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What's Wrong with Religion? Why be so Hostile?)

무신론자이면 그냥 혼자 무신론자로 살면 되는데, 도킨스는 왜 그렇게 열성적으로, 때론 공격적으로 유신론을 비판하는 것일까요? 8장은
  • 인권 침해(여성차별 등),
  • 광신(테러와 전쟁 등),
  • 과학 발전 저해(창조론, 비이성적 사고 강요 등) 등

종교의 해악을 이야기 합니다. 도킨스가 종교를 열성적으로 비판하는 이유들입니다.


조지 칼린

8장 머리의 글귀는 조지 칼린의 코미디에서 따온 것입니다
종교는 당신의 모든 일을 지켜보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당신이 하지 말았으면 하는 열 가지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그 열 가지 중 어느 것이라도 하면, 그는 당신을 고문하고 고통을 주는, 세상이 끝날 때까지 목이 메도록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게 할 것이다 ... 하지만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

조지 칼린의 코메디에 대한 내용은 별도의 글로 뽑아 냈습니다.


근본주의와 과학 (Fundamentalism and the Subversion of Science)

원래 제목은 "근본주의와 과학의 파괴"입니다. 종교 근본주의로 인해 과학이 적극적으로 훼손되고 있기에 종교에 적대적이라는 뜻이죠.

일단 도킨스는 과학적 믿음과 종교적 믿음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근본주의자는 '신성한 책'에서 진리를 읽고 자신의 믿음을 뒤흔들 만한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안다 (...omitted...) 대조적으로 과학자인 내가 믿는 것(예를 들면 진화)은 신성한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연구했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omitted...) 진화에 관한 책들은 신성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omitted...) 어느 과학책이 틀렸다면, 결국은 누군가가 실수를 발견할 것이고 그 뒤의 책들은 수정되어 나온다. 신성한 책은 그럴 일이 없다. --p427

과학철학자들이나 과학사가들은 이런 소박한 견해에 대해 할 말이 많겠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사실 과학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도킨스는 과학을 극단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데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 특히 약간의 철학 교육을 받은 아마추어들과 더 나아가 '문화 상대주의'에 감염된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지루하게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을지 모른다. 증거에 대한 과학자의 믿음 자체가 근본주의 신앙이라고 말이다. (...omitted...)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아마추어 철학이 어떠한 것이든, 자신의 삶에서 얻은 증거를 믿는다. 내가 살인죄로 기소되고 검사측이 범죄가 일어난 밤에 내가 시카고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냐고 엄중하게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애매한 답변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것은 당신이 말하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p427~428

이런 부분이 굴드(S.J.Gould) 등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입장 차이겠죠. 뭐 저도 포스트모더니즘, 극단적 상대주의 같은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킨스는 훨씬 더 단호한 것 같다는 느낌이예요.

에, 아무튼 도킨스의 입장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의 믿음과 과학자의 믿음에는 위와 같이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도킨스가 이 절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문제는 단순한 입장 차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런 차이에서 비롯되는 더 큰 문제입니다:
과학자로서 나는 근본주의 종교에 적대적이다. 그것이 과학적 탐구심을 적극적으로 꺾으려 하기 떄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음을 바꾸지 말고, 알아낼 수 있는 것들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과학을 전복시키고 지성을 부패시킨다(It subverts science and saps the intellect). --p430

이러한 문제의 실례로 미국의 지질학자 커트 와이즈가 종교로 인해 과학을 포기하게 된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학적 세계관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펼친 뒤 말 그대로 한 구절씩 오려가면서 독파했다.

"나는 성경을 집어 들려고 했지만 온전히 남아 있는 여백의 도움을 받아도 두 장씩 집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나는 진화와 성경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성경이 옳고 진화가 틀렸든지, 진화가 옳고 성경이 틀렸든지. ... 그날 밤 나는 신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화를 포함한, 그것을 반박할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깊이 슬퍼하면서 나는 과학에 대한 내 모든 꿈과 희망을 불속으로 내던졌다"

나는 종교가 와이즈에게 한 짓 때문에 종교에 적대적이다.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지질학자가 그렇게 당했다면, 재능이 덜하고 대항력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생각해보라.

