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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1 종교는 진화적 부산물인가?
  2. 2008/01/01 초간단 진화심리학 소개
종교가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들 중 하나로 "진화적 부산물" 가설이 있습니다. 이 글은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설명하고 있는 진화적 부산물 가설을 요약/발췌한 것입니다.

참고로,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적 부산물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신 분은 "초간단 진화심리학 소개"를 먼저 참고해주세요.

종교를 진화적 부산물로 본다면 "무엇에 대한 부산물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고, 이 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부산물 가설은 여러 종류로 나뉠 수 있습니다. 도킨스는 여러 가지 부산물 가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중 세 가지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참고로 이 가설들은 서로 대립되는 가설이 아니라 양립 가능합니다.

1. 어른들이 엄숙하게 하는 말을 비판없이 수용하기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휴리스틱:
내 특정한 가설은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종보다도 더, 앞선 세대들의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생존하며, 그 경험을 아이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대물림할 필요가 있다. 이론상 아이들은, 절벽 끝으로 가서는 안된다, 먹어본 적이 없는 붉은 열매를 먹어서는 안된다, 악어가 우글거리는 물에서 헤엄치지 말아야 한다 같은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과소평가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경험 법칙(the rule of thumb을 번역한 것인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상관 없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휴리스틱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을 지닌 아이의 뇌는 선택적 이점이 있을 것이다.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부모의 말에 따르라. 부족 원로들의 말을 따르라. 특히 그들이 엄숙하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할 때는 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의심하지 말고 따르라. 그것은 일반적으로 아이에게 매우 유익한 규칙이다. 그러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에게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잘못될 수 있다.

(...omitted...)

아이는 "악어가 우글거리는 림폼포에서 헤엄을 치지 말라"는 좋은 조언이지만, "보름달이 뜰 때 염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는 기껏해야 시간과 염소를 낭비시키는 조언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좋은 훈계든 나쁜 훈계든, 똑같이 믿을 만한 것처럼 들린다. 둘 다 높이 평가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훈계로서 존경과 복종을 요구하는 엄격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전달된다. 세계, 우주, 도덕, 인간 본성에 관한 말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갖게 되면, 똑같이 엄숙한 방식으로 그 가르침들을 (의미 있는 것뿐 아니라 무의미한 것까지) 통째로 전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p266~270

위 가설은 실제 세계의 종교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지역별로 사실적 근거가 전혀 없는, 서로 다른 임의의 신앙이 대물림될 것이고, 그 신앙은 비료가 작물에 좋다는 등의 유용한 지혜와 동등한 자격으로 믿어질 것이다. 또 미신을 비롯한 비사실적인 신앙들이 무작위적 표류(Genetic Drift)나 다윈의 선택(Natural Selection)과 유사한것을 통해 국지적으로 진화하여 결국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상당히 분화한 패턴을 드러낼 것이다. --p270

특히, 많은 종교들이 모태 신앙, 유아 세례 같은 것을 강조하는 이유를 어쩌면 이 가설이 설명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종교 지도자들은 아이의 뇌가 취약하므로 일찌감치 교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회는 호언장담한다. "내게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려오면, 사람을 만들어주겠다." 그것은 진부하지만 정확한 (혹은 사악한) 말이다. 더 최근으로 내려오면, '가족에 초점을(Focus on the Family)' 운동을 창시한 James Dobson도 그 원리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배우는 것, 경험하는 것(그들이 듣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p270~271

지속적인 세뇌를 당하면 "아주 기이한 주장들"을 자연스럽게 믿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참으로 취약한 것 같아요: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이 우리에게 좀 기이해 보이는 것은 그저 그것들이 친숙하지 않아서다. 모든 종교 신앙들은 그 안에서 양육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이해 보인다. 보이어는 카메룬의 팡족을 연구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다고 한다:

마녀에게는 밤에 날아다니고, 다른 사람들의 작물을 망치고, 피에 집착하는 동물과 흡사한 장기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또 마녀들이 가끔 모여서 대규모 연회를 벌이는데, 그곳에서 희생자를 잡아 먹고 다음에 또 다른 희생자를 공격할 계획을 짠다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한밤중에 마녀가 마을 위를 날아다니거나 바나나 잎사귀 위에 앉거나 사람들에게 마법의 화살을 던지는 모습을 친구의 친구가 진짜로 보았다는 말을 할 것이다.

보이어는 이어서 개인적 일화를 언급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어느 저녁 만찬에서 이런저런 별난 습속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명한 신학자가 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인류학이 대단히 흥미롭고도 어려운 이유가 그 때문이겠지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헛소리를 믿을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주전자와 잔만 만지작거렸다.

