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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02 게임, 폭력성, 중독에 대한 생각 (4)

게임의 부작용(과몰입, 중독, 반사회적 행동 유발 등)을 지적하는 기사가 넘칩니다. 주로 C모일보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유해 사이트라고 판단하여 링크는 생략합니다. 주로 학부모, 교사, 학자, 정치인들의 주장/견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반면, 각종 SNS에는 부작용이 과장되었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글이 많이 올라옵니다. 주로 게임 및 관련 업계 종사자, 게임을 즐기는 일반 사용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양측 모두 대체로 빈약한 근거에 기반하여 너무 강한 주장들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되건 그 과정이 되도록 올바른 근거와 올바른 논리에 기반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논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께 "게임의 귀환(Grand Theft Childhood - The Surprising Truth About Violent Video Games)"이라는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비록 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최근(2004~2006)에 수행된 믿을 만한 연구에 기반하고 있고, 연구자들이 특정 집단의 이익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며, 참고자료도 성실하게 작성되어 있답니다. 다루는 주제들도 1) 폭력성, 2) 학내 집단 따돌림, 3) 반사회성, 4) 자살, 5) 섹스, 6) 게임 심의 및 규제, 7) 중독성 등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고 있는 논의들을 대체로 포괄하고 있어서 좋습니다.

아래에 책의 내용을 일부 발췌하였습니다(번역서의 문장이 많이 이상하다 싶은 부분은 원문을 병기하였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무조건 나쁘다, 무조건 좋다는 식의 단순한 주장은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마약 중독과 게임 중독:

- 중독이라는 말은 뭇사람들 입에 수시로 오르내린다. 누군가가 "음식 중독"이나 "쇼핑 중독"에 걸렸다는 말을 무시로 한다. 이러한 중독에는 세 가지 진단적 특징이 있다. ... 가령 헤로인을 복용하는 마약 중독자들에게서도 그 점이 확실히 드러난다. ... 그렇다면 비디오 게임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액션에 많이 포함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은 뇌의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증가된 수치와 관련이 있다. 이 두 호르몬은 뇌 세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며 학습과 중독에 관여한다. (원문은 These neurotransmitters are involved in both learning and addiction. 맥락에 맞게 의역하자면, "이 두 호르몬은 중독 뿐 아니라 학습에도 관여한다"라는 느낌)

- 비디오 게임에 중독됐다고 여겨지는 아이 중 일부는 강박반응성장애와 유사한 강박행동으로 괴로움을 겪는다(원문은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may be)"). (다른 일부는) 플레이할 때 때때로 강력한 강화를 느끼는 건지 모른다. ... 이러한 이들은 마약중독자보다는 재미로 복권을 사거나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원문은 "가까울지도 모른다(may)").

(이 부분의 번역은 과하게 "확신에 찬 어투로" 잘못 옮겨진 것 같습니다. 맥락 상 게임 중독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매커니즘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확신할만한 연구가 없다는 내용이라서, 여기에서 언급되는 내용은 그냥 저자들의 추론입니다)

(사실, 요즘 널리 쓰이는 "중독(addiction)"이라는 표현은 상당히 애매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문적 논의에서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특히 마약중독(chemical dependence)과 같은 의존증(dependence syndrome)과 도박중독(compulsive gambling disorder)과 같은 절차적/행동적 중독(process or behavioral addictions)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한편, 인터넷/게임 중독을 절차적/행동적 중독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지, 어떻게 진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결론을 낼 만큼 충분한 연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진단매뉴얼인 DSM의 경우 현재 작성중인 최신 버전(DSM V draft)에서도 인터넷/게임 중독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논의 중인 단계입니다.

혹시 중독의 정의나 신경학적/병리학적 설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The Science of Addiction"이라는 책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게임의 부작용을 근거 없이 과장한 사례들

- 2005년 8월, 미국심리학회(APA)는 비디오 게임과 쌍방향 미디어의 폭력성에 대한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모든 폭력적인 장면의 73%에서 가해자들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폭력이 갈등을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을 가르친다"라고 나와 있다(p14) --> [반론] "모든 폭력적인 ...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1990년대 중반의 일부 TV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p18)

- "워싱턴의 어린 저격수들" 중 한 명인 리 말보를 기소한 검사는, 그가 엑스박스 게임 콘솔로 헤일로를 즐기며 살해 장면을 훈련했다고 주장했다(p14) --> [반론] 이것(헤일로)으로 실제 저격수처럼 사격 훈련을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법정에서 리 말보는 사람 머리 대신에 종이 접시를 세워두고 진짜 총으로 사격 연습을 했다고 자백했다. 또한 말보는 예전부터 작은 동물을 괴롭히는 등 반사회적 범죄 행동을 저질러왔다. 어린 동물을 괴롭히는 것은 미래의 폭력적인 범죄 행동의 강력한 예측인자다(p18)

- 전국적으로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판매 신장이 청소년 폭력, 특히 학교 폭력의 증가와 관련되어 있다(p15) --> [반론] 비디오 게임의 인기와 실제 청소년 폭력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 청소년들의 폭력 범죄는 1993년에 절정에 달했다가 이후 점차 줄어들었다. 학교 폭력 역시 줄어들고 있다. 1994년에서 2001년 사이에 살인, 성폭행, 강도 및 가중 폭행으로 인한 체포율이 44%나 감소했다. 이는 1983년 이래 폭력 범죄로 인한 청소년 체포율로는 가장 낮은 수치다. 1993년에 3,800건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살인죄로 인한 체포도 2001년에는 1,400 건으로 급락했다(p19)

