가해진 결과였다. 현재 그는 이슬람교도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열심인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피해 이탈리아의 수용소에 들어가 있다. (...omitted...) 1992년 9월 3일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있다. 사디크 압둘 카림 말라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배교죄와 불경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공개 참수형에 처해졌다.
--p434~436
하지만 기독교 국가라고 나을 것은 없다. 비교적 최근인 1922년 영국에서 존 윌리엄 고트가 불경죄로 9개월의 중노동을 선고받았다. 예수를 어릿광대에 비교했다는 것이다.
(...omitted...)
미국 텔레반이라는 웹페이지에는 앤 콜터라는 사람의 대단한 말을 시작으로 불쾌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인용문들이 많이 등장한다. (...omitted...) 그 사이트에는 "우리는 그들의 국가를 침략하여 지도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 하원의원 밥 도넌의 "게이(gay)가 신이 아직 돕느냐(God Aids Yet?)의 약어가 아니라면 쓰지 말라", 윌리엄 보이킨 장군의 "조지 부시는 미국 투표자 중 다수가 선출한 것이 아니라 신이 임명했다", 그리고 예전에 Ronald Reagan 행정부의 내무장관이 환경 정책에 대해 한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등 주옥같은 말들이 실려 있다. 아프간 텔레반과 미국 텔레반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글자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그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정일치제 사회의 삶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림끼치는 사례를 제공한다. 킴벌리 블레이커의 "극단론의 기초: 미국에서 기독교도의 권리"는 기독교 텔레반(명칭을 쓰지는 않는다)의 위협을 폭로한다.
--p436~438
인간 배아는 인간 생명의 한 유형이다. 따라서 절대론적 종교관에 따르면 낙태는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전적으로 살인이다. (...omitted...) 실제로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평화의 가장 큰 파괴자는 낙태다"라고 말했다. 뭐라고? 그렇게 비뚤어진판단을 내리는 여성이 한 말을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정으로 노벨상을 받을 만한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독실한 척 하는 위선적인 테레사 수녀에게 속아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은 Christopher Hitchens의 "선교사의 위치: 이론과 현실의 마더 테레사"를 읽어봐야 한다.
(...omitted...)
그 들이 볼 때 문제는 훨씬 단순하다. 배아는 '아기'이고, 그것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그것이 다이다. 논쟁 끝. 이 절대론적 태도로부터 많은 것이 파생된다. 우선 배아 줄기 세포 연구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것이 의학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 연구가 배아 세포의 죽음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 논리의 모순은 사회가 이미 체외 수정 시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체외 수정 시술 때 의사들은 난자가 더 많이 나오도록 여성을 자극한 후 배출된 난자들을 몸 바깥에서 수정시킨다. 생존 가능한 접합자가 십여 개 생성되면, 그중 두세 개를 자궁에 이식한다. 그중에서 겨우 하나나 두 개가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체외 수정 과정에서 배아가 죽지만, 사회는 거기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p444~p448
특정한 부류의 종교인은 미세한 세포 덩어리를 죽이는 것과 다 성장한 의사를 죽이는 것의 도덕적 차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omitted...) 마크 위젠스메이어의 "신의 마음 속 테라"라는 오싹한 저서에는 마이클 브레이 목사와 그의 친구 폴 힐 목사가 "천진난만한 아기의 살해를 중단시키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라는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둘 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잘 차려입고 매력적인 웃음을 띠고 있는 다소 미숙해 보이는 멋진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신의 군대에 속한 그들의 동료들은 임신 중절을 시술하는 병원들에 불을 지르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고, 의사들을 죽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1994년 7월 29일 힐은 의사인 존 브리턴과 그의 경호원 제임스 바릿을 플로리다 주 펜서콜라에 있는 브리턴의 병원 앞에서 총으로 사살했다. 그런 다음 그는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가서 미래의 '천진난만한 아기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 의사를 죽였다고 말했다.
얼마만큼 자랐든 인간의 배아가 같은 발달 단계에 있는 소나 양의 배아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인간이든 아니든, 모든 배아가 도살장에 있는 소나 양보다 고통을 훨씬 덜 느낀다고 가정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이다. 특히 종교의식에 쓰이기 위해 목이 잘릴 때까지 온전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동물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Peter Medawar와 진 메더워는 "생명과학"에서 영국의 하원의원이자 저명한 로마가톨릭 평신도인 노먼 세인트 존 스테바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omitted...)
