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정론자(혹은 기계론자)입니다.

그냥 이렇게만 얘기하면 "19 세기도 아닌데 왠 기계론?"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제 생각을 한번 글로 정리해봤어요. 지적으로 충실한 결정론자(도킨스의 표현인 "지적으로 충실한 무신론자"에서 따왔습니다)가 되려면 "양자역학을 근거로 한 반론"과 "복잡계를 근거로 한 반론"을 방어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엄한 내용이 있으면 사소한 부분이라도 지적해주세요. 감사합니다.)

1. 양자역학을 근거로 한 반론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현상의 일부는 관측된 결과를 규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세상은 규칙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양자역학을 근거로 한 반론입니다.

이 반론을 방어하기 위해 John Searle의 중국인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 형식을 따와서 제 마음대로 "수학자 방 논증"이라는 것을 만들어봤어요.

Version 1:
  1. 방 안에 수학자가 있다. 수학자는 방 밖을 볼 수 없다.
  2. 수학자가 방문을 두드리면 문틈을 통해 숫자가 적힌 종이가 한 장 씩 제시된다.
  3. 수학자는 방 밖을 보지 않고서 그 숫자들이 미리 정의된 계산(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는 것인지, 비결정론적으로(nondeterministic) 제시되는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가?

Version 2:
  1. 방 밖에 수학자 있다. 수학자는 방 안을 볼 수 없다.
  2. 수학자가 방문을 두드리면 문틈을 통해 숫자가 적힌 종이가 한 장 씩 제시된다.
  3. 수학자는 방 안을 보지 않고서 그 숫자들이 미리 정의된 계산(알고리즘)에 의해 생성되는 것인지, 비결정론적으로(nondeterministic) 제시되는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가?

주어진 시스템을 외부에서 아무리 오래 관찰해도 그 시스템을 환원적으로 분석해보기 전에는 시스템이 결정론적으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열이 2,3,5,7,11,13,17,19 식으로 주어진다면 수학자는 이 시스템이 소수(prime number)를 하나씩 제시하고 있다는 강한 심증을 갖을 수는 있지만, 결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19 다음에 갑자기 22가 나올 지도 모르니까요.

반대로 시스템이 불규칙적이거나 통계적으로 임의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해도 이 시스템이비결정론적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기 P가 굉장히 긴 주기함수(periodic function)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Wolfram의 Rule 110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단순한 turing complete automaton)처럼 간단한 규칙을 따르지만 매우 복잡한 패턴을 보여주는 세포자동자(Cellular Automata)의 최신 상태를 자연수로 변환한 결과를 내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Rule 110 실행 사례)

주어진 시스템이 수학과 같은 추상적 시스템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라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Version 3
  1. 물리학자가 어떤 물리적 대상을 관찰하고 있다.
  2. 물리학자는 원하는 자신이 횟수만큼 그 대상을 관찰하여 물리량을 얻어낼 수 있다.
  3. 물리학자는 환원적으로 그 대상의 내부를 분석하지 않고서 물리량이 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가?

Version 3의 물리학자는 Version 1의 수학자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시스템(시공간) 안에 갖힌 상태에서 시스템의 물리량을 측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해당 시스템이 결정론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서 다루는 현상의 일부가 임의적으로 보이거나, 결정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보인다고 해서 시공간이 비결정론적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2. 복잡계를 근거로 한 반론

초기값의 아주 작은 차이가 결국에는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초기치 민감성 혹은 나비 효과) 몇몇 비선형 체계들(chaos)도 "결정론" 혹은 "기계론"에 반대하는 근거로 종종 언급됩니다.

하지만 chaos system은 비결정성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deterministic chaos). 결정론적 시스템도 초기치 민감성과 같이 chaotic한 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뻐서 유명한? ㅎㅎ) Lorenz attractor

3.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나?

양자역학이나 복잡계에 대해 어디선가 주워들은 21세기의 결정론자(접니다 --;)는 19세기 결정론자들 보다는 상당히 겸손해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망언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결정론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1) 측정의 한계로 인한 오차, 2) 초기치 민감성으로 인한 오차의 비약적 증폭, 3) 계산 상의 한계(윈도 XP - 호스트 - 에서 VMWare로 띄운 윈도 XP가 호스트 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 등 각종 제약으로 인하여 엄밀한 의미에서의 예측이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4. 결론

양자역학이나 복잡계 이론은 결정론을 반대하는 근거로 쓰일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정론이 사실이라는 결론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결론을 얻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강한) 불가지론자라서 결정론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믿습니다. 다만 결정론도 충분히 합리적인 철학적 입장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죠.

