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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0 25년짜리 일기 (22)

25년짜리 일기

프로그래밍을 시작한지 25년, IT 업계에서 밥먹은지 15년이 되었습니다(아따 세월 자알간다). 몇 년 전부터 "앞으로 뭐해먹고 살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IT 업계 타령, 미래가 있네 없네 이런 소리 아니고요, 좀 다른 얘기입니다). 고민하던 참에 일단 그냥 (되돌아보며 정리도 할 겸) 25년짜리 일기나 하나 써 봅니다.

기억의 왜곡이 심할 수 있으나 대충 어릴때부터 회상해보면 이런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습니다(기간이 겹치는건 실제 겹치기 때문이거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 나면 계속 추가/갱신하겠습니다).

1986년?

사촌형 집에 제믹스(MSX 게임기)가 있었음. 사촌횽, 횽, 나 이렇게 셋이 번갈아가며 게임을 했는데 요술나무 하다가 맞을 뻔 한 적 있음. 왜냐하면 위로 올라가질 못해서 죽지도 못하고 그래서 끝나지도 않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요술나무는 매우 교훈적인 게임임. 타이밍 맞춰 줄을 잘 갈아타면서 위로 계속 올라가야 추장딸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 ㅋㅋ)

1987~1991년

횽아 친구 어머니께서 컴터 학원을 차리셨음. 횽아가 학원가서 컴터를 배워오면 나에게 갈쳐주곤 하였는데, 당시에 횽아가 내줬던(그리고 제가 공책에 풀었던) 문제 중 하나가 별표로 삼각형 그리기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풀었죠(MSX-BASIC):

10 PRINT "*"
20 PRINT "**"
30 PRINT "***"
40 END

당연히 이렇게 풀면 안되는 문제였는데 아무튼 칭찬 받았고 그때부터 내가 프로그래밍에 소질이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 같아요. 횽아 ㄱㅅ (나라면 졸라 때렸을텐데)

공책에 코딩하고, 모눈종이에 비트맵 그리고, 주중엔 가끔 친구집 가서(경민아,종우야 고맙다, 정경이는 이때 안친했으니 무효ㅋ), 주말엔 가끔 영풍문고에 가서, 가끔은 횽아 친구 어머님께서 운영하시던 컴퓨터학원(베데스 컴터 학원 원장님 안뇽하세요ㅋㅋ)에 가서 실습.

한편, 횽아 친구 어머니의 컴퓨터 학원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하믄... 설립한지 아마 1년인가 밖에 지나지 않아서 정통부가 "대세는 16비트"라고 하시는 바람에 구입한지 얼마 안되는 8비트 컴퓨터들이 낙동갈 오리알 신세로. 아무튼 망하지는 않았고 16비트 컴터로 싹 바꿔서 적어도 저 중학교 다닐적 까지는 운영되고 있었더랬습니다.

1992~1996년

학교 공부는 하기 싫고 컴퓨터 공부는 재미있고 하지 말라는거 하고 싶은 중2병스러움도 있었고, 친구들이 못알아보는 두꺼운 컴퓨터책(MASM 5.0, MS-DOS/BIOS ISR, RS232/UART16550 등등) 보는게 간지도 나고, PC통신에서 잘난척 하는게 재밌고 등등. 프로그래밍, 게임, PC통신 하면서 보냈습니다. 중3~고1 쯤 나모모에서 둠2 2~3위, 듀크누켐 3D 1~2위를 달성(동시에 성북전화국 직원이 날 알아보기 시작함. 대단한 호갱님). 브레제남 알고리즘, 퀵소트, 바이너리 서치 등을 혼자 생각해낸건 자랑, 알고리즘+자료구조 공부 안한건 안자랑.