"임신 중절에 관해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습니다.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았는데, 첫째는 맹인이었고, 둘째는 사산했고, 셋째는 농아였고,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요. 당신이라면 어찌했겠습니까?"
"임신 중절을 시켰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베토벤을 살해한 겁니다."
인터넷에는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는, 이른바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사이트가 여럿 있으며, 이야기마다 사실을 가리키는 전제들이 제멋대로 변형되어 있다. (...omitted...) 개작된 전설은 그 위대한 작곡가를 다섯째가 아니라 아홉째로 밀어내고 귀가 먼 아이의 수를 셋, 눈이 먼 아이의 수를 둘로 늘리고,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매독에 걸렸다고 말한다. (...omitted...) 그것은 창작된 것이 분명하며, 전적으로 틀렸다. 사실 베토벤은 아홉째 아이도, 다섯째 아이도 아니었다. 그는 장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둘째지만, 첫째가 유아 때 죽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죽은 첫째는 눈이 멀거나, 귀가 먹지도 않았고, 정신지체도 없었다. 그의 부모가 매독에 걸렸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비록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결핵으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 많았다.
사실 그것은 완전히 창작된 전설이다. 어쨌거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지금의 논점과 별 관계가 없다. 설명 거짓말이 아니라도 그것에서 이끌어낸 논증은 사실상 아주 나쁜 논증이다. 메더워 부부는 그 논증의 오류를 지적할 때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굳이 따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 불쾌하고 사소한 논리의 배후에 있는 추론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결핵에 걸린 어머니와 매독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음악 천재의 출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금욕 때문에 베토벤을 잃는 것이 아니듯이 낙태로 베토벤을 잃는 것도 아니다."
(...omitted...)
'인간의 잠재력' 논증의 논리적 결론은 우리가 성교를 할 기회를 놓칠 때마다 한 인간의 영혼에게서 존재라는 선물을 잠정적으로 빼앗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논리에 따르면 번식 능력이 있는 개인의 성교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잠재적인 아이를 살해하는 셈이다! 심지어 강간에 저항하는 것도 잠재적인 아기를 살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운동가들의 상당수는 야만적으로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임신 중절을 하는 것까지도 반대한다). 명확히 알 수 있겠지만 베토벤 논증은 정말로 아주 나쁜 논리다. 그것의 초현실적인 멍청함은 몬티 파이톤의 영화 "삶의 의미"에서 마이클 팔린이 "모든 정자는 신성하네"라는 장엄한 노래를 수백 명의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에 멋지게 요약되어 있다(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보기를).
--p455~460
여기서 내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부드럽고 온건한 종교도 극단주의가 자연스럽게 번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이 말은 이슬람교뿐 아니라 기독교에도 적용된다)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다. (...omitted...) 의문을 품지 않는 신앙이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 획득하기 어렵지 않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할 때 - 을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순교자의 낙원을 약속받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그 진정한 신앙의 집약체 즉, '인간 폭탄'은 긴 활, 군마, 탱크, 집속 폭탄과 함께 무기의 역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아이들에게 의문 없는 신앙이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가르치는 대신 자신의 믿음을 통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면, 자살 테러범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살 테러범은 자신이 종교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다. 신에 대한 의무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며, 임무 도중에 순교를 하면 천국의 정원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러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것들을 극단적인 광신자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점잖은 주류 종교 교사들로부터도 배운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줄지어 앉게 한 다음, 멍한 앵무새처럼 경전의 단어 하나하나를 배울 때마다 천진무구한 작은 머리를 리듬감 있게 끄덕이게 한다. 신앙은 아주 위험하며, 그것을 순진한 아이의 취약한 정신에 계획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몹시 잘못된 일이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사형이었다. 산 채로 묻은 뒤 그 위에 벽을 쌓는 고상한 방법을 써서 말이다. 그 '죄' 자체는 다른 누구에게도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성인들 사이의 동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적인 행위이며, 여기서 다시 우리는 종교적 절대론의 고전적인 증표를 본다. 내 조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영국에서도 동성애는 1967년까지 범법 행위로 취급되었다. 1954년 Von Neumann과 더불어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영국의 수학자 Alan Turing이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자살했다. 튜링이 벽 아래 산 채로 묻힌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2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든지(다른 죄수들이 그를 어떻게 대할지 상상이 갈 것이다) 가슴을 튀어나오게 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화학적 거세를 당할지, 선택을 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는 것으로 개인적인 선택을 했다.