그 신학자가 주류 기독교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었을 것이다:
  • 조상들의 시대에 한 남자가 생물학적 아버지 없이 처녀인 어머니의 몸에서 태어났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나사로라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고, 죽은지 오래되어 악취를 풍기던 나사로는 즉시 부활했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도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다.
  • 40일 뒤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언덕 위로 올라가서 육신을 지닌 채 하늘로 사라졌다.
  • 당신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 없는 남자 자신이기도 하다)가 그 생각을 알아차릴 것이고 조치를 취할지 모른다. 그는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
  • 당신이 나쁜 짓이나 좋은 짓을 하면, 설령 아무도 모를지라도 그 아버지 없는 남자는 볼 것이다. 당신이 죽은 뒤에라도 그런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을 것이다.
  •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처녀인 어머니는 죽지 않고 육신을 지닌채 '승천했다'.
  • 빵과 포도주는 사제(고환을 지녀야 한다)의 축복을 받으면 그 아버지 없는 남자의 피와 살이 '된다'.

어느 객관적인 인류학자가 이런 믿음에 새롭게 접한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p271~273

2. 선천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

두 번째는 종교가 본능적 이원론의 부산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종교는 부산물이다"라는 견해의 옹호자인 심리학자 PaulBloom은 아이들이 본래 이원론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볼 때 종교는 그런 본능적인 이원론의 부산물이다. 그는 우리 인간, 특히 아이들이 타고난 이원론자라고 주장한다. --p274~275

천선적 이원론과 선천적 목적론의 결합은 매우 종교적인 성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블룸은 아이들, 특히 아주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이원론자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실험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것은 이원론적인 성향이 뇌에 새겨져 있음을 시사하며, 블룸에 따르면 그것이 종교 개념을 포용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또 블룸은 우리가 천성적으로 창조론자의 성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자연선택은 "직관적으로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심리학자 Deborah Keleman이 "아인들은 직관적인 유신론자인가"라는 논문에서 말하듯이 아이들은 모든 것에 목적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룸은 '비를 내리기 위한' 것이다. 뾰족한 바위는 '동물들이 가려울 때 대고 긁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만물에 목적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론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타고난 목적론자이며, 자른 후에도 결코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천성적 이원론과 천성적 목적론은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종교로 향하게끔 우리에게 성향을 부여한다. (...omitted...) 이원론은 영혼을 몸의 통합된 일부가 아니라 몸에 깃든 별개의 것으로 믿게 한다(Steven Pinker는 빈서판이라는 저서에서 이를 Ghost in the Machine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분리된 영혼이 몸이 죽은 뒤 다른 어딘가로 옮겨진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또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를 순수한 영혼이라고 즉, 복잡한 물질의 창발적 특성이 아니라 물질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이의 목적론은 더욱 확연히 종교를 받아들이게끔 우리를 설정해놓는다. 모든 것이 목적은 지닌다면, 그것은 누구의 목적인가? 물론 신의 목적이다.

--p276~277

3. 자기기만의 진화

이 가설은 Robert Trivers와 Loinel Tiger(이름이 재미있군요)가 제시한 것입니다.
Robert Trivers는 "사회적 진화"에서 1976년에 제시했던 자기기만의 진화론을 더 확장했다:

자기기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더 잘 숨기기 위해 자신의 의식에게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이고자 할 때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힐끔거리는 눈, 땀이 밴 손바닥, 갈라진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무의식적으로 사기를 치게 되면, 사기꾼은 관찰자에게 이런 신호들을 숨길 수 있다. 그나 그녀는 사기를 칠 때 수반되는 초조함을 느끼지 못한 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류학자 Lionel Tiger도 "낙천주의: 희망의 생물학"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가 방금 논의한 이런 형태의 건설적인 비합리성은 Robert Trivers의 지각 방어(Perceptual Defense)를 다룬 대목에도 언급된다:

인 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의식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말 그대로 긍정적인 함의를 지닌 것들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는 반면 부정적인 것들은 잘 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개인의 역사 때문이든 실험상의 조작 때문이든,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은 더 두드러지게 표현해야만 지각한다.

이것이 종교의 갈망하는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p286~287

도킨스의 책에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전에 Edward Wilson(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통섭 - Consilience - 의 저자)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라는 저서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당과 사제의 자기 기만은 자신들의 연기를 완성시키며, 신자들에게 행해지는 기만을 강화시킨다. --p244, "인간 본성에 대하여" 중에서.

여담: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현재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강북에 있는 S모 대학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렸었는데 80년대에 번역/인쇄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표지 안쪽에 "금서"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예전에 찍었던 것 같아요. ㄷㄷㄷ 사회생물학은 한 때 많은 오해를 받았던(사실은 지금도 받고 있는) 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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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글을 쓰다가 진화심리학을 언급할 일이 있으면 링크를 걸기 위해 진화심리학에 대해 짧게 정리를 해봤습니다.

진화심리학 = 진화생물학 + (인지)심리학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의 이론들을 심리학에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인체의 다양한 기관이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adaptive problem)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된 적응 기관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눈은 외부의 사물을 보기 위한 적응 기관이고,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키기 위한 적응 기관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인간의 마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심리적 모듈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모듈들은 각각 특수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되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기 위한 모듈, 언어 습득을 위한 모듈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 모듈은 진화된 심리 메커니즘(Evolved Psychological Mechanism)이라고 부릅니다.

