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적 소비' 검색 결과 1건

  1. 2008.07.07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요란한 선행(blatant benevolence) (6)
The Mating Mind의 저자인 Geoffrey Miller와 설득의 심리학(Influence - Science and Practice)의 저자인 Robert Cialdini 등이 작년에 발표한 재미난 진화심리학 논문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메이팅 마인드와 설득의 심리학. 두 권 다 강추)

논문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Blatant Benevolence and Conspicuous Consumption: When Romantic Motives Elicit Strategic Costly Signals (요란한 선행과 과시적 소비: 로맨틱한 동기는 어떠한 경우에 값비싼 신호를 유도하는가)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배경 설명을 조금 하고자 합니다.


1. 요란한 선행과 생물학적 이타주의

"요란한 선행"이란 남들에게 떠들석하게 알리면서 기부를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행동들을 말합니다. "과시적 소비"란 실생활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비싼 상품(다이아몬드, SUV 등)을 구매하여 과시하고 다니는 행위를 말합니다.

과시적 소비라는 것도 그렇지만, 특히 요란한 선행은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기에 조금 난감한 행동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만들어낸 로봇인 우리 인간들이 행하는 이타적 행위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뭔가 설명이 필요한 특별한 현상들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유전자 선택론 및 적응주의 같은 관점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보통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 사이의 이타행위(kin-directed altruism 혹은 kin selection), 비영합게임(non-zero sum game) 상황 하에서의 협력행위(reciprocal altruism)라는 두 가지 범주의 생물학적 이타주의(biological altruism)로 인간의 이타적 행동들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다시는 만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적선을 하거나, 각종 자선단체에 큰 돈을 기부하는 행위 등은 생물학적 이타주의라는 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이타주의에다가 진화적 시간 지연 효과(evolutionary time lags)이나 적응 비용 문제(cost of adaptation) 등을 덧붙여봐도 껄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2.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 혹은 값비싼 신호 이론 (costly signal theory)

적선이나 기부와 같이 생물학적 이타주의만으로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타행위를 설명하는 틀로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신호의 비용이 신호의 진실성을 보장한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자신이 금전적으로 관대한 사람이라는 점을 여성에게 설득하기 위해 모종의 신호를 보내고자 하는 상황에서

"나 관대해 (신호 비용 거의 0)"

라고 백날 떠드는 것 보다

"나 어디어디 재단에 얼마 기부했어 (신호 비용은 기부금에 비례)"

와 같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먹힌다는 뜻입니다.

적선이나 기부, 특히 "요란한 선행"은 자신의 부와 지위, 관대함 같은 특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신호라고 보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설명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100년 전에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Thorstein Veblen이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이름으로 소개한 개념입니다.

진화심리학(당시엔 진화생물학) 분야에는 이스라엘 생물학자인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에 의해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핸디캡 원리(handicap principle)"라는 이름으로 소개가 됩니다.

동물들은 성적인 장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적응도를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신호들을 진화시켰는데(fitness indicator), 이러한 신호가 그 진실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적응도가 높은 개체만이 발현시킬 수 있는, 적응도 낮은 개체들은 따라하기 힘든 특성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condition dependence of fitness indicator). 대표적인 예가 공작새의 꼬리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진화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초기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일례로, 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I do not believe this theory, although I am not quite so confident in my scepticism as I was when I first heard it. I pointed out then that the logical conclusion to it should be the evolution of males with only one leg and only one eye. Zahavi, who comes from Israel, instantly retorted: 'Some of our best generals have only one eye!'

처음 들었을 때 만큼 확신에 차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이 이론을 믿지 않는다. 내가 이 이론의 논리적 결과에 따르자면 수컷은 다리와 눈을 하나만 갖도록 진화될 것이라고 지적하자, 이스라엘 출신인 자하비는 즉각적으로 응수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군 중엔 실제로 눈이 하나 뿐인 사람도 있다오!"

음. 자하비 지못미.

하지만 자하비의 이론은 얼마 후 널리 인정되었고, 도킨스 역시 마음을 바꿔 이 이론을 수용했습니다. 최근에 나온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If I were ever to rewrite the book, as a late convert to the Zahavi/Grafen 'handicap principle' (see pages 309-313) I should also give some space to Amotz Zahavi's idea that altruistic donation might be a 'Potlatch' style of dominance signal: see how superior to you I am, I can afford to make a donation to you!

(번역 생략. 책을 다시 쓴다면 자바히의 이론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내용을 추가하겠다는 말입니다.)

좀 길어졌네요. 하여간, 진화심리학자들은 값비싼 신호 이론 덕분에 "과시적 소비" 뿐 아니라 "요란한 선행" 이라는 이타적 행위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무엇을 위한 신호인가? 구애를 위한 신호!