제가 결정론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고 하는 불필요한 요소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오캄의 면도날). 물론 설명 혹은 이해의 편의성을 위해 어떠한 현상을 "우연" 혹은 "임의적"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편의를 위한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일 뿐입니다. 이를테면 엄연한 물리학적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현상이지만 화학 수준에서는 편의를 위해 임의적이라고 가정할 수 있고, 화학 법칙에 의해 설명되는 현상을 생물학 수준에서는 편의를 위해 임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이런 이유로 저는 결정론자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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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2장 요약 1/2에 이어서...

2.5. 불가지론자, 불신자의 또 다른 이름? (The Poverty of Agnosticism)

그는 불가지론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먼저 불가지론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TAP 즉, 실질상의 일시적 불가지론(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 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명확한 답이 실제로 있지만 아직 거기에 도달할 증거가 부족할 때(또는 그 증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증거를 살펴볼 시간이 없을 때) 취하는, 합리적인 중도적 입장이다. TAP는 페름기 절멸을 대하는 합당한 입장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것을 알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중도 입장도 있다. 나는 그것을 PAP(Permanent Agnosticism In Principle: 원리상의 영구적 불가지론)라고 부르고자 한다. (...omitted...) PAP 형태의 불가지론은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모은다 해도 증거라는 개념 자체를 적용할 수 없기에 답을 결코 얻을 수 없는 질문들에 알맞다. 그런 질문은 증거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다른 평면 혹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당신과 내가 바라보는 빨강이 똑같은 빨강인가?" (Qualia, The Problem of Other Minds 등 --Alan Kang) 라는 질문 같은 철학적 재담이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p78~79
이러한 구분을 한 이유는 "신 가설"이 PAP가 아닌 TAP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언젠가는 답을 알 수 있는 문제이며, 엄연한 과학적 가설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신의 존재가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증명되거나 반증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가용 증거와 추론을 통해 50% 이상의 확률 추정값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킨스가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언가의 존재에 대해 확답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할 확률과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딱 반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 신존재에 대한 "확률 스팩트럼" 개념을 제시합니다:
확률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을 통해 신의 존재에 관한 인간의 판단들을 확실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 놓인 스펙트럼 상에 나열해보자. 그 스펙트럼은 연속적이지만, 다음의 7가지 이정표를 이용하여 구문할 수 있다.
  1. 강한 유신론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함. CarlJung의 말을 빌리면, "나는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다."
  2. 확률이 아주 높지만 100퍼센트는 아님. 사실상 유신론자. "나는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신을 굳게 믿으며 신이 있다는 가정 하에 산다."
  3. 50퍼센트 보다 높지만 아주 높지는 않음.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지만 유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신이 있다고 믿고 싶다."
  4. 정확히 50퍼센트. 철저하게 불편부당한 불가지론자. "신의 존재와 비존재는 확률상 똑같다."
  5. 50퍼센트보다 낮지만 그리 낮지는 않음. 기술적으로는 불가지론자지만 무신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음.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존재에 회의적인 쪽이다."
  6.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0은 아님. 사실상 무신론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신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고 신이 없다는 가정 하에 산다."
  7. 강한 무신론자. "융이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확신한 것만큼 나는 신이 없다는 것을 한다."
7 에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1과 대칭이 되도록 했다. 1에 속한 사람들은 많다. (...omitted...) 무신론자는 신앙을 지니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만으로는 명백히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해 전적인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7번 범주는 헌신적인 구성원들이 많은 반대편의 1번 범주에 비하면 텅 비어 있다. 나는 내 자신이 6번에 속한다고 보지만, 7번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정원 밑의 요정에 대해서만큼 신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자다.

--p81~82
저는 사실 이 부분을 읽고나서도 여전히 불가지론자로 남아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불가지론, 주관적 관념론, 과학적 방법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6. 과학 너머에 종교가 있다? (NOMA)

이 섹션은 S.J.Gould(미국의 고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의 논적이었으나 암으로 몇 해 전 사망)의 과학과 종교 사이의 NOMA(겹치지 않는 교도권 - nonoverlapping magisterium) 개념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NOMA에 의하면 과학은 과학이고 종교는 종교이고 서로 겹치는 일이 없으니 평화롭게 양립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 가설"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도킨스는 이런 개념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일단,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신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그가 느끼기엔 불편한 것이죠:
천문학자 마틴 리스는 저서 "우리 우주 서식지"의 첫 머리에서 궁극적인 질문이 될만한 것을 두 가지 제시하고 NOMA에 우호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도대체 왜 무엇인가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방정식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것들을 현실 우주로 구현시킨 것이 무엇일까? 그러나 그런 질문들은 과학 너머에 있다. 그것들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영역이다.