- 어떤 이유든 간에, 미디어 폭력에 따른 위해의 증거로서 1990년대에 범죄가 증가했다고 인용했던 전문가들은 범죄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을 철회하려고 하지 않는다. ... 폭력 범죄율이 급락하던 시기에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포함한 비디오 게임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었다는 점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p95)


폭력적 게임과 문제 행동 사이의 관련성:

- 반면에 약자를 괴롭히는 사건은 증가했다. 그런 괴롭힘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4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 연구는 비디오 게임의 특정 패턴이 학내 총기 난사 같은 대규모 폭력 범죄보다는 이러한 유형의 행동적인 문제와 더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을 알아냈다(p20)

- 우리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M등급 게임 플레이와 광범위한 공격적 행동이나 문제 행동 간에 상당한 관계를 찾아냈다. 실제로 M-게이머들은(ESRB M등급, 미국나이 기준 17세 이상 이용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중학생들) 비M-게이머들보다 아래에서 살펴볼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문제들 각각에 연루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에서 지난 일 년 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이러한 행동에 연루될 가능성은 M등급 게임에 많이 노출될수록 증가했다. 아이들의 목록에서 M게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관계도 더 높아졌다(p150)


발달지체아의 경우 특히 부모의 주의를 요한다는 언급:

- 발달적으로 더딘 아동(원문은 developmentally delayed kids, 보통은 발달지연 혹은 발달지체로 번역합니다)의 부모는 미디어 활용에 대해 더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이러한 아이들은 또래들보다 환상적인 게임과 진짜 세상을 구별하는 데 더 곤란을 겪기 때문이다(p202)


게임의 순기능에 대하여:

- 많은 아동 및 청소년들에게 비디오 게임 놀이는 격리된 활동이 아니라 대단히 사회적인 활동이다. ...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노력을 통합하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 ... 특히 나이가 어린 아이들에게는 게임이 또래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대화 주제로 작용한다(p20)


게임심의의 역기능 논란:

-  폭력적인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연구를 보면 ESRB(미국의 게임물 등급 심위 기관)가 등급 시스템의 일부를 거꾸로 적용하는 것 같다. 폭력적인 미디어가 실제로 폭력적인 행동을 초래할 것 같은 예측인자들 중 하나는, 아픔과 괴로움과 피 등 폭력으로 인해 실제로 초래되는 부정적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M 등급을 받은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은 그러한 부정적 결과물을 오히려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T 등급이나 E 등급을 받은 비디오 게임은 대게 그러한 부정적인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처럼 낮은 등급을 받는다. 가령 시체는 그냥 사라지고 피는 진짜처럼 보이지 않도록 만화 그림으로 처리된다(p22)

- 그렇다면 T등급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M등급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보다 더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끌 거라는 뜻인가? ...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마도 아닐 것이다" 쯤으로 해두자.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의 수많은 반대자와 지지자들이 서로 우기는 것처럼 딱 부러지게 대답하기는 어렵다(p255)


폭력적인 게임에 대한 연구/기사/언급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 요점은 아주 간단하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에 관한 주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져라. ... 비디오 게임과 공격적인, 혹은 폭력적인 아동 간에 관련성을 "입증한" 새로운 연구에 대해 들으면, 먼저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하라: 1) 그들이 실제로 누구를 연구했는가? 2) 그들이 비디오 게임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폭력"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3) 그들이 비디오 게임 폭력에 대한 노출을 어떻게 측정했는가? 4) 그들이 "공격성"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공격성의 척도로 무엇을 사용했는가? 이 척도와 현실 세계의 공격성 혹은 폭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당화 했는가? 5) 그 척도가 상식적인 선에서 통할만 한 것인가? (p128)

(참고로, 책에서는 게임의 부작용에 대해 입증했다는 류의 주장을 접했을때 아래와 같이 따져볼 것을 권하고 있지만, 실은 게임의 순기능에 대해 입증했다는 류의 주장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해볼 수 있겠습니다)


게임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의 공통적 특징:

- 우리 자신의 연구는 물론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까지 살펴본 결과, 아이들에게 진정한 위험(true risks)이 될 만한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 진정한 위험 요소는 폭력 같은 이슈보다 더 미묘해서 ... 게임 내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무심한 관찰자들에게 흔히 간과될 수 있다. 2) (게임의 위험성이)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건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상당히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3) 다른 사람의 숨은 동기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등 생물학적/발달적 문제가 어떤 아동이 위험에 처해 있는지 결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동의 심리적 상태, 그리고 가족은 물론 다른 어른과 또래들과의 정서적 관계도 마찬가지다(Biological and developmental issues, such as children's abilities to understand other people's hidden motives, play a significant role in determining which children are at risk. So do the psychological states of children and their emotional connections to adults and peers inside and outside their families). 4) 이러한 위험성을 제한하기 위해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제9장에서도 그러한 과제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요약?

위 책에 소개된 연구들에 따르면, 일부 게임이 일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으나, 현재의 각종 보도들은 1) 빈약한 근거에 기반하여 2) 과장된 위험성을 3) 과도하게 확신에 찬 논조로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이러한 보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게임이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확신에 차서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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