여기까지는 배경 설명이었습니다. 다시 논문 얘기로 돌아가서...

이 논문은 과시적 소비와 요란한 선행이 일종의 값 비싼 신호(costly signal)이긴 한데, 과연 무엇을 위한 신호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역시나 세상만사를 짝짓기로 설명하고자 하는 Jeoffrey Miller 답게, 이러한 행동이 "짝(mate)에게 보내는 구애 신호"로써 진화한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쓰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조금 바로 잡자면, "구애 신호의 역할 한다"가 아니라 "구애 신호의 역할 한다" 입니다.

만약 이러한 행위들이 구애 신호로 진화된 것이라면 진화심리학의 이론적 틀 안에서 몇 가지 특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위 행위들에는 남녀간 성차가 존재할 것입니다. 둘째, 적절한 성적 자극 - 이를테면 로맨틱한 상황 - 이 제시되면 위 행위들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저자들은 이러한 예측을 검증하기 위해 네 가지 재미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실험 1.  구애 신호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실험군에 로멘틱한 상황을 제시하자 (로멘틱한 상황을 제시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남성 집단에서는 과시적 소비 행위가 더 증가하였고 여성 집단에서는 요란한 선행이 증가하였습니다.

실험 2. 구애 신호가 정말 맞다면 로멘틱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과시적인 소비만 증가하고 과시적이지 않은 소비는 증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선행의 경우, 로맨틱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남들에게 노출되지 않는 선행은 증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남성들의 경우 과시적 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해 나머지 소비를 감소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 남자들이란.

실험 3. 위 두 실험에서 로멘틱한 상황이 주어져도 남성들의 선행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행이 만약 영웅적 행동과 관련이 있다면 남성들도 선행을 증가시킬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맞아떨어졌습니다. 특히 바람끼 많은 남성(unrestricted men)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했습니다. 한편, 과시적 소비가 자신의 금전적 관대함과 관련된 경우 여성들도 과시적 소비의 증가를 보였습니다.

실험 4. 위와 비슷하게, 선행이 만약 사회적 지위나 명예와 관련 있을 경우에도 남성들의 선행이 증가될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예측과 일치했으며, 이번에도 역시 바람끼 많은 남성(unrestricted men)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에.. 이 쯤에서 잊지 말고 나와줘야 하는 문구가 있는데, 논문의 저자들도 역시 잊지 않고 적어놨더군요: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e current framework does not imply that conspicuous consumption and blatant benevolence are sexually motivated at a conscious level.

그러니깐, 이 실험들은 의식적인 성적 동기와는 관련 없어요~ 이런 얘기. 성적 동기(sexual motivation)와 성적 기능(sexual function)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면 프로이트 심리학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죠.

에 또, 저자들이 깜빡 잊고 빼먹은 것 같은 중요한 문구도 있습니다 ㅎㅎ:
유전자와 진화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는 얘기도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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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마전에 Read & Lead 블로그를 통해서(강추입니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 과시적 소비는 한물 가고 보이지 않는 표식(invisible badge)이 대세"라는 마케팅 분야의 글을 하나 읽었는데요, 좀 오바라고 생각합니다:
Today's consumer is supposed to be a little more sophisticated than that. So it's puzzling how many marketers still talk about how a certain beer or sneaker or handbag functions as a so-called 'badge.' Even hybrid cars are said to be eco-status markers that show 'conspicuous concern' about the environment. More scholarly observers call this 'signaling.' But in the end it's all repackaged Veblen: The idea is that we buy stuff mostly to impress other people.

Perhaps this was true in the past. But the time has come to retire the conspicuous consumption idea. Observers of consumer culture (marketers, to name an example) need to understand that as a concept, it's inadequate. The rest of us (consumers, that is) need to understand that even if we wanted it to work, it just doesn’t anymore.

There is a better idea--the invisible badge.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소비자는 좀 더 현명해서 과시적 소비 개념은 더이상 적절치 않다.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는 the invisible badge가 대세다. 뭐 이런 얘기)

Rob Walker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위 주장은 "틀렸습니다".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대해 아무나 자기 마음대로 "추측"할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갔습니다.

과시적 소비라는 것은 오늘날의 소비자가 똑똑해졌기 때문에 없어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경제 행위가 아닙니다. 인간의 과시적 소비는 (조류와 포유류의 공통 조상까지는 고사하고) 그 역사를 영장류 까지로만 치더라도 최소한 수백만년간 이어진 본성이고, 하루아침에 바뀔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소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인간이 유성생식을 하는 한, 과시적 소비도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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