나는 그것들이 정말로 과학 너머에 있다면 마찬가지로 신학자들의 영역 너머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철학자들이 자신들을 신학자들과 한통속으로 묶는 리스에게 고마워할까?). 나는 더 나아가 신학자들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영역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지 알아보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omitted...)

아마 과학이 영구히 도달할 수 없는, 진정으로 심오하고 의미 있는 질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양자론은 불가해한 무언가의 문을 이미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어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과학이 대답할 수 없다면 종교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p90,91

또 한가지는, NOMA가 성립할만큼 과학을 침해하지 않는 종교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그 렇지만 굴드를 본받아서 극단의 불간섭주의에 이를 때까지 종교를 발라내보자. 기적을 부리지도 않고, 신과 우리 사이에 어느 방향으로든 개인적 의사소통도 없고, 물리법칙들을 손보는 일도 없고, 과학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도 없는 신이 있다고 말이다. 기껏해야 시간이 흐르면 별, 원소, 행성이 발달하고 생명이 진화할 수 있도록 우주의 초기 조건에 약간의 신성한 개입을 했을 뿐이다. --p97
게다가, 이런 신을 가성하는 "신 가설"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대안적 가설에 비해 개연성이 낮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2.7. 기도의 힘 (The Great Prayer Experiement)

이 섹션은 기도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에 대해 다룹니다. 물론 NOMA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죠. 연구 내용에 대해서는 "기도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실험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킨스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신자들이) 연구가 모두 (기도의 힘을 입증하지 못해서) 실패로 돌아가자 NOMA를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 다른 신학자들도 초자연적인 영향이란 과학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기도를 연구하는 것은 돈 낭비라고 주장하면서 NOMA를 근거로 한 회의주의자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템플턴 재단이 그 연구를 지원할 때 이미 인식했듯이, 이른바 중보 기도의 힘은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과학의 영역 내에 있다. 이중맹검법이 가능했지 않은가. 그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과학적 연구가 종교 문제와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근거로 그것을 내던질 종교 변증론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물론 없을 것이다. --p105

2.8.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 (The Neville Chamberlain School of Evolutionists)

이 섹션은 정치적인 이유로 NOMA를 지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의 창조론 압박(진화론 연구를 반대하고,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반대하는 등)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NOMA 개념에 의지하기도 합니다. 즉, 과학과 종교는 서로 무관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NOMA 테두리 안에 들어온 "양식 있는 종교인들"을 포용함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끌어내자는 것이죠.

하지만, NOMA 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하는 도킨스는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는 식으로  과학자, 신학자, 비근본주의 신자들을 묶어내는 일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특히 창조론자들이 절대로 NOMA 개념에 동조할리가 없는 상황에서(그들은 지적설계론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계속 과학의 영역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으니까요) NOMA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효과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9. 외계인과 신 (Little Green Men)

도킨스는 마지막으로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을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답은 앞서 말한 TAP(일시적 불가지론)에 속안 것이고 조금씩 답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며, 신 문제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하게 "확률론적 길을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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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옮겨왔습니다)

저는 불가지론자 입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에서 자신은 불가지론자가 아니라 무신론자임을 밝히면서,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자로 개종시키기 위해 한 장(chapter)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불가지론자로 남아 있는데 그 이유를 간략히 적어보았습니다.

도킨스는 불가지론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나는 먼저 불가지론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자 한다. TAP 즉, 실질상의 일시적 불가지론(Temporary Agnosticism in Practice) 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명확한 답이 실제로 있지만 아직 거기에 도달할 증거가 부족할 때(또는 그 증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증거를 살펴볼 시간이 없을 때) 취하는, 합리적인 중도적 입장이다. TAP는 페름기 절멸을 대하는 합당한 입장일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것을 알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취하는 중도 입장도 있다. 나는 그것을 PAP(Permanent Agnosticism in Principle: 원리상의 영구적 불가지론)라고 부르고자 한다. (...omitted...) PAP 형태의 불가지론은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모은다 해도 증거라는 개념 자체를 적용할 수 없기에 답을 결코 얻을 수 없는 질문들에 알맞다. 그런 질문은 증거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다른 평면 혹은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당신과 내가 바라보는 빨강이 똑같은 빨강인가?" (Qualia, The Problem of Other Minds 등 참고) 라는 질문 같은 철학적 재담이 그런 사례에 속할 것이다.

