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 게임이 인기 없는 이유? 에서 이어서 씁니다.

1) 내가 "재미 이론"을 까는 이유, 2) 어디가 어떻게 틀렸다는 것인지, 3)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순서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1. 나는 "재미 이론"을 왜 까나

유명한 사람이 쓴 책인데 읽다보니 틀린 점을 발견해서 "요쉐키 틀렸넼ㅋㅋㅋㅋㅋ" 이러면서 우월감을 느껴보려고 그러는건 아니고요 게임 기획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대체 게임을 왜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틀린 내용이 담겨 있으면 어디가 어떻게 틀렸는지 정리하는 것이 저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위키에 쓰고 말면 되는 것을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1) 혹시나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2)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서 입니다.

요따위 변명을 하고 시작하는 이유는... 너무 까기만 하는 사람으로 찍힐까봐서요 ㅋ


2. 어디가 어떻게 틀렸나

여기에서 말하는 "틀렸다"라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요, "그럼 진화론적 분석을 올바르게 하면 어떤 게임이 망할지 맞출 수 있나?"라는 의미에서의 "틀렸다/맞았다"가 아닙니다. "진화론적 분석을 한다고 했으면 결론이 미래를 올바르게 예측했건 못했건 간에 적어도 일단 분석 자체는 올바르게 해야하는데 분석 자체가 올바르지 않다"는 의미에서의 "틀렸다" 입니다. 뭔 게임이 망할지 안망할지 백발백중 맞출 수 있는 이론이 있다고 누군가가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그냥 약장수죠.

앞 글에서 인용했던 부분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게임들, 특히 고전적 올림픽 스포츠로부터 발전된 게임들은, 매우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원시 인류의 욕구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1)

인간의 모든 적응행동를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적응"으로 보는 관점은 편협합니다. 우리가 흔히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말하는 메커니즘은 생존 선택(survival selection)과 성선택(sexual selection)으로 나뉠 수 있고, 이 두 가지 메커니즘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서로 매우 다릅니다. 특히 스포츠나 예술과 같이 잉여롭고 과장된 행위는 생존 선택의 관점만으로 온건히 해석하기에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고요.

게임의 재미를 생존 선택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문제는 위 인용문에서 뿐만 아니라 "재미 이론" 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 뿐 아니라 소위 "진화론적 접근"을 한다는 대부분의 책들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많은 행위들이 실은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석기시대인이 될 수 있도록 연습시키는 역할을 한다(2) ... 우리는 게임이 현대 생활에 더 적합해지도록 발전시켜왔다(3) ... 인간이 진화됨에 따라, 게임도 바뀌어 왔다. 초창기의 체스에서는 퀸이 오늘날처럼 강력하지 않았다(4). ... 곡물의 수확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으나 오늘날엔 그렇지 않다. 농경에 대한 게임을 많이 찾아볼 수 없는 까닭이다(5).

이 분석은 문화가 변화하는 속도와 진화가 일어나는 속도의 스케일 차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번식 사이클, 선택압의 크기, 생존선택인지 성선택인지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지만, 진화적 적응은 대체로 수만년에서 수백~수천만년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고 문화의 변화는 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즉, 현대 도시생활로의 변화는 길게 봐야 수백~수천년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진화적 적응이 일어나서 우리의 심리가 현대 도시 생활에 적합한 무언가에서 재미를 느끼게끔 변화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게임의 변화는 인간 진화와 무관합니다.

농경이 현대 생활에 필요한 기술이 아니고, 현대 인류는 현대 생활에 맞게 진화 했기 때문에, 우리는 농경 게임에서 재미를 못느끼고, 따라서 시장성이 없다라는 일련의 추론은 이러한 이유에서 부적절합니다. 도시 건설 게임이 잘 팔리는 이유 또한 인간의 진화와 무관합니다.

한편, 이러한 설명에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죠. 만약 우리가 석기 시대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현대 생활에 대한 진화적 적응이 일어날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도시 건설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대답은 게임의 근본적인 메커닉이 제공하는 여러가지 퍼즐풀이의 재미(이 부분은 Raph Koster의 책에서 잘 설명하고 있으므로 패스)일 것이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에 대한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제시할 수 있는 추가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 도시 환경 자체도 인간 본성의 강한 제약이 작용된 결과물이기 때문

즉, 문화 현상이라는 것 자체도 인간의 본성과 무관하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도시 건설 게임은 현대 도시 문명과 관련이 있고 현대 도시 문명은 다시 인간의 진화적 본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시 건설 게임으로부터 여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1992년에 출판된 유명한 진화심리학 교과서 논문집 "The Adapted Mind"의 부제는 "진화심리학과 문화의 생성(Evolutionary Psychology and the Generation of Culture)" 인데, 이 제목이 문화와 인간 본성의 관계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3. 그래서 어쩌라고?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저는 "인간이 왜 게임을 하나?"라는 질문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에 대한 이론, 동기에 대한 이론이 어찌되었건 간에 게임 기획 실무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1) 예측 가능성이 높고, 2) 기획자의 상상력에 충분한 제약을 가하면서도 3) 응용 가능성이 높은 이론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Raph Koster의 책 제목은 "게임 디자이너를 위한 재미 이론"입니다. 따라서 "게임이 주는 재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죠. 그런데 저는 이 시도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게임이 무엇인지를 정의해야하고 둘째, 재미가 무엇인지를 정의한 다음에 이 두 가지에 기반하여 셋째, 게임이 주는 재미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하기 때문이죠. 헌데 게임의 정의도 모호하고 재미의 정의도 모호한 상황이라... 하물며 "게임이 주는 재미"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일은 요원하다고 봅니다.

저는 "게임이 주는 재미"를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두 걸음 물러나서 "올바른 동기 이론"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즉 "애초에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이 없는 행동을 왜 하나"에서부터 시작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나 메슬로우 등을 까야겠습니다 --; 결국 또 까겠다는 얘기가 결론인데... 깔꺼 다 까고나면(진화심리학도 까고나면!? ㅎㅎ) 언젠가 뭔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요딴 식으로 까는 글에서도 무언가를 얻어가신다면... 제겐 기쁜 일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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