--p431~433

성경과 진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는 와이즈의 고민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근본주의 기독교의 교리란 그런 것입니다. 와이즈는 어떤 면에서는 참 정직한 신자인거죠...


절대론의 어두운 이면

이 절에서는 소위 "불경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비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국가의 사례가 하나씩 나오는군요. 우선 비기독교 국가입니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 중 하나는 불경죄에 가해지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금도 불경죄에 가장 심한 형벌이 가해진다. 파키스탄 형법 295-C항은 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사형에 처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2001년 8월 18일 의사이자 강사인 요니스 사이크가 불경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예언자 마호메트가 40세에 종교를 창시하기 전까지는 이슬람교도가 아니었다고 한 말이 화가 되었다. 학생들 중 11명이 그를 당국에 신고했다. 파키스탄에서 불경죄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개 기독교인들이다. 2000년 파이살라바드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오거스틴 아시크 '킹리' 마시가 그랬다. 기독교인이었던 마시는 연인과 혼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슬람교도였고 믿을 수 없게도 파키스탄(그리스 이슬람교) 법은 이슬람 여성이 비이슬람 남성과 혼인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교로 개종하고자 했고, 결국 개종 동기가 의심스럽다면서 기소된 것이다. 내가 읽은 기사로 볼 때 그 자체가 사형을 받을 만한 죄였는지, 아니면 그가 예언자의 도덕에 관해 어떤 말을 한 것이 빌미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편협한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법을 지닌 나라에서는 그것이 사형 선고를 받을 만한 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압둘 라만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가 누구를 죽였거나 누구를 다치게 했거나 무언가를 훔쳤거나 무언가를 훼손했던가? 아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자신의 마음을 바꾼 것뿐이다. 내면적으로, 사적으로 마음을 바꾸었을 뿐이다. (...omitted...) 라만은 결국 처형을 피했지만, 그것은 그가 정신이상이 있다고 변명하고 국제 사회의 강력한 압박이 가해진 결과였다. 현재 그는 이슬람교도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열심인 광신도들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피해 이탈리아의 수용소에 들어가 있다. (...omitted...) 1992년 9월 3일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있다. 사디크 압둘 카림 말라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배교죄와 불경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공개 참수형에 처해졌다.

--p434~436

이번에는 기독교 국가:
하지만 기독교 국가라고 나을 것은 없다. 비교적 최근인 1922년 영국에서 존 윌리엄 고트가 불경죄로 9개월의 중노동을 선고받았다. 예수를 어릿광대에 비교했다는 것이다.

(...omitted...)

미국 텔레반이라는 웹페이지에는 앤 콜터라는 사람의 대단한 말을 시작으로 불쾌할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인용문들이 많이 등장한다. (...omitted...) 그 사이트에는 "우리는 그들의 국가를 침략하여 지도자들을 죽이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 하원의원 밥 도넌의 "게이(gay)가 신이 아직 돕느냐(God Aids Yet?)의 약어가 아니라면 쓰지 말라", 윌리엄 보이킨 장군의 "조지 부시는 미국 투표자 중 다수가 선출한 것이 아니라 신이 임명했다", 그리고 예전에 Ronald Reagan 행정부의 내무장관이 환경 정책에 대해 한 "재림이 임박했으므로 우리는 환경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등 주옥같은 말들이 실려 있다. 아프간 텔레반과 미국 텔레반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전을 글자 그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그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제정일치제 사회의 삶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림끼치는 사례를 제공한다. 킴벌리 블레이커의 "극단론의 기초: 미국에서 기독교도의 권리"는 기독교 텔레반(명칭을 쓰지는 않는다)의 위협을 폭로한다.

--p436~438


신앙과 동성애

세번째 절의 주제는 동성애 입니다. 이 부분도 내용이 좀 길어져서 별도의 글로 옮겼습니다.