--p78~79

저는 불가지론자이자 주관적 관념론자(subjective idealist)이기도 한데,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에서 이러한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도킨스는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주어지면 이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지만, 사실 과학적 근거라는 것은 감각을 통해 인식된 주관적 관념일 뿐이고 그가 "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안다고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주관적 관념론자가 볼 때 과학적 방법론(scientific methods)이란 "진실 혹은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그저 "내적 일관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관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이렇게 수집된 관념의 체계(과학적 지식의 총체)는 (수학 만큼이나) 객관적 세상에 대한 대응물이 전혀 아닙니다. 따라서 과학이란 수학에 비해 내적 일관성이 크게 떨어지는 엉성한 관념 덩어리일 뿐입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부연하겠습니다. 내적 일관성을 기준으로 종교,과학,수학을 선분 위에 늘어 놓는다면 종교과 수학이 양 끝을 차지하고 과학은 수학 아주 가까이에 붙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은 종교(혹은 각종 포스트모던 찌끄러기 등)에 비해 한없이 일관성이 높은 관념 체계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 주관적 관념론자이고,
  • 따라서 과학이건 종교이건 그 무엇이건간에 우리가 진실로 "알 수 있는 것"이란 없다고 믿으며,
  • 따라서 신 존재 뿐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하여 불가지론자이며(강한 불가지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에 비해 과학이 한없이 유용한 관념 체계라고(내적 일관성의 측면에서)
생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족입니다)

문제는 주관적 관념론이 논리적으로(혹은 철학적으로) 아무리 타당하다고 해도 실상활에서는 도무지 써먹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It(solipsism) may be the most logical view to hold but it makes communication of ideas difficult. --Alan Turing,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주관적 관념론(혹은 유아론 - 이 둘은 서로 다르지만 문맥상 통하므로)을 실천하면서 살자면 마냥 아무 일도 안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굶어 죽어야 하겠지만 물론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즉, 실생활에 있어서는 적어도 프라임론(응?)이 주관적 관념론 보다는 훨씬 유용합니다.

이를 다시 신 문제에 대입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저는 비록 불가지론자이지만 무신론자 행세를 할 것이며, 과학적 방법론을 종교처럼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러셀도 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군요:
I never know whether I should say "Agnostic" or whether I should say "Atheist". It is a very difficult question and I daresay that some of you have been troubled by it. As a philosopher, if I were speaking to a purely philosophic audience I should say that I ought to describe myself as an Agnostic, because I do not think that there is a conclusive argument by which one prove that there is not a God.

On the other hand, if I am to convey the right impression to the ordinary man in the street I think I ought to say that I am an Atheist, because when I say that I cannot prove that there is not a God, I ought to add equally that I cannot prove that there are not the Homeric gods.

--Am I An Atheist Or An Agno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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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신 가설(The God Hypothesis)

각 장이 시작하는 부분에 짧은 경구들이 들어 있는데, 2장의 경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시대의 종교는 다음 시대의 문학적 여흥거리다(The religion of one age is the literary entertainment of the next). --랠프 월도 에머슨

사실 이집트, 그리스 등 고대 국가의 종교는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리스 신화를 문학으로 배울 뿐 문자 그대로 오류가 하나도 없는 역사책 혹은 과학책으로 배우지는 않습니다. 반면 축자영감설 혹은 무오설을 따르는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에게 성경은 역사책이고 과학책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내놓은 성경 개역개정판을 놓고서도, 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또 설교를 하는 목사들은 "너무 자유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않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2장의 핵심 내용은 "신 가설"은 엄연한 과학적 가설이고, 확률론적 접근을 통해 "신 존재"의 개연성을 따져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신 가설"을 정의하고, 이 가설의 다양한 버전들(다신교, 일신교, 자연신교 등)을 살펴보고, 무신론도 아니고 유신론도 아닌 부류에 속하는 불가지론자를 무신론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를 합니다. 또 NOMA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과학과 종교의 관계, 외계인과 신의 존재에 대한 추론 등을 이야기 합니다.

2.1. 신은 착각?

