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Arguments for God's existence)
이 장의 주제는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논증들 중 유명한 것들을 나열하고 이를 하나씩 비판하는 것입니다. 다음 소제목들이 각각의 논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3.1.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Thomas Aquinas' 'Proofs')
- 3.2. 존재론적 논증과 연역적 논증들
(The Ontological Argument and Other A Priori Arguments) - 3.3. 아름다움 논증 (Arguments from Beauty)
- 3.4. 개인적 경험 논증 (The Argument from Personal 'Experience')
- 3.5. 성서 논증 (The Argument from Scripture)
- 3.6. 독실한 과학자 논증 (The Argument from Admired Religious Scientists)
- 3.7. 파스칼의 내기 (Pascal's Wager)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몇 가지만 요약하도록 하겠습니다.
3.1.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 입니다. 그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은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
Quinquae viae 참고)
- 부동의 원동자. 그 어느 것도 선행 원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 무언가가 최초의 움직임을 일으켜야 하며, 우리는 그 무언가를 신이라 부른다.
- 원인 없는 원인. ... 모든 결과에는 그보다 앞선 원인이 있으며, ... 최초의 원인을 ... 신이라고 부른다.
- 우주론적 논증. ... 그 어떤 물체도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 물체들을 출현시킨 비물리적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 정도 논증. 우리는 사물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선이나 완벽성 같은 것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값과 비교해야만 그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인간은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으므로, 최대 선은 우리 안에 있을 수가 없다. ... 우리는 그 최대값을 신이라고 한다.
- 목적론적 논증 또는 설계 논증. 세계의 사물들, 특히 살아 있는 것들은 마치 설계된 듯이 보인다. ... 따라서 설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
다음은 처음 세 개의 논증에 대한 비판입니다(덤으로, 전지와 전능이 양립불가능함을 간단히 덧붙이고 있습니다):
처음 세 개의 증명은 같은 것을 그저 달리 말한 것으로 하나로 묶어서 생각할 수 있다. (...omitted...) 회귀 개념에 의존하는 이 세 가지 논증은 신을 불러내 회귀를 종식시킨다. 그것들은 신 자신이 회귀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전적으로 부당한 가정을 한다. 비록 우리가 무한 회귀의 종식자를 독단적으로 생각해낸 뒤, 단순히 이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수상쩍은 사치를 부린다고 하더라도, 그 종식자에게 일반적인 신의 속성들을 부여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전능, 전지, 덕, 창조적인 설계도 그렇고, 기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죄를 용서하고 가장 내밀한 생각을 읽는 등의 인간적인 속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말이 난 김에 덧붙이면, 논리학자들은 전능과 전지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p122~123
즉,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신"이라고 인정해봤자 그 "신"이 기독교 등의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신이라는 것까지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다음은 정도 논증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실 정도 논증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어설픕니다. 도킨스도 짧게 언급하기만 합니다:
이것이 논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냄새가 다르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최대 냄새를 참조해야만 서로의 냄새를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비할 수 없을 만큼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비교할 특성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로 아둔한 결론이 도출된다. --p125
마지막으로, 목적론적 논증 또는 설계 논증에 대해서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 도킨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는 이미 20여년 전에 설계 논증의 반박을 주제로 책을 한 권 냈었는데 바로 "눈 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입니다. 그는 이번에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은지,
설계 논증에 대해서는 다음 장(제4장)을 통으로 할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장에서는 일단 패스.
3.5. 성서 논증.성서 논증은 한 마디로 성경을 근거로 한 논증들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잖아"라는 형태인거죠. 성서에 대한 도킨스의 견해는 간단합니다:
Dan Brown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그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기독교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기독교인들은 영화 상영에 반대하고 상영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그 작품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다. 즉 창작된 소설이다. 그 점에서 그것은 복음서들과 똑같다. 다빈치 코드와 복음서들의 유일한 차이점은 복음서들이 오래된 소설인 반면, 다빈치 코드는 현대 소설이라는 것뿐이다. --p154
그는 성서 논증을 비판하기 위해 성서의 다양한 오류들을 제시합니다. 그는 또 Bart Erhman의 책 "Misquoting Jesus"를 추천하고 있는데, 이 책은 국내에서 "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출판되었습니다. 성서 논증에 대한 비판은 도킨스를 인용하는 것 보다는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요약하면서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Bart Erhman에 대해서는 예전에 "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증거가 있는가?"라는 글에서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3.6. 독실한 과학자 논증.독실한 과학자 논증은 소위 이런 것이죠:
뉴튼은 종교인이었다.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자신이 뉴턴, 갈릴레오, 케플러 등보다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신하는가? 그런 위인들이 신을 선호한다면, 당신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p155
이런 종류의 논증(사실 의미있는 논증이 아닙니다만)을 펼치는 사람들은 종종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다윈이 죽기 직전에 신앙 고백을 했다거나 하는 종류의 소설이 유명합니다. 도킨스는 이런 소설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임종 때 녹음기를 준비해두어야겠다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
이 섹션의 주된 내용은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으며, 뛰어난 과학자들은 특히 그러한 경향이 높더라는 것입니다:
1996년 나는 Human Genome Project의 창시자이자 내 친구인 James Watson과 예전에 그가 체류했던 케이브리지 대학교 클레어 대학의 교정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omitted...) 나는 왓슷에게 현재 종교인 과학자를 많이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거의 없어요.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약간 당혹스럽습니다(웃음). 알다시피 나는 계시를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믿을수가 없거든요."
왓슨과 함께 유전학 혁명을 일으킨 Francis Crick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처칠 대학이 성당을 짓겠다고 하자 그 대학의 평의원직을 사임했다.
(...omitted...)
1998 년 E.J. Larson과 L. Witham이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실은 글에는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에 상응하는) 미국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될 정도로 저명한 미국 과학자들 중에 인격신을 믿는 사람이 약 7%에 불과하다고 나와 있다. 무신론자의 이 압도적인 우위는 90% 이상이 일종의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다는 미국 대중의 전반적인 입장과는 거의 상반된 것이다.
(...omitted...)
이 책이 인쇄될 무렵, 내 동료인 Elisabeth Cornwell과 Michael Stirrat은 왕립학회 회원들(FRS)의 종교적 견해를 조사한, 비슷하지만 더 철저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omitted...) 미국 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그러하듯이, FRS에서도 무신론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회원들 중 겨우 3.3% 만이 인격신이 존재한다는 지문에 강력하게 동의한 반면, 78.8% 는 강하게 부인했다.
--p158~162
3.7. 파스칼의 내기파스칼의 내기란 이런 것입니다:
위대한 프랑스 수학자 Blaise Pascal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었다. --p164
이것도 상당히 우스운 주장 중 하나입니다. 여러가지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다음 한 단락이면 충분합니다:
당신이 죽어서 대면한 신이 바알이라고 가정하고, 바알이 옛 경쟁자인 야훼처럼 다른 신을 믿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파스칼은 엉뚱한 신을 믿기보다는 차라리 신이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걸지 않았을까? 사실 내기를 걸 만한 신과 여신의 가능한 수는 파스칼의 논리 전체를 무위로 만들지 않을까? --p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