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n Dissanayake(김한영 번역)의 미학적 인간 –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를 읽었습니다.

미학적 인간


1. 전체적인 소감: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은 동물행동학(Ethology), 진화론(종합설), 생물학에 기반한 미학이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저자는 (본문 중 진화심리학, 사회생물학 서적을 여러 번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오류들을 범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형을 나열해보자면:

  • 자연주의적 오류
  • 개체를 적응 실행자(adaptation executer)가 아닌 적응도 극대화자(fitness maximizers)로 보는 오해
  • 진화적 부산물(evolutionary byproduct)의 학술적 의미에 대한 오해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이 1992년, 개정판이 1995년에 나온 점을 고려하더라도 심하게 오류가 많고 당시에 널리 알려진 진화론적 이론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입니다.


2. 인용들

본문을 이용해보면 대략 이런 식입니다.

이후의 장들에서 나는 동물행동학적 관점을 이용하여, 예술이란 행동은 보편적이고 본질적이라는 것, 예술은 모든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성향이라는 것, 대부분의 진화생물학자를 포함하여 그 주제를 설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가정해 온 것처럼 주변적인 부수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p47

...그들조차도 예술에 대한 자연주의적 견해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거나, 예술을 단지 다른 활동의 부산물로 이해한다. 그런 무책임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는 예술에 대한 현대 서양의 전반적이며 대표적인 태도이며, 이것이 예술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저해한다. –p84

저자의 오해와 달리, 예술에 대한 부산물 가설은 예술이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참고: Three products of evolution)

또 다른 부분을 살펴보면:

만일 어떤 것(이 경우, 예술)이 매우 즐겁고 강력하게 감정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우리가 그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그 감정 상태는 그것(가령 예술)이 어떤 면에서 분명 생물학적 생존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우리가 생존에 필수적인 일들을 하게끔 자연이 보장해 준 방식들 중 하나가 바로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p81

이 단락은 개체를 적응 실행자(adaptation executer)가 아닌 적응도 극대화자(fitness maximizers)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개체가 어떠한 자극으로부터 긍정적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그 자극이 항상 적응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행위가 진화된 환경(EEA – 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과 현재 환경 사이의 차이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개체의 행동은 비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약 복용은 극도의 쾌감을 안겨주지만 거의 모든 상황에서 적응적이지 못한 행동입니다.

다음은 음악의 적응적 이점에 대한 설명 중 일부입니다:

음악은 또한 가축 몰이나 여행처럼 지루한 일을 견딜 수 있게 해 준다 --p91

이는 인과의 방향이 뒤집어진 가짜 설명입니다. “음악이 우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설명은 인간이 음악을 즐기게 된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즉, 음악에 대한 진화론적 가설은 “왜 음악을 들으면 지루함을 견딜 수 있게 되는지”를 설명해야하는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예술이 “특별하게 하기”라는 속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먼저 나는 특별화가 처음 생겨난 이유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다른 동물들도 그런 이유로 꾸미기를 하는데, 특히 명금류들은 자신의 존재나 개성을 광고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노래에 공을 들인다. --p116

하지만 이 같은 견해는 성선택(sexual selection) 이론, 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현대의 진화심리학자들은 대체로 동물이나 사람이 “필요 이상의 공을 들이는 행위”를 자신의 잉여력을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신호를 표출하는 것으로 봅니다.

또한 저자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진화론적 설명들이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경우에 지금까지 진화론적 설명이 실패한 것은, 이론가들이 단지 예술을 희귀하고 엘리트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편협하고, 현대적이고 서양적인 패러다임 안에서만 이해했기 때문이다. 가령, 예술 같은 어떤 일을 소수의 사람들이 단지 그 자체를 위해 행한다면, 선택 가치를 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p189

글쎄요, 진화론적 설명이 실패했는지 성공했는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일단 그와 무관하게 위 문장엔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에 대해서만 선택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견해는 너무 협소하지 않냐는 것이죠. 같은 종 내에서 어떻게 오랜 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다양성(어떤 인간은 예술적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난 반면 또 다른 인간은 그렇지 못한 점 등)이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양립가능한) 진화론적 설명 틀이 존재합니다. (연애 The Mating Mind성격의 탄생 Personality – What makes you the way you are 등 참고)

책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전체 주제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술적 행위들은 모든 사회, 모든 계층에 존재한다. 예술 특유의 신성함과 자유보다 오늘날 더 절실히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인간의 보편적 선천성인 예술이 단지 예술계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사람의 삶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지원받고 장려될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지금까지의 길고 복잡한 본문은 여러 학문적 관점으로부터 간단한 결론, 즉 말하기, 일하기, 운동, 유희, 사회화, 학습, 사랑, 보살핌 같은 인간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와 관심사들처럼 '예술도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장려하고, 개발해야 할 인간의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행동'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p400~401

좋은 말이기는 한데 논리적으로는 오류(자연주의적 오류 naturalistic fallacy)죠:

“예술적 행위란 진화된 적응으로 인간 보편적 성향이다. 따라서 좋은 것이다”

라는 결론인데 이 논리대로라면 아래와 같은 명제도 성립합니다:

“강간이 인간 남성의 진화적 적응이라면, 강간은 좋은 것이니 널리 장려해야 한다.”