(...omitted...)
미국 탈레반이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종교적 절대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리버티 대학교의 설립자인 Jerry Falwell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AIDS는 그저 신이 동성애에 내린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을 묵인한 사회에 대한 처벌이다." (...omitted...) 웨스트버로 침례교의 프레드 펠프스 목사도 동성애자들을 강박적일 정도로 싫어하는 막강한 설교자다. (...omitted...) 그에게는 많은 후원자들과 후원금이 몰린다. 그의 웹사이트에는 그가 1991년 이후로 미국, 캐나다, 요르단, 이라크에서 "신이여, 에이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표어를 들고 2만 2000번(평균 나흘에 한 번꼴)의 동성애 반대 시위를 벌였다고 나온다. 그의 웹사이트에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사망한 한 동성애자의 이름과 함께 그가 지옥에서 며칠째 불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p439~442
일찍이 동성애로 성문화가 타락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진노로 유황불 심판으로 망하였다. 또한 성경은 동성애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레 18:22, 20:13, 롬 1:27). 동성애가 사회적 지탄 대상이 된 것도 에이즈가 동성애자들에 의해서 많이 전염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 많은 성적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한기총 김청 홍보국장은 육우당 씨의 죽음이 한기총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기에 공식적인 사과성명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omitted...) 김청 홍보국장은 "그 사람이 죽음을 선택한 것이기에 그 사람 개인의 책임이지 한기총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의 모든 것’ 강의 마련된다:
강의 내용은 관계 중독에서 치유를 경험한 앨리 선교사의 간증(60분)을 통해:등을 먼저 알린다. 이어 한 평범한 소년·소녀가 동성애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살펴보는 동성애의 주요 원인에 대한 강의(60분)와 동성애의 예방과 치유, 그리고 교회의 책임에 대한 설명(60분)이 계속된다.
- 한 세대의 상처가 다음 세대의 상처에 끼치는 영향
-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우리의 합법적 필요,
- 그리고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 필요를 채우려는 우리
-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회복
종교는 당신의 모든 일을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당신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열 가지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그 열 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하면, 그는 당신을 고문하고 고통을 주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목이 메도록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게 할 것이다 ... 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런데 돈도 원해. 항상 돈을 요구하지! 전지전능하고 완벽하고 현명한 사람이지만 웬일인지 돈만큼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거야! (He loves you, and he needs money! He always needs money! He's all powerful, all perfect, all knowing, all wise, but somehow he just can't handle money!)
제대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어 듣기가 초큼 딸려서요 ㅜㅠ
물론 신학자들은 우리가 더 이상 창세기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항변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다! 우리는 성서에서 어느 부분은 골라서 믿고, 어느 부분은 상징이나 우화로 간주한다. 그렇게 취사선택하는 행위는 무신론자가 절대적인 근거 없이 이 도덕 규정이나 저 도덕 규정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판단의 문제다. 어느 한쪽이 '직감에 좌우되는 도덕'이라면 다른 한쪽도 그렇다. --p358~359
하텅(진화인류학자 존 하텅)은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George Tamarin의 섬뜩한 연구를 설명한다. 타마린은 8~14세의 이스라엘 아이 1000여 명에게 여호수아서에 나온 예리코 전투 장면을 읽어주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고함을 쳐라. 주께서 저 도시를 너희에게 주셨다. 저 도시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여 주께 바쳐라...... 하지만 은이나 금, 동이나 철로 만든 집기들은 모두 주께 바칠 것이다. 그것들은 주의 금고에 넣을 것이다." ......그들은 남녀노소, 소, 양, 나귀 등 도시의 모든 것을 칼로 모조리 없앴다...... 그리고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오직 은과 금, 동이나 철로 된 집기들만 모아 주의 집에 있는 금고에 넣었다.
타마린은 아이들에게 간단한 도덕 문제를 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A(전적으로 찬성), B(일부 찬성), C(전적으로 반대) 중에서 답을 선택했다. 결과는 양쪽으로 갈렸다. 66퍼센트는 전적으로 찬성했고, 26퍼센트는 전적으로 반대했으며, 일부 찬성이라는 중간 입장을 택한 아이는 적었다(8퍼센트). 여기 전저긍로 찬성한 집단(A)의 전형적인 대답 중 세 가지를 소개한다.