이 시기에 기초적인 구조적+모듈라 프로그래밍을 익혔습니다. 함수와 변수에 나름의 prefix를 붙이고, 언제인가부터 GOTO를 쓰지 않게 되었는데 특히 의미 있었던건 모듈 단위로 관련된 함수와 전역변수에 동일한 prefix를 붙인 것. 지금 생각했을 때 어설펐던건 의존성 관리. 순환 참조와 불필요하게 강한 결합이 많았는데 이게 문제라는 사실조차 인식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함. 처음 이 문제를 인식한건 엉뚱하게도 Quick BASIC의 베이직의 메모리 제약 때문에 링킹을 못하게 되면서. 당시 생각한 해결챌은 의존성을 끊어 라이브러리를 여러 조각으로 나눈다...가 아니라, 확장메모리(XMS/EMS)를 활용한다+메모리스와핑. 이 경험이 나중에 R.Martin의 저서(Agile Software Development PPP)를 읽을 때 제법 도움이 되었음. 설계 문제를 컴파일+링킹 효율성과 엮어서 서술하던 부분과 관련.

집에 꿈의 해석, 종의 기원, 이기적 유전자가 있었음. 횽아가 재미나게 이야기해줘서 흥미가 동하였음. 꿈의 해석은 안 읽었고, 종의 기원은 너무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고, 이기적 유전자는 읽긴 읽었는데 서문 빼고 이해가 안갔음. 아무튼 이번에도 횽아 ㄱㅅ. 에 또 비슷한 시기에 "마음에 대한 계산표상적 접근(당시에 이 말이 하도 이상해서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Computational-Representational Theory of Mind일 것)"에 대하여 횽아가 이야기해줌. 특히 D. 호프스테터의 "아인슈타인 두뇌와의 대화"를 쉽게 이야기해주었는데 대단한 충격이었음. 또 횽아 ㄱㅅ.

결국 내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계산+진화)는 모두 횽아가 초딩+중딩 시기에 걸쳐 인셉션. 횽아가 샀을 것으로 추정되는 "종의 기원"은 제가 집에 삥땅 보관 중. ISBN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1994~1997년

계속 도스에 빠져서 뭔 게임제작라이브러리 만드다고(TASM + Power BASIC, 참고로 PB로 말할 것 같으면 베이직 주제에 무려 HUGE 메모리 모델과 인라인 어셈블리와 포인터를 지원하였던 괴물) 뻘짓하다가 윈도 트랜드 놓침. PC통신에서 랄프브라운 ISR 문서(정확한 이름 기억 안남) 건지고 하악거림. MINIX라는 단어를 접했으나 쌩깜(아 망했어요 왜 그랬을까). x86 어셈블리를 공부했으나 멍청하게도 보호모드 등 80286 이상 CPU와 관련된 명령어 및 개념들 몽땅 쌩깜(아 이것도 망했어요).

다행히(?) HDD가 날아가는 바람에 훌훌털고 자바 공부 시작. 당시만 해도 영어 문서를 보려면 사전을 옆에 두어야 간신히 독해가 가능하던 시절이라 PC 통신을 통해 구한 잠탱이삼인방(?)의 자바 강좌를 인쇄해서 읽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잠탱이삼인방이 뉘신지 모르겠으나 매우 감사.

중3~고1 사이에 어머니의 강권으로 성경을 읽다가 감동받고 눈물을 찔끔 흘림. 이 때 어쩌면 개신교도로 전향했을 수 있겠으나 다행히(...) 전향 실패.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음.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불가지론자. 한편,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각종 음모론(특히 외계인 관련 ㅋㅋ)에도 잘 빠지곤 하였음. 뇌가 말랑말랑했던 모양. 이 때 공부를 열심히 할걸. 망ㅋ

1997~1999년

저러고 있었으니 당연히 성적이 안좋아서 대학 진학 실패. 고딩 졸업식 직후에(아마 2월달) 하이텔 자바동 세미나에 갔다가 영세 웹호스팅업체 사장님의 눈에 들어서 월20만원(이거 지금 생각해보니 불법 아닌가요) 받으며 첫 직장생활 시작. 청소, 손님접대, 서버 관리, 웹디자인(헐 내가 디자인이라니...), 프로그래밍, 출장서비스, 영업 등을 야매로 하였음. 이 때의 소감은? "어라? 프로그래밍 하니까 돈도 주잖아!? 아싸"

이 시기 쯤 Java in a Nutshell을 보고 "이제 자바를 좀 알겠다" 싶었음. 맥시멈 자바라는 책도 지금 돌이켜보면 훌륭한 내용이었는데 당시에 "팩토리? 이게 뭐야?"이러면서 쌩깐 기억이.