신앙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

이 절에서는 인간 배아를 바라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불합리한 시각을 지적합니다. 일단, 이들은 "배아는 인간 따라서 낙태는 살인"이라는 단순한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인간 배아는 인간 생명의 한 유형이다. 따라서 절대론적 종교관에 따르면 낙태는 무조건 잘못된 것이다. 전적으로 살인이다. (...omitted...) 실제로 테레사 수녀는 노벨 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평화의 가장 큰 파괴자는 낙태다"라고 말했다. 뭐라고? 그렇게 비뚤어진판단을 내리는 여성이 한 말을 어떻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정으로 노벨상을 받을 만한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독실한 척 하는 위선적인 테레사 수녀에게 속아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은 Christopher Hitchens의 "선교사의 위치: 이론과 현실의 마더 테레사"를 읽어봐야 한다.

(...omitted...)

그 들이 볼 때 문제는 훨씬 단순하다. 배아는 '아기'이고, 그것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그것이 다이다. 논쟁 끝. 이 절대론적 태도로부터 많은 것이 파생된다. 우선 배아 줄기 세포 연구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것이 의학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 연구가 배아 세포의 죽음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 논리의 모순은 사회가 이미 체외 수정 시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명백히 드러난다. 체외 수정 시술 때 의사들은 난자가 더 많이 나오도록 여성을 자극한 후 배출된 난자들을 몸 바깥에서 수정시킨다. 생존 가능한 접합자가 십여 개 생성되면, 그중 두세 개를 자궁에 이식한다. 그중에서 겨우 하나나 두 개가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체외 수정 과정에서 배아가 죽지만, 사회는 거기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p444~p448

(참고로 히친스의 테레사 비판서는 "자비를 팔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강추예요.)

다음으로는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불 지르고 다니는 불법 단체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정말 세상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특정한 부류의 종교인은 미세한 세포 덩어리를 죽이는 것과 다 성장한 의사를 죽이는 것의 도덕적 차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omitted...) 마크 위젠스메이어의 "신의 마음 속 테라"라는 오싹한 저서에는 마이클 브레이 목사와 그의 친구 폴 힐 목사가 "천진난만한 아기의 살해를 중단시키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라는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둘 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얼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잘 차려입고 매력적인 웃음을 띠고 있는 다소 미숙해 보이는 멋진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신의 군대에 속한 그들의 동료들은 임신 중절을 시술하는 병원들에 불을 지르는 일을 본업으로 삼았고, 의사들을 죽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다녔다. 1994년 7월 29일 힐은 의사인 존 브리턴과 그의 경호원 제임스 바릿을 플로리다 주 펜서콜라에 있는 브리턴의 병원 앞에서 총으로 사살했다. 그런 다음 그는 제발로 경찰서를 찾아가서 미래의 '천진난만한 아기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그 의사를 죽였다고 말했다.

결과론 혹은 공리주의적으로 바라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죠:
얼마만큼 자랐든 인간의 배아가 같은 발달 단계에 있는 소나 양의 배아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고 가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인간이든 아니든, 모든 배아가 도살장에 있는 소나 양보다 고통을 훨씬 덜 느낀다고 가정하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이다. 특히 종교의식에 쓰이기 위해 목이 잘릴 때까지 온전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동물들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위대한 베토밴의 오류

"위대한 베토밴의 오류"는 낙태 반대론자들이 자주 쓰는 수법 중 하나입니다. 저도 들어본 적이 있고요. 하지만 베토밴 가족 이야기는 적절치도 않을 뿐더러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Peter Medawar와 진 메더워는 "생명과학"에서 영국의 하원의원이자 저명한 로마가톨릭 평신도인 노먼 세인트 존 스테바스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omitted...)

"임신 중절에 관해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매독 환자이고 어머니는 결핵에 걸렸습니다. 이미 자식을 넷이나 낳았는데, 첫째는 맹인이었고, 둘째는 사산했고, 셋째는 농아였고, 넷째는 결핵에 걸렸지요. 당신이라면 어찌했겠습니까?"

"임신 중절을 시켰겠지요."

"그러면 당신은 베토벤을 살해한 겁니다."