- 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바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이유는 이렇다. 신은 그들에게 이 땅을 약속했고 정복하라고 허가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거나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교도들에게 동화될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 내 생각에 여호수아가 그렇게 한 것은 옳았다. 한 가지 이유는 신이 이스라엘 부족들이 그들에게 동화되어 나쁜 행동을 배우지 않도록 그들을 전멸시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갖고 있었고, 여호수아가 그들을 죽여 그들의 종교를 세상에서 없애버렸기 때문에 그는 옳았다.
여호수아의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어느 모로 보나 종교적이다. 전적으로 반대한 C 집단에 속한 아이들 중에도 일부는 모호한 종교적 이유로 그 쪽을 택했다. 한 소녀는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정복하려면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반대라고 대답했다.
- 아랍인들은 불결한데, 불결한 땅에 들어가면 그도 불결해지고 그들의 저주를 함께 떠안게 되므로 나쁘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반대한 다른 두 명은 여호수아가 전리품으로 좀 남겨놓지 않고 모든 동물과 재산을 파괴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했다.(...omitted...)
- 여호수아가 자신들을 위해 동물을 살려둘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잘했다고 보지 않는다.
- 여호수아가 예리코의 재산을 남겨놓을 수도 있었기에 잘했다고 보지 않는다. 재산을 없애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것이 되었을테니까.
타마린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아직 어려서 순진했다. 아마 그들의 비정한 견해는 그들이 자란 문화 집단이나 부모의 견해였을 것이다. (...omitted...) 타마린은 실험을 할 때 흥미로운 대조 집단을 설정했다. 168명의 이스라엘 아이들로 된 별도의 집단에 여호수아서의 같은 대목을 읽어주면서 여호수아라는 이름 대신에 '린 장군', 이스라엘 대신에 '3000년 전의 중국 왕조'를 넣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린 장군의 행동에 찬성한 사람은 7퍼센트에 불과했고, 75퍼센트는 반대했다. 다시 말해 유대교라는 요소를 고려 사항에서 제외시키자, 대다수 아이들은 현대인의 다수가 지닌 도덕적 판단과 일치하는 의견을 냈다. 여호수아의 행동은 야만적인 집단 학살 행위였다. 그러나 종교적 관점을 취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그 차이는 삶의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대량 학살을 비난하거나 용납하게 하는 등 견해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종교였다.
(...omitted...)
하텅의 재미있는 논문에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더 많이 실려 있으며, 한 번 더 그것을 추천하면서 그 인용문을 소개한다.
성경은 대량 학살, 외집단의 노예화, 세계 지배에 대한 명령들을 구비한 내집단 도덕의 청사진이다. 그러나 성경이 악한 목적을 지닌 것도, 살인이나 잔혹 행위나 강간을 찬미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고대의 많은 작품들이 내집단 도덕을 담고 있다. 일리아드, 아이슬란드 전설, 시리아의 옛 이야기, 고대 마야인의 암각화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일리아드를 도덕의 토대로 판매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성경은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안내서로 판매되고 구매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대미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omitted...)
나는 인간이 종교가 없다고 할지라도 내집단에 충성하고 외집단을 적대하는 강한 성향을 보이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omitted...) 하지만 종교는 적어도 세 가지 방식으로 그 피해를 증폭시키고 악화시킨다:
- 아이들에게 꼬리표 붙이기. 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구교 아이들'이나 '신교 아이들' 하는 식으로 묘사되며, 이는 그들이 종교에 관한 생각을 정립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렇다(이 아동학대 문제는 9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 분리된 학교. 아이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종교적 내집단의 또래들과 함께 그리고 다른 종교 집안의 아이들과는 격리되어 교육을 받는다. 만일 분리 교육이 폐지된다면 북아일랜드 분쟁이 한 세대만에 사라질 것이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 이교도와의 혼인을 금기시함. 이것은 반목하는 집단들의 혼합을 막음으로써 다툼과 복수가 대물림되도록 한다. 집단들의 혼인을 허용한다면 적대감은 자연히 누그러지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p383~394
종교인이든 아니든,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크게 변해왔다. (...omitted...) 어느 사회든 다소 수수께끼 같은 합의가 존재하며,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바뀐다. 독일어에서 유래된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말을 써도 결코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성의 참정권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말했지만, 이런 개혁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은 나라별로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연대다.
