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영(Indi Young)의 저서 "멘탈 모델"의 번역서가 나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인이 영은 AdaptivePath의 창업자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제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라 잠시 당황했었어요.

HCI/IxD/UX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멘탈 모델(Mental Model)이라고 하면 아래와 같은 의미로 쓰이죠:

멘탈 모델이란 실세계의 특정 대상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사람의 사고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A mental model is an explanation of someone's thought process about how something works in the real world. --Wikipedia

도널드 노먼도 "디자인과 인간 심리"라는 유명한 책에서 아래와 같이 쓰고 있고요:

디자인 모델이란 디자이너의 개념 모델을 말한다. 사용자 모델이란 사용자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멘탈 모델을 의미한다. ... 시스템의 상(image)가 디자인 모델을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드러내지 못하면 사용자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멘탈 모델을 갖게 된다.

The design model is the designer's conceptual model. The user's model is the mental model developed through interaction with the system. ... If the system image does not make the design model clear and consistent, then the user will end up with the wrong mental model. --p16,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또는 IxD encyclopedia의 설명도 마찬가지.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의하면 1943년에 Kenneth Craik이라는 사람이 처음 사용한 표현이라고는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 바가 없으므로 패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1) 사용자의 멘탈 모델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2) 사용자가 올바른 멘탈 모델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다루어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죠.

그런데, 인디 영의 책에서 설명하는 "멘탈 모델"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책의 설명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멘탈모델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며, 각 부분은 다시 몇몇 그룹으로 분류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멘탈모델은, 대표 사용자들에게서 수집된 에쓰노그래피 자료를 의미상 가까운 것끼리 모아 놓은 친화도라고 하겠다. --p2

그러니까, 사용자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업무 과정 중에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산출물(artifact)을 말합니다. 대략 아래와 같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고안한 표현 양식 혹은 방법론의 이름을 왜 하필 멘탈모델이라고 명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본문 중에 나오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멘탈모델은 특정한 상황에서 누군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모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당히 안정적인 모델이다.

내가 이 구분을 집고 넘어가는 이유는, 인간의 인지 체계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지난 십수년 간 내적 표상을 매우 깊이 연구했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멘탈모델은 내적 표상 연구에서 다루는 내용과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기 때문이다.

"'멘탈모델'은 인간의 내적 표상에 대한 더욱 일반적인 범위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인지 연구는 이제 매우 세분화된 분야로, 그 논문들을 보면 자신들이 내적 표상을 어떤 범위에 한정해서 연구했는가를 장황한 수식어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p9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십수년간 깊게 연구했지만 저자 본인은 그냥 자기 맘대로 정의해서 쓰겠다는 얘기인데요... 좀 이상한 주장인것 같아서 원문을 찾아보니 번역문과 미묘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 둘을 구분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난 십여년간 인지 분야 연구자들이 내적 표상에 대하여 대단히 깊게 연구를 했었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멘탈 모델이 현재 통용되는 정의 중 어디에 속하는지 명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I want to acknowledge this distinction because those in the field of cognitive research have explored mental representation in great detail in the past decade, and I want to indicate where these mental models might fall within the currently defined parameters.

원문을 봐도 좀 모호해서 검색질을 해봤는데,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중간에 저자가 직접 코멘트를 달았군요:

...지난 십여년 간 인자과학자들은 (멘탈 모델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계속 확장해왔다. 나는 이 데이터 표현 양식(자신이 고안한 멘탈 모델)도 확장된 정의 내에 포함된다고 본다.

...in the past decade cognitive scientists have broadened the meaning again and again. I felt that this representation of data falls within those broader definitions.

연구자들 사이에서 멘탈 모델이라는 말이 워낙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어서, 자신이 고안한 방법론 and/or 산출물을 멘탈 모델이라고 써도 대충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음... 여전히 이상하죠. 인지과학자들이 십여년 간 연구했다는 멘탈 모델이라면 위에서 인용한 일반적 정의(Norman 등의)를 뜻하거나, 혹은 인지과학/인공지능/심리철학 분야의 마음에 대한 계산/표상적 이론(Computational / Representational Theory of Mind)에서 말하는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두 가지 모두 저자의 용법과는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죠.

제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니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코멘트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독후감이라고 해놓고 책 제목 얘기만 너무 많이 했군요. 그래도 이 책에서 말하는 멘탈 모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으니 다행입니다 ㅎㅎ

지금까지는 용어에 대한 불만이었고요, 이 산출물의 형식이나 방법론,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주 좋다고 생각합니다. 멘탈 모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하는데, 크게 공감이 됩니다(p9):

  • 디자인의 자신감(confidence) - 서비스와 기능을 설계하는 지침이 된다.
  • 방향의 명확성(clarity) - 사용자와 사업 측면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 전략의 연속성(continuity) - 비전과 사업 기회가 오래 지속되도록 해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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