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님의 글 "정신분석학 대 진화심리학"을 읽고 씁니다:


>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진화심리학이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있는 원리가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연계학문들과 상충한다는 사실이다. 즉, 진화심리학은 진화의학과 충돌한다. 진화의학의 기본 원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생태-사회적 환경이 우리 조상들이 진화하던 홍적세의 그것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많은 질병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변화한 환경을 최소한으로 고려할 때만 학문 자체가 존립할 수 있다. 생태-사회 환경의 변화가 극명하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가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진화심리학이 측정한 데이터들은 폐기처분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이 이 문제를 풀고 넘어가지 않는한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어떤 진화심리학자도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종합설 전통에서 비교적 최근에 파생된 두 분야인 진화의학과 진화심리학 사이에 충돌이 있다면 적어도 둘 중 한 분야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런데 두 분야 사이의 충돌에 대한 위 지적은 제가 이해하기로는 틀렸습니다.


진화의학에서 말하는 "너무나" 다른 것과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소한" 다른 것 사이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겉보기 충돌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와 "최소한"이 각각 어느 정도를 이야기하는지 따져보면(즉 모호성을 제거하면) 충돌이 아니게 됩니다.


두 가지를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다른 것"과 "유사한 것"은 항상 공존하는 개념입니다. 메트 리들리(Matt Ridley)의 <Nature via Nurture>에서 이 문제를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Similarity is the shadow of difference. Two things are similar by virtue of their difference from another; or different by virtue of one's similarity to a third. ... A man and a woman may be very different, but by comparson with a chimpanzee, it is their similarities that strike the eye. (의역: 유사함은 다름의 그림자다. 두 사물이 유사한 이유는 이 둘과 다른 세번째 사물과의 차이 때문이고, 두 사물이 다른 이유는 유사한 세번째 사물과의 유사함 때문이다. ... 남성과 여성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침팬지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남녀간에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랄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환경이 완전히 동일하거나 완전히 다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고, 어느 정도의 유사성과 어느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텐데,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유사성에 집중할 수도 있고(진화심리학 연구), 차이점에 집중할 수도 있는 것이죠(진화의학).


현대인의 식습관은 과거와 얼마나 다르다고 해야하나요? 스니커즈, 콜라, 버거킹 등 온갖 것들을 만들어냈지만 대체로 소화할 수 있는 것들, 영양분이 들어 있는 것들을 먹는다는 점에서는 과거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양분의 과다섭취라는 점에서는 과거와 크게 다릅니다. "인간은 어떤 음식을 왜 선호하는가"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자는 환경이 "최소한" 다르다고 말할 것이고, 식습관 차이로 인한 고도비만 등을 연구하는 진화의학자는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고 말할텐데 이 둘 사이에 충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억측입니다.


둘째, 환경이 너무나 다르거나 최소한 다르다고 할 때 이 환경이 대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따져봐야 합니다.


진화심리학에서 별 부연 없이 "과거 환경"이라고 하면 EEA(진화적 적응 환경; Environment of Evolutionary Adaptation)를 말합니다. 초기(아마도 7~90년대)에는 이 개념의 정의에 모호        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적어도 90년대 후반부터는 비교적 정교하게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맥락에서 중요한 점은 EEA가 특정한 시대와 장소(이를테면 십만 년 전 아프리카)를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EA란 특정 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직면해온 적응 문제들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어떤 적응 문제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과거 환경(EEA)과 현대와의 차이가 크다고 볼 수도 있고, 적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임신을 한다는 점은 과거나 현재나 동일하므로 이에 따른 부양투자(PI)의 차이를 연구할 때엔 이 유사성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영양분의 과잉 섭취 문제는 과거에 비해 현대에 나타난 문제이므로 이에 따른 질병(고도비만 등)을 연구할 때엔 이 차이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1) 동일한 대상을 연구할 때에도 관점에 따라 차이가 "크다"거나 "작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 2) "환경"이라는게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서 어떤 적응 문제를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차이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김우재님의 글 중반부에서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The devil, rather, is in the details. (오히려 악마는 세부적인 곳에 있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따져보면, 즉 진화의학의 "어떤 연구"와 진화심리학의 "어떤 연구"는 실제로 충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리고 이런 충돌은 건전한 것/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논의 없이 퉁쳐서 "진화심리학은 차이가 작다하고 진화의학은 차이가 크다 하니 영원히 논란에 휩쌓일 것이 자명하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성급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김우재님은 최소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종합설, 진화심리학, 진화의학 관련 논의들을 깊게 이해하고 계셨고, 그 후로도 관련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위에서 말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몰랐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죠. 그런데 저토록 허술한(혹은 허술해보이는) 주장을 하신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가 어설프게 덤벼들길 기다리며 함정을 파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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