도킨스는 "신 가설(The God Hypothesis)"을 정의하기에 앞서 자신이 말하는 "신"의 의미를 명확히 한정짓고 있습니다. 그 전에 기독교의 신인 야훼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시작하는데 상당히 과격합니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나온다. --p50

하지만 이 번역은 원문에 비해 약간 "덜 과격하게" 다듬어진 것으로,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심 많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괴물 지배욕 변태(control freak),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 혐오, 동성애 증오, 인종주의, 유아살해, 대량학살, 자식살해,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악의적인(malevolent) 난폭자. (The God of the Old Testament is arguably the most unpleasant character in all fiction: jealous and proud of it, a petty, unjust, unforgiving control freak, a vindictive bloodthirsty ethnic cleanser, a misogynistic, homophobic, racist, infanticidal, genocidal, filicidal, pestilential, megalomaniacal, sadomasochistic, capriciously malevolent bully.)

야훼 험담을 늘어놓은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신이 "이런 쉬운 표적"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가 공격하고자 하는 신은 조금 더 넓은 개념입니다:
우주와 우리를 포함하여 그 안의 모든 것을, 의도를 갖고 설계하고 창조한 초인적, 초자연적인 지성 --p51

이것이 도킨스가 생각하는 신 개념이고 야훼를 비롯하여 다양한 신이 이 범주에 포함되겠죠. 신 가설이란 "그러한 신 - 초자연적 인격신 - 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말합니다. 물론 도킨스가 신 가설을 정의하는 이유는 그 가설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가설을 거부하고 다음의 대안적 견해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죠:
무언가를 설계할 정도로 충분한 복잡성을 지닌 창조적 지성은 오직 확장되는 점진적 진화 과정의 최종 산물로 출현한 것이다. --p51

이 대안적 가설이 참이라면, 신 가설은 "망상(delusion)"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2. 다신교 (Polytheism), 2.3. 일신교 (Monotheism)

이 두 섹션에서는 여러 종교를 언급하고 또 비판하고 있는데 핵심 메시지는 "다신교의 신이건 일신교의 신이건 다 내 비판에 포함되는거니까 빠져나갈 생각 말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재미있었던 구절은 다신교와 일신교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지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들(힌두교)의 다신교는 사실 다신교가 아니라 위장된 일신교다. 힌두교에 신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창조자인 브라흐마, 수호자인 비슈누, ... 그 외 수백의 신들은 모두 한 신의 서로 다른 모습이나 화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런 궤변에 호의를 보여야 한다. 중세에 삼위일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그리고 아리우스파의 교리 같은 이단설을 억압하기 위해 피의 강은 말할 것도 없고 잉크의 강이 흘러넘치도록 한 게 그들이니까. --p54~55

2.4. 세속주의: 미국의 국부들과 종교 (Secularism: The Founding Fathers and the Religion of America)

현재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장 판을 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아직은 크지만 한국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특히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당선자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입니다. 벌써부터 이명박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던 목사를 주축으로 보수 기독교 정당(사랑실천당)을 만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이미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 바 있는 이 당선자는 "하나님 뜻에 맞게"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기도를 공공연히 하고 다니는 등 불길한 징조들이 보이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 도킨스는 근본주의 기독교가 판을 치고 있는 미국의 국부들은 사실 자연신교도(deists)였다고 주장합니다. 다음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인용입니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로 수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1796년 George Washington이 초안을 작성하고 1797년 John Adams가 서명한 트리폴리 조약에 언급되어 있었다:

미 합중국 정부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기독교에 토대를 두지 않고, 법이나 종교나 이슬람교에 대한 어떤 증오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앞서 말한 주들은 이슬람 국가에 대해 어떤 전쟁도, 적대 행위도 한 적이 없으므로, 종교적 견해에서 비롯되는 어떤 구실도 결코 두 나라의 화합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바이다.

이 인용문의 앞부분은 현재의 미국 정부를 들끓게 할 것이다. 하지만 에드 바크너는 당시에 정치인도, 대중도 아무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p64~65

아래는 토머스 제퍼슨의 불가지론적 발언:
비물질적인 존재들에 관해 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관해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영혼, 천사, 신이 비물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즉, 신도, 천사도, 영혼도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꿈과 허깨비로 이루어진, 끝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지 않는 다음에야 ... 달리 추론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전혀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을 붙들고 씨름하거나 고심하지 않으며, 실재하는 것들에 만족하며 충분히 몰입해 있다.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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