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을 이야기하시는 유시민 전장관님이라는 글을 썼었는데요, 이 글을 읽고 lawfully님이 재미난 글을 써주셨습니다.

제가 읽기에는 두 가지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개념이 항진명제라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 선택론(gene selection)이 아닌 개체 선택론(individual selection) 혹은 그룹 선택론(group selection) 관점은 "애매한 애국주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두가지를 말씀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윈주의적 애국주의는 (진화가 덜된) 19세기 다윈주의의 산물이라는 거죠.

사실 결론 부분에 대해서는 별 할 얘기가 없습니다.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유시민 전 장관님이 말씀하신 "다윈주의적 애국주의"에 정작 다윈주의적 요소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행동주의적 애국주의"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요.

결론 보다는 그 중간에 나온 두 가지 이야기에 더 흥미가 동한다는 얘기입니다 ^^


1.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은 항진명제인가

별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일단 다윈은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종의 기원 초판에는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대신 이런 식의 설명이 있죠:
... if variations useful to any organic being do occur, assuredly individuals thus characterised will have the best chance of being preserved in the struggle for life; and from the strong principle of inheritance they will tend to produce offspring similarly characterised. --Chapter 4 - Natural Selection

명확한 얘기이고, 순환논증도 아닙니다.

한편, (다윈이 말을 했건 안했건) 적자생존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요? 이것도 뭐 해석하기 나름이죠 ^^ 적자(fittest)란 단순히 살아남은 개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개체가 가진 특정 형질들로 인하여 살아서 번식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한데, "번식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질문에 대해서 "그 형질이 유전된다고"라고 대답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석하면 순환논증이 아니게 됩니다. 이 해석은 현대에 와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 아니라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당시에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개념입니다(위 초판본 인용문 참고).

다윈이 주장한 초기의 진화론은 현대에 와서 많은 부분 수정되었으나(좋은 일이죠), 적어도 이런 기본적인 개념에 있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죠. 따라서 "덜 진화한 19세기 진화론"에 순환논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2. 개체선택론이나 그룹선택론으로부터 "애국주의의 근거"를 이끌어낼 수 있나

선택의 단위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사실에 대한 명제로부터 당위가 자동으로 유도된다고 보는 견해는 항상 오류입니다. 개체선택론이나 그룹선택론적 관점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관점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로부터 애국주의적 근거를 이끌어내는 것은 오류라는 말입니다.

즉, 19세기 진화론(개체선택 혹은 그룹선택론적 관점)이건 20세기 진화론(유전자선택론적 관점)이건 간에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추가: "애초에 다윈이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는 이유는 뭐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창조론자들이 거들먹거릴 여지 한 가지를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짧게 말하자면 "다윈은 틀렸다. 그러니 현대 진화론도 틀렸다"는 식의 주장(이 주장 자체도 논리적 오류 - genetic fallacy - 입니다만 제법 잘 먹히죠)을 펼치는데에 악용되는 사례를 많이 봐 와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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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당 박멸하고 수학문명을 건설하고자 하시는(ㅋㅋ) 피타고라스님의 글을 통해 유시민 전장관님의 강연 "헌법애국주의"를 보게 되었습니다(무려 1시간 30분).

유시민의 "헌법애국주의" 강연 보러가기

평소 존경해왔던 분이기도 하거니와, 보는 내내 진화론을 이야기하셔서 귀를 쫑끗 세우고 봤죠 ^^; 몇 가지 재미있었던 구절들을 적어보려고요. (요점은 아니고 그냥 재미난 점)


1. 다윈주의적 애국주의에 대해

다윈주의적 애국행동을 "결과적으로 국가의 생존과 번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행동"이라고 정의하셨는데, 이게 왜 "다윈주의적"인지 조금 의문이었습니다. 그냥 "행동주의적"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다윈주의자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다윈주의는 보통 우파들이 좋아하는 이론인데 자신은 우파가 아니지만 다윈주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저도 우파가 아니면서 다윈주의를 좋아합니다 ^^). 우파들이 다윈주의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이런저런 책들에서 많이 봤습니다만 이건 사실 우파들의 오류죠: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개념에 따르면 기득권 세력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적자이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다. 억울하면 너희도 경쟁에서 살아남던가.

뭐 이런 생각인 모양인데, 적자생존의 법칙이라는 것은 사실(fact)이나 존재(is)에 대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사실에 대한 명제로부터 가치(value)나 당위(ought)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리적 오류입니다(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서 "적자가 생존한다"는 사실 명제로부터 "적자가 생존하는 것이 옳다"는 가치 명제가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3. 멜서스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라는 말씀에 대해

중간에 멜서스는 "사회적 다윈주의자"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혼자서 씨익 웃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멜서스가 대표적 사회적 다윈주의자라기 보다는, 다윈이 생물학적 멜서스주의자라고 해야하는거 아닐까? ㅋ

다윈 자서전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1838년 10월 체계적으로 질문을 시작한 지 15개월이 지나서 나는 우연히 멜서스의 인구론을 재미삼아 읽었다. 동식물의 습성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덕에 생존투쟁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컸던지, 이런 상황에서라면 유리한 변이는 제대로 보존될 것이며 불리한 경우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작업에 쓸 만한 이론을 하나 얻게 된 셈이다.

1838년이면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무려 십 여년 전인거죠.

재미난 강연이었어요. 사이버 강의실에 올라오고 있는 다른 강의들도 하나씩 들어볼 생각입니다. 자기 전에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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