진화의 세 가지 산물: 적응, 부산물, 노이즈

(꼭 진화심리학에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과정은 "적응, 부산물, 노이즈"라는 세 가지 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 부분은 David Buss의 "The Evolutionary Psychology"를 요약/번역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 적응(Adaptation) - 특정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누적된 결과로 만들어진 유전성이 있고 발달 과정상 안정적인 형질. 예를 들면 탯줄은 태아가 산모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기 위해 진화된 "적응"으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부산물(By-products) - 진화적 적응의 여파로 생겨난 목적 없는 형질. 예를 들면 배꼽. 배꼽 그 자체는 어떠한 문제를 풀기 위해 진화된 것이 아니라, 탯줄을 끊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흔적입니다. 부산물은 적응의 흔적이기 때문에 적응과 마찬가지로 모든 개체에 존재합니다.
  • 노이즈(Noise) - 돌연변이,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 발달 상의 어떠한 사건 등으로 인해 개체에 가해진 임의적인 산물. 예를 들면 배꼽의 모양. 노이즈는 적응이나 부산물과 달리 개체 사이에 일관성이 전혀 없습니다.
진화심리학(혹은 진화생물학)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산물은 적응과 부산물 입니다. 특히 무엇이 진화적 적응이고 무엇이 부산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를 들어 촘스키(Noam Chomsky)는 언어 기관(FLN)이 부산물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핑커(Steven Pinker)는 이 입장에 강하게 반대합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는 부산물인가"와 같은 식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위에서 설명한 엄밀한 학술적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며, "부산물"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의미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용어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뭐 고작 부산물 따위로 취급하다니" 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많이 봤었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진화심리학적 설명틀

진화심리학의 장점 중 하나는 "진화생물학"이라는 견고한 학문으로부터 훌륭한 이론틀이 제공된다는 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다양한 가설들은 다음과 같은 분석틀에 의해 제약되고 검증받을 수 있습니다:
  • 일반 이론 - 최상단에는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 이론이 놓여 있습니다. 포괄적응도란 어떤 개체의 행동이 자기 자신의 적응도(Fitness)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혈연관계에 있는)의 적응도에도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함께 고려하여 계산된 적응도를 말합니다. 개체는 포괄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최상단에 놓인 일반 이론입니다.
  • 중간 수준의 이론 - 일반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즉, 일반 이론의 틀 안에서) 부양 투자(Parental Investment)나 호혜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과 같은 몇 가지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양 투자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암컷이 수컷에 비해 더 짝짓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고,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을 통해 "어떠한 경우에 개체들 사이에서 이타성이 발현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 구체적 가설과 예측 - 일반 이론과 중간 수준의 이론이 제공하는 틀로부터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empirically testable) 다양한 구체적 가설과 예측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틀이 점점 강력해지고 퍼즐 조각들이 모일수록 진화심리학은 "그냥 그런 소설일 뿐(just so stories, evolutionary storytelling)"이라는 일부 비판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됩니다.

진화적 적응 환경, 적응의 시간 지연

진화적 적응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진화적 적응에는 그에 따른 "진화적 적응 환경(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이 존재합니다. 허파가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가/장소와 심각이 집중적으로 진화된 시기/장소가 다르므로, 허파의 EEA와 심장의 EEA는 서로 다릅니다. 심리 모듈의 적응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EEA들을 갖겠죠. 인간 고유의 심리적 특성을 만들어낸 적응 환경을 대체로 10만 년 전(홍적세) 아프리카로 보고 있습니다.

적응의 또 다른 특성에는 시간 지연(Evolutionary Time Lags)이 있는데, 진화적 적응이라는 것은 몇몇 특수한 상황(무기경쟁, 특정한 성선택 매커니즘 등과 같이 일종의 feedback loop가 만들어지는 경우)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으로 수십~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나는 지질학적 스케일의 사건이기 때문에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곧바로 해당 환경에 대한 적응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십만 년 동안(특히 최근 만년 이내에) 인간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해왔고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현대 사회에 최적화된 상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단 것(초콜렛 등)에 강력하게 끌리는 본능은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는 뱀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배우지만 총기나 전기에 대한 두려움은 쉽게 학습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

이 부분은 사견입니다.

(짧은 이 글에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저는 진화심리학이 설명가능성, 설명의 경제성, 내적 일관성, 예측가능성, 반증가능성, 퍼즐풀이의 틀 제공 등 다양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가장 과학적인 심리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발달/정서/학습/아동/신경/교육/공학/언어/이상 심리 등 어떠한 심리학 분야가 되었건 진화심리학적 설명틀을 밑바탕에 깔고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굉장이 많은 표현이라 약간 부연을 하겠습니다.

우선, "가장 과학적"이라는 말은 "완성된"이라는 뜻이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과학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완성되고 변치 않는 이론은 보통 과학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둘째, "진화심리학이 매우 훌륭하다"라는 주장은 "진화심리학만으로 인간의 모든 심리/행동을 설명해야 한다/설명할 수 있다"는 (크게 잘못된) 주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학자들마다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의 범위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진화심리학은 "시대와 문화권에 상관 없이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리/행동 상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하기에 진화심리학의 설명틀은 굉장이 성글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온갖 사이비잡탕 이론이 난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심리학들 - 특히 프로이트 등 - 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탄탄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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