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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30 정도(degree)로 생각하기 (9)

정도(degree)로 생각하기

세상은 대체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1 아니면 0 이 답이라기 보다는 0.759483 이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깐, 다 틀렸거나 다 맞았거나 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맞으냐 틀리냐가 아니라 얼마나 맞았고 얼마나 틀렸느냐, 옳으나 그르냐가 아니라 얼마나 옳으냐 얼마나 그르냐, 유용하냐 쓸모없냐가 아니라 얼마나 유용하냐 얼마나 쓸모없냐로 생각하는 게 상당히 유용합니다.

정도로 생각하는 습관과 궁합이 잘 맞는 습관은 매사에 기본적인 술어논리(predicate logic), 특히 전칭한정(universal quantification)과 존재한정(existential quantification)을 따져보는 습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만 적으면 너무 뻘소리 같으니깐 예시 몇 가지.

이를테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라는 말은 사실

"모든 진화가 진보인 것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진화는 진보일 수도 있다"

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진화와 진보를 섞어서 이야기한다고 무조건 "진화는 진보가 아니야!" 하면서 열을 내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이 뭔 얘기를 하는지 잘 들어볼 필요가 있겠죠.

혹은,

"반증가능성이 있으면 좋은 이론이다"

라는 얘기는

"반증가능성이 없으면 나쁜 이론이다"

혹은,

"반증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이론이다"

를 함축하지 않습니다. 좀 달리 말하면 반증주의(falsificationism)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몇 년 전에 반증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반증주의는 틀린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반증주의가 틀렸건 안틀렸건 반증가능성은 좋은 기준"이라는 것이죠.

또는,

"사실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라는 주장은 엄밀히 표현하면

"오로지 사실만으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당위 명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사실 명제를 일부 가져다 쓴다고 해도 그게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인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간혹 진화윤리학이 불가능한 이유로, 혹은 진화윤리학은 규범적(normative)이 아닌 기술적(descriptive) 윤리학이어야 하는 근거라며 자연주의적 오류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는데, 뻘소리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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