난감한 얘기죠. 어떤 행위가 진화적 적응이건 부산물이건 뭐건 간에 그 사실만 가지고 해당 행위에 대한 당위 명제(좋다, 나쁘다)를 자동적으로 이끌어낼 수는 없습니다.


3. 결론

예술이나 미학에 대해 진화론/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책을 찾으신다면 이 책 보다는 다음 책들을 추천합니다:

  • 쾌감 본능 (The Pleasure Instinct)
  • 연애 (The Mating Mind)
  •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Music, The Brain, and Ecstasy - How Music Captures Our Imagination)
  • 빈 서판 (The Blank Slat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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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디자인에서 도널드 노먼은 "예쁜 물건이 쓰기도 좋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인 Alice Isen과 동료들은 사람들이 행복한 상태로 있을 때 사고의 폭이 넓어지며 창조적인 사고가 촉진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omitted...) 사람들은 걱정으로 인해 불안해할 때 그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에만 집중하면서 사고의 폭을 좁히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는 좋은 전략이지만, 문제 해결에서 새로운 창의적 접근 방법을 생각해 내는 데는 좋은 전략이라 할 수 없다. Alice Isen의 결론을 보면, 사람들은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일 때 사고의 진행이 넓어지고 창의적으로 되며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이 연구를 비롯한 관련된 연구들의 결과에서 제품 디자인의 미학적 역할이 제기된다. 예쁜 물건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그 결과 더욱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제품이 사용하기 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쉽도록 하기 때문이다. --p33~34, The Emotional Design
맞는 말입니다(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다보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미 관념(kalon)이 현대인들의 미 관념보다 더 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예쁜 물건"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도널드 노먼은 "예쁜 물건"에 대한 인지가 "자동적이며 태어날 때부터 미리 프로그래밍된 본능적 단계(visceral level)"에서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감정, 본능)에 대한 설명으로는 진화심리학, 미적 선호에 대한 이야기로 특화하자면 진화미학(Evolutionary Aesthetics)이 특히나 적절한 틀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화미학에서는 인류 보편적인 미적 선호의 일부가 적응 문제(생존 혹은 번식)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오랜 자연선택(과 성선택) 과정을 통해 생존 및 번식에 도움이 될만한 환경이나 생물 등에 대한 선호가 생겼고, 이것이 인류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미적 선호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환경/생물과 유사한 외형을 가지는 인공물에 대해서도 여전히 미적 선호를 보일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화미학의 관점은 "예쁜 물건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그 결과 더욱 창조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라는 연구 결과와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이나 독거미 등이 있을지 모르는 "생존에 적절치 못한 환경"에 놓인 인간은 이러한 위험 요소들에 대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경계하게 됩니다. 반면 생존에 적절한 환경에서는 이러한 의식적/무의식적 노력의 분산이 필요 없어집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단어로 치자면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에 좋은 모드인 것이죠.

진화미학의 관점으로 한정 지어보면 "예쁜 물건"을 만드는 한가지 방법은 "자연을 닮은 인공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연을 닮은 인공물"이라는 접근은 이미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등이 그렇죠.

하지만 단순히 "자연을 닮은 인공물"이라는 수준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제약을 가할 수 있습니다(제약이란 때때로 아주 좋은 것입니다). "과거 인류의 생존 및 번식에 도움이 되었을 환경 혹은 생물을 닮은 인공물"이라고 하는 것이죠.

이렇게 놓고 보면 Natural Metaphor for Information Visualization의 접근은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Natural Metaphor를 적용한 IV


작고 꾸물거리고 털 많은 벌레는 사실 "인류 보편적 혐오물"의 하나이니까요. 또, Organic Information Visualization 에서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가이드라인은 도널드 노만의 본능적 단계(visceral level)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행동적 단계(behavioral level)에 해당하는 얘기라서 약간 쌩뚱 맞습니다. 본능적 단계에서의 가이드라인이라면 최적(optimal)이나 간결(simple)이 아닌 다른 축의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단순한 물리법칙에 따른 움직임 보다는 목적성을 가진 주체로 보이는 움직임이 좋다", "쥐처럼 움직이기 보다는 개처럼 움직이는 것이 좋다" 같은 설명 말이죠.

약간 벗어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웹사이트 등의 "지역화" 문제 또한 진화미학 혹은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지역화"란 각 지역의 문화나 관습에 맞게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쩌면 "지역화"보다 ROI가 높은 작업은 "성별에 따른 커스터마이징" 혹은 "연령대에 따른 커스터마이징" 등일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처럼 답이 무수히 많은 문제를 풀 때에는 제약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그래야 시행착오가 줄어드니까), 진화미학이 본능적 단계의 디자인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제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하고 있는 재미있는 생각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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