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대 진화의학>을 읽고 씁니다.


논점이 분산되는 것 같아서 제 입장을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 저는 김우재님의 여러 주장 중 "EEA와 현대 환경의 차이에 대한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의 가정에 모순이 있어서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진화심리학은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이다(이하 <EEA 모순>이라고 하겠습니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 혹은 인지심리/신경심리/생리학 등 사이에 어떠한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진화심리학의 주장이나 전제들이 모두 타당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우재님이 소개해주신 글들의 내용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소개해주신 비판은 배타적으로 진화심리학에만 해당한다기보다 오히려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에 두루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김우재님 새 글의 상당 부분은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의 가정을 요약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 여러가지 오류 혹은 과장이 있습니다. <EEA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앞서 이 부분을 해소 혹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진화심리학이 인지심리학, 신경심리학 등과 연계되지 않는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들만 몇 권 뽑아봐도 사실이 아님이 자명합니다. 이를테면 <Evolutionary Cognitive Neuroscience(edited by S. Platek, etc.)>라는 책이 이미 2007년에 나왔고(즉 연구는 적어도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부터 있어왔다는 뜻), D. Nettle은 유전학/신경학/진화심리학을 엮어서 Big 5 모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대중서 <Personality> ('성격의 탄생'이라는 번역서가 있습니다). 개인차를 다루고 있는 J. R. Harris의<No Two Alike>('개성의 탄생'이라는 번역서가 있습니다)에서도 학제적 접근을 하고 있고요. 김우재님이 쓰신 글 중에도 진화심리학자인 Cosmides의 연구를 두고 인지신경학에 "손내민다"고 하고 표현하고 계시는데 이것도 좋은 사례겠죠.

진화심리학이 연계학문들의 성과를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좋겠다는 주장이라면 저도 크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진화심리학의 근본적 문제 때문에 연계 시도가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은 너무 과합니다.


2. 진화심리학은 행동에만 관심을 둔다:

"행동"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진화의학도 마찬가지로 행동에만 관심을 둔다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진화심리학이 행동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Evolutionary Psychology of the Emotions>에서는 정서 상태에 따른 생리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생식적합도와 언어 능력을 대조하는 부분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오해를 담고 있다고 보는데, 이를테면 (선천적/후천적) 언어 장애가 있으면 구애에 큰 지장이 있다는 점에서 언어 능력을 생식적합도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G. Miller가 <The Mating Mind('연애'라는 제목의 번역서가 있습니다)>에서 관련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 관심사를 신체나 환경 등으로 좀 더 넓히면 좋겠다는 주장이라면 저도 크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진화심리학이 오로지 (좁은 의미의) 행동에만 관심을 둔다는 주장은 너무 과합니다. 전 요즘 EEC(Emboded-Embedded Cognition)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나 전통적 계산표상주의 관점에 대한 비판과 기존 연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3. 진화심리학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적응형질들을 전제에 둔다:

성선택의 적응도지표(fitness indicator)는 조건 의존성(condition dependency)이 있어서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합니다(G. Miller의 <The Mating Mind>나 저자 홈페이지에 공개된 여러 연구들). 앞서 말씀드린 D. Nettle의 연구도 요동선택(fluctuation selection)의 일종인 빈도의존선택(frequency-dependent selection) 모델에 기반하고 있으니 환경 및 타개체에 민감한 적응형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S. Pinker의 경우도 <How the Mind Works>를 쓸 당시(1994년 혹은 1997년)와 달리 <The Blank Slate>를 쓸 당시엔(2002년) G. Miller 등의 견해를 수용하여 훨씬 더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이를테면 예술의 부산물 가설에 대한 Miller의 반론을 인정한다거나).

진화심리학의 기존 연구들이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적응형질들에 편향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타당한 주장일 수 있으나, 진화심리학이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적응형질들을 전제에 두고 있다라고 하면 불필요하게 강한 주장이고 위와 같은 반례 몇 가지 만으로도  자명하게 틀린 주장이 됩니다.


4. 진화심리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진화의학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진화적 이상심리(Evolutionary Abnormal Psychology) 연구들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계속 언급하고 계시는 <Why We Get Sick>의 저자 중 한 명(R. Nesse)이 주도하고 있으며 동시에 진화심리학의 분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Why We Get Sick> 14장에서도 정신질환을 다루고 있고, D. Buss의 <Evolutionary Psychology> 마지막 챕터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며, L. Cosmides도 이미 1999년에 <Toward an evolutionary taxonomy of treatable conditions>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애초에 진화의학과 진화심리학을 칼 같이 나누는 시도 자체도 무리한 것일 뿐 아니라, 엄연히 두 학문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분야에 해당하는 진화적 정신의학은 근거없이 진화의학의 진영에만 배타적으로 포함시킨 다음에 진화심리학은 이러저러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비단 진화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뿐 아니라 1)에서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떤 진화심리학자 연구가 인지신경학과 연계된 접근을 안하면 "충돌한다"고 하고, 연계된 접근을 하면 "손내민다"고 하시는 건 좀 교묘한 레토릭이지요. 스스로 세운 기준에 부합되는 연구는 진화심리학 연구가 아닌 것으로 분류하고 나머지 연구들은 진화심리학 연구로 분류한 다음에 그 기준에 기반하여 진화심리학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일종의 순환논증으로, 항진명제입니다.


* 트위터에 "뭔가 대답이 되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이 문제를 다루는 학자는 내가 아는 한 없다. 그리고 그 차이가 무슨 학문의 건강성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라고 쓰신 것을 읽고 추가합니다:

저는 차이가 치명적이라고 주장하시는 것으로 이해해서 자꾸 반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EEA와 현대 환경의 차이에 대한 진화심리학과 진화의학의 가정에 모순이 있어서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진화심리학은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이다" 같은 문장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냥 "차이가 있는데 잘 합쳐봤으면 좋겠다" 정도의 주장이시라면... 쓰신 글의 여러 부분에 (의도와 달리)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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