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선택론' 검색 결과 2건

  1. 2008.11.17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 개념에 대해 (5)
  2. 2008.05.09 [독후감] 다윈의 동화 (2)
진화론을 이야기하시는 유시민 전장관님이라는 글을 썼었는데요, 이 글을 읽고 lawfully님이 재미난 글을 써주셨습니다.

제가 읽기에는 두 가지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는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의 개념이 항진명제라는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전자 선택론(gene selection)이 아닌 개체 선택론(individual selection) 혹은 그룹 선택론(group selection) 관점은 "애매한 애국주의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두가지를 말씀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윈주의적 애국주의는 (진화가 덜된) 19세기 다윈주의의 산물이라는 거죠.

사실 결론 부분에 대해서는 별 할 얘기가 없습니다. 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유시민 전 장관님이 말씀하신 "다윈주의적 애국주의"에 정작 다윈주의적 요소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행동주의적 애국주의"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요.

결론 보다는 그 중간에 나온 두 가지 이야기에 더 흥미가 동한다는 얘기입니다 ^^


1. 다윈이 말한 적자생존은 항진명제인가

별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일단 다윈은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종의 기원 초판에는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대신 이런 식의 설명이 있죠:
... if variations useful to any organic being do occur, assuredly individuals thus characterised will have the best chance of being preserved in the struggle for life; and from the strong principle of inheritance they will tend to produce offspring similarly characterised. --Chapter 4 - Natural Selection

명확한 얘기이고, 순환논증도 아닙니다.

한편, (다윈이 말을 했건 안했건) 적자생존이라는 표현 자체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걸까요? 이것도 뭐 해석하기 나름이죠 ^^ 적자(fittest)란 단순히 살아남은 개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개체가 가진 특정 형질들로 인하여 살아서 번식할 가능성이 높은 개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중요한데, "번식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질문에 대해서 "그 형질이 유전된다고"라고 대답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석하면 순환논증이 아니게 됩니다. 이 해석은 현대에 와서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 아니라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당시에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개념입니다(위 초판본 인용문 참고).

다윈이 주장한 초기의 진화론은 현대에 와서 많은 부분 수정되었으나(좋은 일이죠), 적어도 이런 기본적인 개념에 있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죠. 따라서 "덜 진화한 19세기 진화론"에 순환논증이 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2. 개체선택론이나 그룹선택론으로부터 "애국주의의 근거"를 이끌어낼 수 있나

선택의 단위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사실에 대한 명제로부터 당위가 자동으로 유도된다고 보는 견해는 항상 오류입니다. 개체선택론이나 그룹선택론적 관점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관점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로부터 애국주의적 근거를 이끌어내는 것은 오류라는 말입니다.

즉, 19세기 진화론(개체선택 혹은 그룹선택론적 관점)이건 20세기 진화론(유전자선택론적 관점)이건 간에 나치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추가: "애초에 다윈이 한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글을 쓰는 이유는 뭐 몇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창조론자들이 거들먹거릴 여지 한 가지를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짧게 말하자면 "다윈은 틀렸다. 그러니 현대 진화론도 틀렸다"는 식의 주장(이 주장 자체도 논리적 오류 - genetic fallacy - 입니다만 제법 잘 먹히죠)을 펼치는데에 악용되는 사례를 많이 봐 와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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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동화"라는 책이 나왔길래 읽어봤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대략... "다윈의 진화론은 동화와 같이 허무맹랑한 내용이다"라는 것이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윈의 진화론을 인간에게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 다윈의 진화론
  • 신다윈주의 종합설
  • 진화심리학
등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상당히 어설픈데요, 인용을 초큼 해보면 이런 식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가 죽기 직전 많은 재산이 있었고, 그래서 재능이 뛰어난 젊은 작곡가에게 해마다 장학금을 제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가정해보자. (...omitted...) 오늘날 신다윈주의 생물학자들은 분명 이런 행동들도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자기복제적인' 경향이라는 말을 내세운다. 즉 바흐와 뉴턴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그것이 그들 입장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숫자를 증가시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p233~234

자기복제자(유전자) 입장에서야 자신을 담고 있는 운반자(바흐)를 닮은 운반자(바흐를 닮은 다른 사람)의 숫자를 증가시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유전자 선택론을 완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포괄적응도(Inclusive Fitness) 개념에 대해서는 뭐라 했냐하면:
포괄적응도 이론이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부모의 유전자 절반을 자식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의 절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식만이 아니다. 모든 여성은 수정을 하던 하지 않던 자신이 생산해내는 난자와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남성은 자신이 생산해내는 정자와 유전자 절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포괄적응도 이론은 모든 여성이 자식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난자를 사랑해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모든 남성은 자신의 정자를 사랑한다고 단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p284

헌신적인 사랑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유전자를 퍼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자식에 대한 투자(Parental Investment)는 자식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고 따라서 번식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번식은 결국 유전자를 퍼트리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투자는 (유전자 입장에서)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난자나 정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유전자가 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웃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죠. 이 또한 심각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주장입니다.

음. 저는 책 살 때 돈을 안 아끼는 편인데, 가끔은 아까울 때가 있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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