아, 그리고 "내가 3년 전에 WWW이랑 비슷한걸 생각했었어!"라고 이뭐병스러운 주장을 하고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평가해보자면... 비슷하기는 개뿔 ㅋㅋㅋ

1999~2002년

OMG(Oh My God 아니고 Object Management Group)의 마수에 빠져 은하계간 분산 네트워크를 실현할 CORBA 세상이 오고 설계도만 그리면 알아서 시스템이 완성되는 신천지가 곧 올거라 믿으며 UML, RUP(덤으로 딱히 OMG는 아니지만 GoF와 POSA와 Refactoring 등 당시 하이텔 모 소모임을 몰래 스토킹하면서, "내가 저놈을 앞질러야지", "이번엔 저놈을 앞질러야지" 이딴 생각하면서 얍삽하게 따로 공부) 삼매경에 빠짐. 코딩 열심히 하고 (꼴에) 회사 사람들에게 기술 전파하고 그러고 다님. (Java/CORBA 은하계간 이기종 분산 컴퓨텅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일단 넷스케이프가 망하면서 망ㅋ 넷스케이프가 안망했더라도 이 길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한편, 그놈이건 저놈이건을 앞질렀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하느냐? 걍 제가 합니다. 딱 봐서 이겼다 싶으면 이긴거임. 일종의 정신승리법.

쇼팽이라는 필명을 쓰던 K모대학 출신 은둔고수가 운영하는 사이트 발견. 주로 뇌과학, 전산학(중 특히 계산이론), 진화론, 인지과학, 정서이론, 심리철학 등에 대한 글을 쓰셨으며, 기존의 연구에만 의존하기 보다는(물론 기존 연구도 줄기차게 읽으셨겠으나) 독창적이고 논리적으로 치밀한 사유, 컴퓨터를 이용한 실험 등에 기반하여 본인의 주장을 전개하는 스타일이었음. 이 글들을 읽으며 많은 계몽이 되었음. 특히 "자아 이야기" 연재는 "The Mind's I(이런, 이게 바로 나야)"에 비견될만한 명작이라 생각함. 개인적으로는 딱 한 번 밖에 뵙지 못하여 아쉽고 감사. 이 분께 자극받아서 PNS(유명한 신경과학교과서)를 비롯한 각종 추천서적 읽기 시작(PNS는 전체의 1/3도 못 읽었음. 워낙 두꺼워요).

2001~2003년

패턴병, 설계병, 방법론병에 빠져서 설계 졸라 복잡하게 하고, 어려운말 최대한 섞어 쓰고, 맨날 다이어그램만 그리며 주변 사람들의 경력과 프로젝트를 위험에 빠트림(너그러이 봐주시고 인내해주신 소장님, 온갖 민폐와 분탕질을 참아준 횽아들 감사+죄송) 이러다가 XP와 애자일방법론의 존재를 알게 됨. 패턴 공부하다가 가끔 접하게 되는 허접한 사이트가 오리지널 위키였다는걸 뒤늦게 깨달음. 플래시로 제법 쓸만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게 됨(진이횽 ㄱㅅ). 동시에 UI 디자인에 관심 가지기 시작.

단위테스트와 간혹 TDD 시작. Mock Object 및 Test Isolation 등 온갖 테스트 패턴을 스스로 (재)발견한건 자랑, 너무 많이 쓴 건 안자랑.

이 때 쯤, Windows NT 4.0 쯤이었나요? COM+는 아직 없고 DCOM, DTS 등이 있던 시절. Commerce Server인지 Site Server인지 하는 제품의 서버측 ASP 스크립트 일부가 VBScript 대신 JScript로 작성되었음을 발견. 한편 Form Validation 관련 코드의 경우 서버와 클라이언트(브라우저)에서 동일한 코드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 "오? 신기하다. 조으다"하고 생각함. 나름 MS는 어떤 면에선 앞서가고 있었던 것.