- 뉴질랜드 1893년
- 오스트레일리아 1902년
- 핀란드 1906년
- 노르웨이 1913년
- 미국 1920년
- 영국 1928년
- 프랑스 1945년
- 벨기에 1946년
- 스위스 1971년
- 쿠웨이트 2006년
20세기 전체에 걸쳐 있는 이 연대들은 변화하는 시대정신의 척도가 된다. 이와 함께 시대정신의 또 다른 척도는 인종을 보는 우리의 태도다. 20세기 초에 영국(그리고 다른 많은 국가들)에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인종차별주의자로 판단될 것이다.
--p400~410
오랫동안 별 인기를 끌지 못했고 심할 때는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Amotz Zahabi의 이론은 최근에 앨런 그래펀의 힘을 빌려 완벽하게 소생했고, 지금은 진화생물학자들이 진지하게 고찰하는 이론이 되어 있다. --p262
Handicap Principle이 처음에 반발을 산 것은 생물학자들이 신호 비용에 대한 경제학계의 연구를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0년대 경제학계의 게임이론가들은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한 상황에서 신호에 신뢰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들은 신호전달이론을 개발했다. 이것은 두 종류의 신호를 구별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다. 한 종류의 신호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기 때문에 신호를 만든 자의 진심을 나타내는 믿을 수 있는 지표다. 다른 하나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신호로서, 경제학자들은 빈말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빈말은 믿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빈말은 실천이 따르지 않으며,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비용이 수반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p194~195
질문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니 아주 야비해 보인다. 종교인이 내게 그런 식으로 물을 때(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반문하고 싶은 유혹을 순간적으로 느끼곤 한다. "당신이 선하고자 애쓰는 이유가 오로지 신의 인정과 보답을 얻거나 신의 불만과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요? 그것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감시 카메라를 돌아보면서 혹은 당신의 머리에 든 아주 작은 도청 장치에 대고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이지 도덕이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로지 처벌이 겁나서 그리고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이 선한 것이라면 우리는 정말로 딱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마이클 셔머는 "선과 악의 과학"에서 그것을 "논쟁 중단 장치"라고 불렀다. 신이 없을 때 자신이 '강도, 강간,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부도덕한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신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는 충고를 받을 것이다". 반면에 신의 감시를 받지 않을 때에도 자신이 선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인정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선하려면 신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치명적으로 훼손하게 된다.
--p344~345
설령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신의 존재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의 존재를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p350
전광훈 목사, 막말 섞어가며 창당활동 비호
전 목사는 “기독교가 정당을 만들면 종교간 갈등이 일어난다는 등 별놈의 소리를 다한다”며 “그런 말 하는 당신은 목사요, 중이요? 무슨 일 하는데 종교간 갈등이 무서워서 못하느냐. 그럼 교회는 종교간 갈등 있는데 왜 나왔어. 나오지 말아야지 등신아. 이 나까무라야. 언제 우리가 다른 종교 비위 맞추며 살았냐. 중처럼 빡빡 깎고 산에나 들어가”라고 말했다.
...
전광훈 목사는 또 “예수님 나라 만들기 간단하다. 국회를 1백프로 점령하고 299명 다 채워서 예수 안 믿는 놈은 감방에서 5년. 얼마나 좋아. 내가 군사독재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생각이 보통 독재가 아니다. 끝까지 (예수) 믿으라고 해서 안 믿으면 섬을 하나 정해놓고 중들을 집어넣고 헬리콥터로 컵라면만 떨어뜨리자. 예수도 안 믿는 인간들이 왜 살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랑실천당 발기인대회, “소문난 잔치에…”
이날 발기인대회는 당초 대표인 전광훈 목사(청교도영성훈련원장)가 호언했던 것보다는 작은 규모로 치러졌다. 24일 오후 2시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발기인대회에는 앞서 밝혔던 1천여명에 못 미치는 약 4백여명이 참석했다. “한 번에 터트려야 한다”며 참석 명단을 비밀에 부쳐왔지만 정작 발기인 대회장에 크게 눈에 띄는 인사도 없었다.
...
축사를 맡기로 했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동권 목사(진주교회)도 불참했다.
...
특강을 한 이춘근 박사는 “강대국 로마도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변화됐다”며 “개인적인 동기에서 출발하고 합리화 시키는 것이 일반 정치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초심 잊지 말자”고 전했다. 이어 축사를 전한 기독민주복지연합 최수환 장로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되겠다”며 합당을 약속했다. 최 대표는 “눈물이 날 정도로 희열이 난다”며 “흔쾌의 동조하고 협조해서 기독교 국가 될 때까지 열심히 따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