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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리 데인저러스 독후감에서 음식이나 건강이나 환경 같은 문제를 생각할 때 "자연적인 것은 좋은 것, 인공적인 것은 나쁜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 짓는 것은 자연주의적 오류의 일종이라고 썼는데, 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저걸 단순히 논리적 오류라고 치부하기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난 그보다 인간의 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오는 겸손한 선택이라고 보는 입장인데. 식품의 위험성을 현재 과학기술로 온전히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이런 문제는 세월의 검증을 거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세월의 검증을 거친 자연의 식품을 먹는 것이 온갖 과학적 검증을 거친 식품을 먹는 것보다 과학적으로 더 안전할 수 있다... 이런 얘기랄까. 광우병도 그런 사례 중 하나고.

하지만 저는 이 주장에 또 다른 오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연과 인공의 잘못된 이분법(false dichotomy)입니다.


1. 잘못된 이분법

식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인간에 의해 사육되고 경작되기 시작하면서 이미 인공적(보통 인위적이라고 하지만 운을 맞추기 위해 인공적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인 형질 변화(보통 유전적 변화에서 기인)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품종 계량은 초기에는 무의식적으로, 어느 시점부터는 의식적으로 행해졌고, 이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generically modified food)은 조금 더 정밀한 품종 계량에 다름 아닙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의 품종 계량은 "자연적"으로, 그렇지 않은 방식은 "인공적"으로 범주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이분법이라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잘못된 이분법에 대한 얘기이고요, 이 이분법이 올바르다고 가정하더라도(즉 동식물의 인공적 품종 계량이 전혀 없었다가 유전자 공학 덕분에 최근 몇 십년 사이에 생겨났다고 가정하더라도) 저는 위 주장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2. 과학 혹은 공학 vs. 자연

과학 문명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 인간의 삶의 질이나 평균 수명은 현대 문명 국가에서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세월의 검증을 거친 자연"의 방식대로 살자면 아마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20~30세 정도로 줄겠죠. 유산율이나 태어나자 마자 죽는 경우 등을 합치면 더 낮아질지도 모르죠.

갑자기 "자연 식품" 얘기를 하다가 "자연 일반"에 대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그 두 가지가 결국 같은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자연적 삶의 방식이건 자연적 식품이건 간에 애초에 인간 삶의 질과 평균 수명을 최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공학이라는 것은 다르죠. 에... 과학이라고 하면 과학철학 관련 뻘풀이 달릴 것을 우려해서 과학이 아니라 공학이라고 하겠습니다. 공학은 대체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쓰이고 있고 유전 공학도 마찬가지이며 그 결과물 중 하나인 유전자 조작 식품도 그렇습니다.

저는 자연선택이라는 알고리즘의 힘보다 인간의 이성(즉 과학이나 공학)을 더 신뢰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 오히려 인간의 이성보다 맹목적 자연선택이 더 넓은 범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알고리즘의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 따라서 "오랜 세월을 거친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웰빙을 기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입니다.


PS: 아 몸살 제대로 걸렸습니다. 타자 치는데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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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흥섭의 생각

    from sub's me2DAY 2009/01/05 17:41  삭제

    "자연이라는 것은…인간 삶의 질과 평균 수명을 최대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지구를 뜨겁게 만든 장본인이 과학과 공학일지라도, 과학만이 지구를 다시 인류가 살아가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omments

  1. BlogIcon 김홍석 at 2009/01/05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연적이라는 것은 사실은
    '고급'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음식은 그만큼 사람에 해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 음식에 적응 못한 체질의 사람은 후손 남기기가 힘들었을 테니까요..

    미래의 인류는 이런 인공 음식에도 영향을
    별로 안받는 사람의 후손이 되겠네요..
    그것도 진화의 일종일 것 같습니다.

    저는 10년넘게 과체중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즉, 식량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인공 음식으로 저를 시험해 보고 싶진 않네요.. ^^;

  2. 영록 at 2009/01/05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류법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라면 인정. 니 말대로 이걸 "자연"과 "인공"으로 나누는 것 자체는 잘못인 듯. 오히려, "오래된 방식"과 "최근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 맞는 분류일 수도.

    그렇지만 나의 주된 논지는 변함이 없다. 어쨋든 정확한 분류가 뭐가 되었든 분류의 대상이 되는 실체는 같은 것이고,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확률이 높다는 것. 물론, 대자연의 섭리니 어쩌니 하는 소위 자연주의적 오류로 전자를 선택하는 경우는 잘못된 논리로 우연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분야의 선구자격(?)인 대체의학계에서는 세월의 검증을 받은 식생활을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고 이쪽에서 추천하는 식생활은 실제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집단, 혹은 장수하는 집단에서 선호하는 식생활을 추천한다. 그래고 이런 집단의 식생활이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말하는 식생활에 가깝다는 것이고. 이런 식의 선택이라면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다.

  3. BlogIcon alankang at 2009/01/05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두 글에 대한 대답은 본문을 통해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해서 별도로 댓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동어반복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4. 용갈 at 2009/01/06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큰 오류는 광고에서 말하는대로 믿는다는 것이죠.
    "천연물 함유", "천연소금에서 만들어낸 유한락스"

    이러면 덜 유해할 것이라는 생각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경계의 대상입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면 위험하고 자연의 것들은 위험하지 않다라고 갈라 말하는 잣대로 인해 천연물의 위험성과 독성은 그닥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이 팽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기농 원료 사용", "천연과즙 함유" 등과 같은 경우 도대체 뭐가 유기농이고 유기농 아닌 거슨 무엇인지, 함유된 것은 얼마만큼임지 알아야 할 겁니다.

    "뭘 그리 따져"라고 한다면 굳이 그런 문구에 안 끌리면 될 것입니다.
    원글과 다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광고를 보다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럽니다.
    얼마나 팔릴 지 모르겠지만 "드빈치"라고 7성급 호텔주방장 어쩌고 하면서 꼭 그 비싸다는 치즈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되게 만들지만 사실은 2.7% 함유된 겁니다. 그게 광고인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공과 자연의 이분법에 의해 실제로 우리는 광고와 식품회사에 놀아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5. intherye at 2009/01/10 2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량이 그저 식량이기만 하다면야 뭐를 먹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마는.

    생물의 종자를, 소유주만이 복제/개량 등 관리하는 것이 가능한 저작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뭐랄까, 유전공학적 DRM의 출현은 아무래도 우려를 감추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GMO에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오바지만, 두 눈 부릅뜨고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봐요.

  6. BlogIcon 영회 at 2009/02/07 0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학은 문외한인데... 이런 블로그(http://heterosis.tistory.com)가 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강규영님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1. alankang at

    댓글을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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