2002~2003년

김창준님 및 그 주변의 능력자들 알현. "내가 저놈(죄송)을 앞질러야지" 전략 안통함. "간격이 벌어지지라도 않게 해야지" 전략도 안통함. "어떻게든 옆에 붙어서 떡고물이라도 잘 주어먹자" 전략 채택. 자신감 떨어지고(중립) 자괴감 커지고(불행), 자만심 낮아지고(매우다행), 실력과 교양과 인성을 (그나마) 쌓기 시작. 컴퓨터 아닌 분야에 대한 독서 시작. 처음 손에 잡은 책은 아마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상민 ㄱㅅ. 덕분에 아직도 한 손에 항상 책이나 킨들을 들고 다니고 있음). 한편, 변비와 독서량이 양성 피드백 루프를 이루며 질주 과정을 형성하기 시작. 이 당시 창준횽아는 "너는 어딜가든 변을 남기는구나"라고 나즈막히 말씀하심.

대략 이때쯤부터 각종 스터디그룹 찾아다니기 시작. 당시에 C대학 학생분들 위주로 "이기적 유전자"를 함께 읽던 독서모임이 있었는데 여기에 참여하면서 진화심리학 공부 시작(석님, ㅇㅊ님, 세 혜선님, TM님 등 하이염).

앗 그러고보니 창준횽아 그룹도 상당수가 C대 출신. 나중에 학력위조를 하게 되면 C대로 해야겠.

아, 곁다리로... RUP에 대한 평가는 "이 산이 아닌갑다". UML에 대한 평가는 "표기법은 별로 안중요하고 UML이라는 언어가 담아내고자 했던 개념들은 졸라 중요하다. 이러한 개념을 배우고 전달하고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참 좋겠다".

2004~2005년

자바스크립트 (제대로) 시작. 웹개발시 자바스크립트를 좀 적극적으로 써보자고 회사에서 주장하다가 까임. 원래 행동으로 안보여주고 말만하면 까이는게 당연한건데 그걸 여태 몰랐음(지금도 행동-대-이빨-비율이 낮기는 마찬가지). 아무튼, 구글님이 GMail과 Google Maps를 보여주시고, JJG가 Ajax라고 이름 붙여주자 급 뜨기 시작. 아싸.

모 사이트의 특정 기능을 Ajax 버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나 노하우 부족 등 (주로 나의) 문제로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뒷수습 잘 해준 지섭 및 해당 팀 당시 개발자 분들 감사+지송) 개인적으로는 많은 경험을 하게 됨.

UX, HCI, IxD, UI 등 관심 급부상. 이 때 쯤 언어학(일규님,창규님,기정님 하이염), 미학/미학사(현주님,ㅂㅇㅈ쌤 하이요) 등 온갖 스터디 모임 참여. 이 시기 언젠가 쯤 AOP 공부도 하게 된 것으로 기억. 인터넷에서 미래를 이끌 10대 기술 뭐시기라고 하길래. AOP가 미래를 이끌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진행중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용한 사고의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

2006~2009년

관심사가 이렇다보니 자연스럽게 개발+기획 걸치게 됨. 역시나 온갖 어설픈 분탕질로 온갖 프로젝트를 망치고,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님들 죄송), 이런저런 경험을 쌓게 됨(나쁜놈ㅋ). 한편, 기획 일을 하다보니 개발에 비해 피드백이 드물고/적고/정량적이지 않고, 체계적 이론이 부족하고, 신화와 영웅과 용이 난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됨. 정량화/체계화에 관심 갖게 됨.

2010년~현재

데이터분석, 모델링 등에 기반한 과학적(?) 기획을 해보겠답시고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주변인들에게 피해막심. 요즘은 예전에 뇌과학 공부한다고 폼잡고 다닐때 시지각에 대해 조금 공부한 것, IxD, UI 등 공부하면서 인터랙션 디자인 조금 공부한 것, 데이터분석 한답시고 이것저것 주워들을 것 등을 가지고 정보시각화 쪽에 관심을 두고 있으니 조만간 관련하여 관련 부서와 조직에 큰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됨(님들 죄송 ㅎㅎㅎ)

자, 이제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까요? 이 고민에 대한 잡담은 다음에 정리를...

음, 써놓고 보니 최근의 사건을 덜 상세히 기록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더 쪽팔리고(기억이 생생해서), 이런저런 사정도 있고 해서 솔직해지기 힘든 것 같아요. 세월이 지나면 더 진솔하게 쓸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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