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 늘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는 팔자: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고도의 통신기술이나 교통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마다 역참(驛站)을 두고 그곳에서 말을 갈아 타며 급한 볼 일을 보러 다니곤 했다. 이 때 역참에 갖추어 둔 말을 '역마(驛馬)'라고 하는데 이 역마는 당연히 많은 곳을 다니게 마련이다. 그리고 '살(煞)'은 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는 독한 기운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살맞았다'와 같이 쓰인다. 따라서 '역마살'이라고 하며 천성적으로 역마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팔자라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저친구 역마살이 끼었군"하는 식으로 말한다. 같은 뜻을 가진 역마직성(驛馬直星)이라는 말도 있다.

http://kin.naver.com/openkr/entry.php?docid=22295

저는 지적 역마살이 끼었습니다.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하지 못하고 이분야 저분야를 떠돌아 다닌다는 말이죠.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1. 회사에서 직무발명제도를 통해 특허를 신청하려다가 보니 특허권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2. 궁금증을 해소해보려고 잠깐 웹서핑질을 하다가 로렌스 레식 교수의 "코드 -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이라는 책을 발견합니다. 이 책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제하는 것이 옳은가? 가능한가? 기존의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특허"랑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모든 법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법철학"과 관련이 있으므로 어찌됐건 알아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일단 구매. 하지만 사놓고 1/3 정도 읽다가 덮어두었습니다.

3. 얼마 후 (또 회사에서) 난생 처음 오픈소스 프로젝트(Xquared)를 시작하였는데, 저작권을 LGPL로 정했습니다. 자연스럽게 LGPL 문서를 읽다보니 저작권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다시 궁금증을 해소해보려고 서핑질을 하다가 몇 달 전에 샀던 책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꺼내들고 읽기 시작. 이 책을 읽으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법이 어떠하다"라는 내용을 뛰어넘어서 "법이 어떠해야 한다" 혹은 "이러한 법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생물학"과 "인공생명"의 관계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일단 이 생각은 더 깊게 안하고 넘어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ㅎㅎ

4. 이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시민전쟁", "수정 헌법" 같은 얘기들이 나왔는데, 제가 또 이런걸 전혀 모른단 말이죠. (시민전쟁이 남북전쟁이랑 같은 것이라는걸 어제 알았어요 ㅋ 부끄). 에... 법을 알려면 역사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또 역사를 알려면 지리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역사와 지리에 대한 생각은 예전부터 갖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한번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도가 많이 나온 역사책을 사러 서점에 갔죠. 그런데, 역사라고 해도 종류가 많으니 뭔가 좀 한정시킬 필요가 있었어요. 일단은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사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슬슬 미국사, 세계사로 넓혀 가는거죠. 하여간 그래서 지도가 많이 나와있는 한국사 책을 찾아보았는데 "지도로 보는 한국사"라는 책이 괜찮았어요. "문화관광부 추천도서"이더군요.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라는거 꽤 믿을만하다고 생각해요. 몇 권 읽어봤는데 다 괜찮았습니다)

5. 책들 사들고 나오려는 찰나에 갑자기 든 생각. 이 모든 것은 법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법에 대한 개론서 같은걸 보고 싶었는데 마침 또 "법철학"이라는 제목의 (내용도 괜찮아보이는) 책을 발견. 좀 두껍지만 일단 구매.

그나마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런 식으로 오만가지 분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주워들은 것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종종 쓰여왔다는 점.

* 지금 고민중인 것: 법철학을 먼저 읽을 것인가, 한국사를 먼저 읽을 것인가.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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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간략하게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Is There Historical Evidence for the Resurrection of Jesus)?"라는 주제의 토론에 대해 언급했었는데요, 어제 밤에 전문을 다 읽었습니다.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는 독실한 근본주의 신학자인 William Lane Craig와 처음에는 같은 근본주의자였지만 본문비평학에 오랜 동안 몸 담고 있다가 결국 불가지론자가 된 Bart D. Ehrman 사이의 공개 토론입니다.

사실 William Craig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고, Bart Ehrman은 "Misquoting Jesus (성경 왜곡의 역사)"의 저자로 유명한 권위자입니다:

Image:Misquoting Jesus.jpg


William Craig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 다음 네 가지 "사실"이 언급된다:

1. 예수는 십자가형으로 죽은 뒤 땅에 묻혔다.
2. 얼마 후 예수의 빈 무덤이 발견되었다.
3. 예수가 죽은 뒤에 그를 보았다는 무리들이 있었다.
4. 당대에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해석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이다.

Bart Ehrman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서의 기록들은 신학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자료이지만 역사학적 자료로 쓰이기에는 가치가 떨어진다. 역사적으로 타당한 설명이란 자연주의적인(naturallism - super-natural의 반대 의미로서의 자연주의) 설명인데, "부활"이라는 사건은 "기적"이고, 기적이란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라는 물음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자연적인 설명이 가능한가"라는 물음과 같다.

즉, "기적 자체가 가능한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치고, 과연 그것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과학적/합리적/자연적으로 설명이 되는 현상은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설명이 안되기 때문에 기적인 것이죠.

사실 제 생각엔 여기까지가 토론에서 오간 내용의 전부이고, 여기에서 토론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격식을 갖추고, 온갖 논리와 자료, 다양한 수사법을 동원해서 논쟁하고 있지만 요약해놓고 보면 동네 아이들 말 싸움이나 그 수준이 비슷합니다.

그래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종종 있었는데,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성경 무오류설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W.C가 제시한 "사실"들에 대하여, B.E은 "그러한 사실들이 언급된 신약의 여러 복음서들에 다양한 오류, 의도적 변개 및 실수로 인한 변개 등이 있고, 각 복음서의 주장들이 서로 약간씩 다르다는 점" 등을 지적합니다.

그러자 W.C는 "조금 틀린 부분이 있다고 해서 모두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부차적인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중요한 부분들은 모든 복음서에서 일관성 있게 언급된다는 점" 그리고 "모든 텍스트의 가치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경우 더 오래된 믿을만한 텍스트를 우선적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을 언급했습니다.

B.E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W.C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날립니다:

"그렇다면, 성경 어딘가에 사소한 문제라도 있다는 것인가? 부차적인 문제라도 좋으니 정확히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가?"

W.C는 여러 차례 반복되는 이 질문에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성경에 오류가 없다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

Bart Ehrman이라는 사람에게 흥미가 생겨 뒷조사를 하다보니 이런 글까지 읽게 되었네요. 조만간 "성경 왜곡의 역사"에서 말하고 있는 성경의 문제들, 특히 신약의 문제들에 대해 요약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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