인터넷에는 이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는, 이른바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사이트가 여럿 있으며, 이야기마다 사실을 가리키는 전제들이 제멋대로 변형되어 있다. (...omitted...) 개작된 전설은 그 위대한 작곡가를 다섯째가 아니라 아홉째로 밀어내고 귀가 먼 아이의 수를 셋, 눈이 먼 아이의 수를 둘로 늘리고,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매독에 걸렸다고 말한다. (...omitted...) 그것은 창작된 것이 분명하며, 전적으로 틀렸다. 사실 베토벤은 아홉째 아이도, 다섯째 아이도 아니었다. 그는 장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둘째지만, 첫째가 유아 때 죽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죽은 첫째는 눈이 멀거나, 귀가 먹지도 않았고, 정신지체도 없었다. 그의 부모가 매독에 걸렸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 비록 그의 어머니가 나중에 결핵으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그런 사례가 많았다.

사실 그것은 완전히 창작된 전설이다. 어쨌거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지금의 논점과 별 관계가 없다. 설명 거짓말이 아니라도 그것에서 이끌어낸 논증은 사실상 아주 나쁜 논증이다. 메더워 부부는 그 논증의 오류를 지적할 때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의 여부를 굳이 따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 불쾌하고 사소한 논리의 배후에 있는 추론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결핵에 걸린 어머니와 매독에 걸린 아버지 그리고 음악 천재의 출산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금욕 때문에 베토벤을 잃는 것이 아니듯이 낙태로 베토벤을 잃는 것도 아니다."

(...omitted...)

'인간의 잠재력' 논증의 논리적 결론은 우리가 성교를 할 기회를 놓칠 때마다 한 인간의 영혼에게서 존재라는 선물을 잠정적으로 빼앗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 어리석은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논리에 따르면 번식 능력이 있는 개인의 성교 요구를 거절할 때마다 잠재적인 아이를 살해하는 셈이다! 심지어 강간에 저항하는 것도 잠재적인 아기를 살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임신 중절 합법화 반대 운동가들의 상당수는 야만적으로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임신 중절을 하는 것까지도 반대한다). 명확히 알 수 있겠지만 베토벤 논증은 정말로 아주 나쁜 논리다. 그것의 초현실적인 멍청함은 몬티 파이톤의 영화 "삶의 의미"에서 마이클 팔린이 "모든 정자는 신성하네"라는 장엄한 노래를 수백 명의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에 멋지게 요약되어 있다(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보기를).

--p455~460


온건한 신앙이 광신을 부추긴다

도킨스의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너무 극단적인 사례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 절은 그런 의문에 대한 도킨스의 대답입니다:
여기서 내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은 부드럽고 온건한 종교도 극단주의가 자연스럽게 번성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인간 폭탄으로 훈련시키는 만드는 신앙: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이 말은 이슬람교뿐 아니라 기독교에도 적용된다) 진정으로 유해한 것은 신앙 자체가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행위다. (...omitted...) 의문을 품지 않는 신앙이 미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 획득하기 어렵지 않은 다른 요소들을 고려할 때 - 을 미래의 성전이나 십자군 전쟁을 위한 치명적인 무기로 자라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순교자의 낙원을 약속받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그 진정한 신앙의 집약체 즉, '인간 폭탄'은 긴 활, 군마, 탱크, 집속 폭탄과 함께 무기의 역사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아이들에게 의문 없는 신앙이 우월한 가치를 지닌다고 가르치는 대신 자신의 믿음을 통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친다면, 자살 테러범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살 테러범은 자신이 종교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다. 신에 대한 의무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며, 임무 도중에 순교를 하면 천국의 정원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러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것들을 극단적인 광신자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의 바르고 점잖은 주류 종교 교사들로부터도 배운다.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옷을 입고 줄지어 앉게 한 다음, 멍한 앵무새처럼 경전의 단어 하나하나를 배울 때마다 천진무구한 작은 머리를 리듬감 있게 끄덕이게 한다. 신앙은 아주 위험하며, 그것을 순진한 아이의 취약한 정신에 계획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몹시 잘못된 일이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주입하는 것은 몹시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9장의 주제입니다. 도킨스는 9장에서 종교가 "아동 학대"라고 주장합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에서 가장 독창적인 내용이 바로 9장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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